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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고전문헌학자, 철학의 퇴보를 말하다
독일의 고전문헌학자, 철학의 퇴보를 말하다
  • 이상인 연세대·철학과
  • 승인 2017.07.1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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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고대와 근대의 논쟁들: 문제로 읽는 서양 철학사』 아르보가스트 슈미트 지음 | 이상인 옮김 | 도서출판 길 | 504쪽 | 33,000원

아르보가스트 슈미트는 독일의 마인츠대와 마르부르크대의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베를린 자유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는 고전문헌학자다. 그의 학문적 경력은 비극을 포함한 고대 시문학 연구에서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수용사를 연구하면서 시문학에 나타난 고대-근대 대립 현상에 주목했고, 고대 문학의 예술성을 이해하는 열쇠로 고전기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였다. 1992년에 마르부르크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근대의 자기이해와 고대 해석』이라는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이 시기에 여타 개별 학문에서 발견되는 고대-근대 대립 의식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고, 이 책은 그 중 논문 7편과 소규모 단행본 1편을 엮어 옮긴 것이다. 

우리의 서양철학사는 대부분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비판적으로 서구인의 시각을 수용하고 반복할 뿐이었다. 철학 분야에서 서양철학사만큼 서술과 이해의 상이성과 상대성이 없는 분야도 없다. 지나간 시대는 새 시대를 통해 보완되거나 극복되는 것으로 기술되고, 진리의 최종적 형태는 언제나 현재에 와 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슈미트는 고대를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극복의 철학사가 아니라 고대와 근대가 대화하고 논쟁하는 소통의 철학사를 구상하면서 철학사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근대에 사망 선고된 고대를 다시 근대의 진지한 대화 상대자로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대화하고 논쟁하는 소통의 철학사

기존의 서양철학사는 또한 천편일률적이다. 시대가 대별되고, 시대별로 철학의 주요 분야에 대한 서술이 이뤄진다. 철학의 역사는 단지 철학만의 역사가 아니다. 철학은 수많은 학문을 배태하고 출산시켜 왔으며, 타 학문과의 경쟁과 협력 속에서 성장해 왔다. 그래서 철학사 안에는 타 학문의 연구 성과까지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슈미트는 이 공간에 머물면서 철학과 타 학문의 만남을 주선하고 철학사 자체의 콘텐츠를 확장시키고 있으며, 철학의 역사를 타 학문의 역사와 결부시켜 쟁점별로 기술하는 융합적 철학사를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도 이를 고려해 붙여졌다. 

“과거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고 널리 유포한 고대에 대한 우리의 우월감은 근대 초기의 지적 발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발전 속에서 과학 체계에 대한 전통적인 정초는 새로운 것에 의해 대체됐다. 이 발전의 정점과 중심은 이성이 자기 확실성 속에서 사유와 과학의 원칙과 기준으로 정립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다. 하지만 이 발전은 실제로는 고대·중세적 개념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중세적 반성 수준에 결코 도달하지도 못했다.”

 

슈미트는 유럽에서는 매우 특이한 유형의 학자로 분류된다. 현존하는 특정 연구 트렌드나 집단에 속한 학자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유럽인으로서 (유럽의 전통과 비유럽 문화를 향한) 근대 유럽의 오만과 독선과 편견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유의 자기 자신에 대한 계몽이 고대에 없었다는 근대의 일방적 판단은 편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근대에 이뤄진 지적 발전은 “실제로는 고대·중세적 개념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중세적 반성 수준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고까지 말한다. 최첨단 과학기술시대를 살고 있고 전통을 완벽하게 추월했다고 믿고 있는 근현대의 유럽이 그와 이질적인 고대로부터 배우기보다는 그것을 자주 배제해왔다는 슈미트의 불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마도 고전학자이기에 그런 주장을 한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고대 전통을 지키려는 정통 고전학자의 ‘보수적’ 아집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개선해야 한다는 ‘개혁적’ 요구다. 

