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3:55 (금)
압박감에 대한 경의
압박감에 대한 경의
  • 오유민 존스홉킨스대 박사·의학대학원
  • 승인 2017.07.17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오유민 존스홉킨스대 박사·의학대학원

2013년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했다. 학위과정부터 8년여 간을 지내던 실험실을 떠나 그간 연구한 분자 세포생물학이 아닌 응용과학으로 과감히 진로를 변경했다. 물론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았지만 좀 더 실용에 가까운 학문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독립된 연구자의 기로에서 미래를 결정할 이 선택은 온전히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비롯해 언어의 문제, 생활 공간의 변화 등 마치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처럼 모든 것을 낯설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불안하면서도 자신감도 있었고 막연하게 빨강머리 앤의 유명한 글귀처럼 인생의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지만 아마도 멋진 미래가 있으리라 믿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곳에서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익숙해질 무렵 하나씩 들려오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동료, 후배는 CNS급 논문을 출간했다더라, 교수 혹은 선임 연구원이 됐다더라 하는 소식들은 종종 내가 잘하고 있는지, 혼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쯤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좌절과 슬럼프를 불러왔다. 인류를 구원하는 원대한 희망은 아니더라도 학위과정과 비교해 나 자신조차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인건비를 비롯해 재료비의 대부분을 지도교수의 연구비에서 충당해야 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열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삶의 문제가 됐다. 해결되지 않고 일들은 쌓이기만 했고 또 많은 시간을 연구 활동이 아닌 보고서나 연구비 지원 등 잡다한 일들에 신경 써야 했다. 논문이나 연구보다 보고서를 쓰면서 하루의 일과를 보내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다 우연히 곧 베이징대학에 자리를 잡아 중국으로 돌아가는 동료에게 나의 고민과 좌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심각하게 ‘나는 과연 이곳에서 과학자인가 소모품인가’하는 생각으로 가득한 시기였던 것 같다. 명료하게 그 동료의 조언은 누구에게나 자기 위치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학위 과정 중에는 졸업에 대한, 졸업 후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분명 책임 연구자가 된 이후에는 더 많은 종류와 크기의 부담감이 밀려올 것이다. 교수라면 연구는 물론 정년보장도 받아야 하고 제대로 된 학생을 길러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 우수한 논문을 써야하고 더 많은 연구비를 수주하고 유지해야 한다. 아마도 내가 했던 고민은 대부분의 박사후연수과정에 있는 연구자들의 공통된 고민일 듯싶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압박감을 견딜 그릇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견뎌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학위 과정을 통해서 연구자로서의 능력과 지식을 축적했으며 박사후 연수과정을 보내면서 앞으로 과학자로서 어떤 독립된 주제로 본인의 영역을 만들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 과정 중에 물론 좌절도 있었지만 많이 성숙해졌다. 감사하게도 한국연구재단의 학문 후속세대 양성 사업에 2012년에는 박사후 국내 연수과정에, 2016년에는 국외 연수과정에 선정이 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박사후 연구원의 신분을 벗어나 승진도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잘 견디고 있다는 격려이기도 했고 좋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동기 부여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그 압박, 부담스런 친구를 벗어나기 위해 달려가야 하니 그 압박감은 계속된 전진의 다른 말인가도 싶다. 이미 교수가 되거나 연구소에 자리를 잡은 선배들을 보며 때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던 걱정들도 '더 잘 할 수 있다' 로 바뀌는 중이다.  여전히 고민하고 압박을 받는 중이다. 훗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지 미국에서 성장해 나가야할 지를 결정하는 사소한 문제를 비롯해 논문 그림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만들고 효율적으로 실험을 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 연구로 연구비를 수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매일 매일을 또 보내지 않을까 싶다. 학위 과정 혹은 박사 후 연수 과정 중에 있는 모든 연구자들의 그 압박감으로 가득 찬 그리고 그 압박감을 견딜 그릇이 단단해져 좋은 독립된 연구자로서의 자질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유민 존스홉킨스대 박사·의학대학원
분자 세포 생물학 전공으로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박사를 했다. 간 경화 및 간 경변 치료제로서 TRAIL의 항 섬유화에 관한 논문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