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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국내 처음 번역된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나병철 옮김, 소명출판 刊)
책산책 : 국내 처음 번역된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나병철 옮김, 소명출판 刊)
  • 여국현 중앙대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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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국현 / 중앙대 강사·영문학

탈식민주의 이론의 핵심적 텍스트인 호미 바바의 ‘더 로케이션 오브 컬쳐’가 ‘문화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난해한 내용을 감안하면 이제라도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바바는 라캉은 물론, 데리다, 푸코, 바르트 등의 이론적 성과물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탈식민 문화론을 전개한다. 그는 제1세계/제3세계, 지배/피지배 등의 단순한 對當 관계를 부정하고, 서구의 식민담론이 피식민 주체들에게 일방적으로 투사되지 않는다는 점과 피식민 주체들이 식민담론을 저항의 가능성을 지닌 장으로 전유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바바에 따르면 식민담론은 피식민인-타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고착시키며 정형화시키고 동일시(identification)를 요구한다. 그러나 피식민 주체들은 그 정형에 일치하지 않으며 동일화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동일시를 욕망하는 순간에도 피식민 주체들은 끊임없이 식민담론이 부과한 정형으로부터 미끄러지며 분열된다. 지배담론/문화에 대한 동일화 과정에서 채택한 모방이나 흉내내기를 통해서도 주체는 지배담론이나 문화와의 완전한 동일시를 경험하지 못한다. 오히려 피식민 주체는 이질적인 지배문화와 차이를 보이는 문화적 혼종성을 생산한다. 담론적 측면에서 혼종성은, “담론의 대표성과 권위성을 얻으려는 권력의 축을 따라서 오히려 지배담론이 분열되게 만드는 것”이며, “상징에서 기호로 가치를 치환해 버리는 것”을 일컫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화적 혼종성이 애초에 식민 주체를 전유하려는 지배담론/문화를 뒤흔들고 비틀며 변화시키는 저항의 기능을 담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바바가 인용하는 제3공간 또한 이런 혼종성의 공간이다. 그에 따르면, 제3공간은 지배/피지배 주체들이 자신의 문화적 흔적들을 간직한 채 서로 조우하는 언표작용의 공간으로서, 문화의 의미와 상징들은 어떤 근원적인 통일성이나 고정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시해준다. 이와 같은 사이-내 공간(in-between space), 제3공간과 혼종성의 개념을 통해 바바는 대당의 정치학을 탈피하는 동시에 피식민 주체의 저항의 가능성을 상정했다. 바바는 오늘날 ‘문화(가 자리한) 위치’는 바로 이런 혼종성 과정이 생산되는 사이-내 공간, 제3공간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식론적 목적을 지닌 문화로부터 실행적, 언표작용적 위치의 문화로 전환”한다. 이는 곧 “문화적 의미의 타자의 시간과 타자의 서사적 공간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함이다. 그가 “문화의 절합에서 언표작용적 현재를 상술”하려는 것은 “객체화된 타자들이 그들 자신의 역사와 경험의 주체로 전환될 수 있는 과정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바바는 탈식민적인 비판적 담론은 “심리적, 사회적 동일화 과정의 상징적 영역을 구성하는 타자성을 부인하거나 지양하지 않는 변증법적 사고 형식”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서구 포스트모더니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 등 탈식민 담론에 가해지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심지어 초국적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산에 맞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의 입맛에 맞는 주변부의 목소리를 소개하는 공인된 문화담론이라고 하는 거친 비난도 제기된 바 있다. 바바도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바바 자신은 ‘탈식민지적 대항근대성’의 입장에서, “식민화 이념의 공인된 권한 속에 포함된 서양의 어떤 패배…불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바바가 강조하는 혼종성이나 양가성을 통한 이질적인 문화, 문화적 저항의 계기가 전복으로 이어질 지, 아니면 지배체계의 반복적인 권력행사에 면역성을 부여하는 전리품으로 기능할 지는 확실치 않다. 그가 말하는 혼종성이라는 것도 반/역동일시를 행하는 주체의 반항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동일화 과정의 부산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담론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는 그의 이론이 현실과 접목할 가능성 또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문화 전 영역의 실천들이 시공의 경계 없이 넘나들며 이질적 공간의 혼종성을 생산하는 지금 담론적 실천을 넘어 현실 적용의 가능성과 더불어 바바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무익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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