슈미트는 골수 플라토니스트다. 플라톤은 ‘열망’의 철학자였다. 이 말을 ‘저’ 세계나 내세로의 몽상적 비행의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플라톤은 이성과 의견과 감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세 유형의 보편자를 하나의 위계 속에 배치했고, 합리성을 향한 사유의 요구로부터 학문의 계통적 체계를 정립했으며, 영혼의 심리적 활동중심을 삼분한 후 거기에 지배-피지배 관계를 귀속시켰다. 그가 높은 차원만 알고 존중했으며 낮은 차원은 모르고 무시했다는 말은 와전된 것이다. 보편자와 학문과 영혼의 세계에 놓여 있는 가능한 모든 차원을 그는 존중했고, 다만 더 존중받아야 할 것과 덜 존중받아야 할 것의 상대적 차이는 인정했다. 그는 오랜 경험과 지적 훈련을 통해 인간의 삶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능한 한 가장 높은 곳으로 고양되길 희망했다. 

서양철학사의 세속화와 고대의 상실

그러나 플라톤의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서양철학사가 진행됐다고 슈미트는 평가한다. 서양철학사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여러 측면에서 세속화의 과정을 겪었다. 인식론은 감성을 ‘수용성의 능력’으로 규정했고 사유를 감성을 통해 주어진 자료를 하나의 대상으로 표상하는 단순한 ‘의식’으로 격하시켰다. 근대의 개별 과학은 보편자를 세계 안으로 끌어내렸고, 유명론적 논쟁은 보편자를 세 형태로 구별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오직 한 형태의 보편자, 즉 가능한 술어로서의 보편자에만 주목했다. 인간과 동물에 대한 이해는 동물과 인간을 자기생산적 기계, 즉 자신의 고유한 구성요소들과 자신의 고유한 조직을 재생하는 생명체계로 파악함으로써 동물을 인간에 근접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과학은 학문들의 수직적 위계질서에 저항하면서 초경험적인 보편적 원리로부터의 연역을 포기하고 개별자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인식의 원천을 경험에서 찾았다.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적 활동을 이기적 욕망과 충동이라는 인간적 본성으로부터 설명하였고, 정치학은 인간의 자연 상태를 욕망의 무제한적 자유에서 찾았다. 근대 미학을 개척한 바움가르텐은 사물을 아무 손상 없이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감성을 미 인식의 원천으로 간주했고 미학을 감성학(aesthetica)으로 전락시켰다. 

고대의 상실은 고대에 정립된 보편자의 형이상학적 위계, 학문의 위계, 영혼 능력의 위계가 전복됐음을 의미한다. 서양철학사가 경험적, 욕망적, 이기적,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개념에 기반을 둔다면, 이는 고대를 망각하는 것이고 인간인 한에서의 인간의 본래성을 망각하는 것이며 중심과 주변, 위와 아래, 지배와 피지배를 전도시키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런 맥락에서 철학사의 퇴보와 타락을 말하고, 서양철학사에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옥좌 아래 이성이 무릎을 꿇고 있는 이미지를 부여한다. 우리의 생존과 행복을 좌우하는 이성의 능력은 회의의 대상이 됐고, 질료를 규정하는 정신적 힘으로서 영혼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영혼은 신체의 ‘기능’으로, 인간은 유전자의 산물로 이해됐으며, 의식을 통제하는 무의식이 도리어 자아의 진정한 주인이 됐다. 만약 인간에게 허용된 가능한 모든 능력을 최고의 수준까지 계발함으로써 가능한 한 ‘신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는 플라톤적 열망이 사라지고 동물과 같은 수준에서 동물과 같은 수준의 삶을 누리는 데 우리가 만족하고 익숙해져 있다면, 슈미트가 이 책에서 고대를 근대와 논쟁시키려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노력을 하는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인 연세대·철학과
독일 마인츠대에서 고전문헌학과 철학을 연구했다. 마르부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에는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진리와 논박: 플라톤과 파르메니테스』 등이 있고, 옮긴책에는 『메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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