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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인문학 인프라 구축사업
본질은 인문학 인프라 구축사업
  • 강성용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부교수
  • 승인 2017.07.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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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인문한국(HK)지원사업의 의미

한국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시도가 이뤄졌던 것이 10년 전쯤의 일이다. 당장 몇 년 후 대학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추측마저 불가능한 나라에서 국가가 10년간 대학의 인문학분야 연구소를 지원하겠다는 사업이 나타난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인문한국(HK)지원사업이 사업을 처음 기획했던 대로 10년간 실행됐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필자는, HK사업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다 합쳐 네 명 대통령의 얼굴을 보아 왔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겠다. 

HK사업의 평가와 미래의 모색에 대한 논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핵심은 HK사업이 인문학분야의 사회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소 인프라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국가적인 장기 대응전략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학연구소들을 매개로 삼는 것이 사회적 역할을 하는 인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도 대학 내의 연구성과가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되는 연결고리를 찾는 길이고, 동시에 그 고리를 통해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연구와 사회활동에 참여시켜서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정책적 판단이 한 편에 있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유명무실했던 대부분의 대학연구소들이 사회적인 인문학적 역량을 떠받치는 기초인프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의 지원이 필요한 일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이 진짜 인문학이 맞는지 그리고 인문학지원을 위해 연구소에 투자하는 일이 좋은 선택인지를 묻고 있다. 인문학이 위기이니 도와야 한다는 주장과 사뭇 거리가 있다.

필자의 주변에는 인문학이 치유활동과 통일문제를 논한다거나, 자기가 사는 곳의 산과 바다와 도시에 대해 책을 쓰고, 재건축과 탈북이주민과 알자지라 방송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논하는 일을 놀랍다거나 참신하다고 느끼지 않는 분위기다. 요즘에는 이러한 연구활동을 하는 연구자들이 겪는 구체적인 과거의 유산이라면, 사석에서 원래 어느 학과를 졸업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험 정도다. 이 많은 주제들이 인문학이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 모든 문제가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새로운 질문과 문제들이 인문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자리잡는 과정에서, HK연구소들의 활동이 기여한 바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모색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볼만하다.

필자에게 떠오르는 대답은 과제와 목표를 정해주는 중앙통제방식의 지원이 아니라 기관단위의 인프라 구축과 활동을 지원하고 각 주체들이 능동적으로 연구주제와 활동 영역을 찾아 나가는 방식의 지원이 이뤄진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과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찾아 나서는 주체와 그 주체가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고, 이 맥락에서 대학사회에 속하는 연구소를 대상으로 한국에서는 유례를 보기 힘든 인문학분야 연구소 소속 전임교원들이 확보됐다. HK사업이 10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주체들에게 새로운 질문들이 주어지는 상황은 현실이 됐다. 다중지능의 구현과 초연결사회와 4차산업혁명에 대한 사회적 준비의 한 축을 어떻게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질문들은 인문학자들이 다루는 고전을 남긴 사람들이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로 다뤄져야 하는 문제인지라, 인문학의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를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이며 활용할 것인가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연구인력과 연구인력의 경험과 연구인력이 활동하는 장이 되는 연구소와 이 연구소가 맺고 있는 수많은 대학 안팎의 그리고 외국 연구기관들과의 관계 자체가 인프라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어렵게 긴 기간에 걸쳐 구축한 인프라는 적절하게 관리돼야 한다. 그리고 관리는 현상유지 이상의 새로운 미래에 맞는 인프라의 확장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대학연구소의 연구와 사회활동 인프라를 사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적극 활용할지의 고민이 이제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인문학연구소 인프라 활용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정답은 지난 10년의 경험 안에 이미 드러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별 연구소의 주체들이 능동적으로 과제와 질문을 찾아 가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강성용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부교수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고전인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남아시아-티벳-불교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냈으며, 저서로는 『빠니니 읽기: 인도 문법전통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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