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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인색한 사람 비유로 쓰였을까?
어째서 인색한 사람 비유로 쓰였을까?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07.19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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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83. 노린재
▲ 꽈리허리노린재. 사진출처=국가자연사연구종합정보 시스템(ww.naris.go.kr)

올해 가뭄은 알아준다. 해마다 꽈리·청양·오이·김장고추(마니따)를 각각 10포기씩 심는다. 근근이 가물을 버텨낸 고추나무에 진딧물이 말도 못하게 엄청 끼었다. 잎사귀 뒤편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액즙을 몽땅 빨아먹어 빼빼 말라깽이로 만들어 놓았다. 정말 말이 아니다. 살충제를 한 방 먹이고 싶지만 진딧물과 갈라먹기로 하고 참고 지낸다. 내가 無爲自然의 老莊思想을 통달한 것일까?

그런데 엎친 데 덮침(雪上加霜)이 따로 없다. 무엇이든 눈에 한 번 띄면 더 잘 보인다고하지. 가만히 살펴보니 도통 노린재가 득실거리지 않는 나무가 없다. 고추원줄기에서 Y자로 갈라진 첫 가지 아래위에 대롱대롱 달라붙었다. 가까이 눈을 대고 엿볼라치면 휙 몸을 돌려 줄기 뒤로 숨고, 몸을 뒤틀어 째려보면 또 돌아 피한다. 통나무에 붙은 딱따구리처럼.

어지간하면 너그럽게 봐주어 그냥 두겠지만……,기어이 맨손으로 일일이 잡기 시작한다. 진딧물은 하도 자잘하고 많아 손쓸 길이 없으나 노린재는 몸피가 큰 것이 해볼 만하다. 손이 가면 녀석들이 제 먼저 알고 땅바닥에 낙하하여 죽은 척(假死, feign death)하는 놈도 있지만 고추나무를 살짝 흔들어도 꿈쩍 않는 녀석도 있다. 눌러 죽이는데 하도 야물어 잘 문드러지지 않는다. 게다가 고약한 냄새는 어쩌면 그리 지독한지 사람을 넌덜머리나게 한다. 비누로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며칠 지나서 가보면 또 놈들이 대가리를 밑으로(거꾸로) 두고 줄지어있다. 녀석들에게 두 손 들고 말았다. 머잖아 흘레붙어 잎사귀 뒷면에 알을 수두룩 깔기고, 솜처럼 하얀 새끼들이 잔가지를 촘촘히 뺑 둘러싸는 날이 올 것이다. 이토록 끈질기고 드센 놈들이다.

사람을 못 살게 구는 얄미운 녀석은 진딧물과 노린재만이 아니다. 장마에 돌멩이도 자란다더니만 덩달아 바랭이·강아지풀·비름들은 어찌 그리도 무성한지……. 가뭄에 뿌리를 깊게 내렸기에 뽑느라 쩔쩔 맨다. 온몸을 실어도 끄떡 않는다. 한 마디로 팔, 허리가 다 빠진다. 이렇게 노린재, 잡풀들과 기를 쓰고 사투를 벌이면서, “사람의 天敵은 곤충과 잡초다”란 말을 절감한다. 하긴 내 천적은 나 자신이지만 말이지. 암튼 그러면서 농약과 제초제의 필요함과 고마움을 곱씹게 되더라.

그런데 노린재는 세계적으로 78과 3천500여종이, 우리나라에는 37과 300여종이 있다한다. 이제 와 여태 씨름한 노린재의 이름(국명/학명)이 궁금해진다. 벌레 한 마리를 눈앞에 두고  그것 이름을 모르는 그 답답함이라니. 실은 곤충세계는 하도 복잡한터라 곤충 글을 쓸 때마다‘곤충생태연구소’ 소장인 제자 한영식 군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는 고추에 기생하는 녀석이‘꽈리허리노린재(Acanthocoris sordidus)’라고 얼른 알려준다. 참 고맙다. 알다시피 우리말이름(國名, Korean name)은 아무리 길어도 붙여 쓰기로 약속 했기에 ‘꽈리 허리 노린재’로 띄어 쓰지 말아야 한다.

꽈리허리노린재는 절지동물, 노린잿과의 곤충으로 몸이 방패처럼 생겼다. 머리는 삼각형에 가깝고, 몸집에 비해 아주 작다. 머리에 겹눈이 붙고, 2개의 홑눈도 있으며, 기다란 더듬이는 4마디로 곤봉모양이다. 주둥아리에는 식물액즙을 빨아먹기 알맞게 찌르는 침(刺針/鉤針)이 있다. 다시 말해서 줄기에 침을 꼽아서 액즙(plant sap)을 빠는 해충으로 꽈리나 고추·고구마·토마토·감자 등 가짓과 식물이 그들의 寄主植物(host plant)이다.

길이 10~13.5mm로 몸은 흑갈색으로 윤기가 없고, 몸의 아랫면(배)은 붉다. 알->약충->성충이 한살이(일생)인, 번데기시기가 없는 안갖춘탈바꿈(不完全變態)을 한다. 여기서 若蟲(nymph)이란 불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의 유충을 이르는 말로 완전변태곤충의 유충(larva)과 구별해 쓰는 말이다. 한국·일본·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노린재의 일반적 특성을 덧붙인다. 노린재는 몸 빛깔은 각양각색으로 대부분 녹색이거나 검은 갈색으로 보호색구실을 한다. 또 해론벌레(害蟲)라 목화·옥수수·콩·벼 등 곡식과 배·딸기 등 모든 과일을 공격한다. 그리고 노린재 무리는 지상생활과 수서생활을 하고, 1.1mm(얼룩깨알소금쟁이)에서 가장 큰 65mm(물장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양새도 편평한 판 모양인 것, 긴 막대기꼴인 것 등 다종다양하다. 그리고 암컷은 교미가 끝나면 주로 알을 식물의 잎줄기에 붙이지만 흙이나 돌 틈새에 낳거나 물자라처럼 수컷의 등짝위에 산란도 한다.

노린재는 자극을 받으면 노린내를 내기에 노린재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노린내가 나다”하면 매우 인색하고 이해타산이 많은 사람을, “노린내가 나도록 때리다”라고 하면 몹시 때림을 이르는 말이다. 노린재의 가슴(胸部, thorax) 뒤쪽에 있는 냄새분비샘(嗅腺)에 이어진 작은 구멍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우리는 그 냄새가 역하지만 노린재는 서로 적의 공격을 알리고, 끼리 짝을 찾는다.

노린재냄새가 미나리과식물인 고수풀(빈대풀, coriander)이나 썩은 아몬드냄새와 비슷하기 때문에 stink bug라 하고, 또 몸이 두꺼운 방패로 싸였으므로 shield bug라 한다. 노린재가 풍기는 악취에는 알데히드(aldehyde)나 靑酸(cyanide)이 들어있어서 적을 막고, 물리친다. 노린재의 천적은 거미나 사마귀(버마재비)인데 라오스(Laos)사람들도 그 냄새를 즐겨서 노린재를 구워먹는단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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