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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눈물을 호출하다
마침표, 눈물을 호출하다
  •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국어방언학
  • 승인 2017.07.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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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국어방언학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길이가 짧고, 새로운 발견에 감동 받기 때문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시를 읽다 마침표 하나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져서 끝내 돋보기를 벗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마침표가 눈물을 호출한 것이다. 강형철 시인의 「아버님의 사랑말씀 6」(『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이 눈물을 불러낸 바로 그 시다.

이 시에는 ‘말씀하셨습니다’가 두 번 나온다. 그러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첫 번째 ‘아버님 말씀’은 은행 담보용으로 집문서를 빌려달라는 아들한테 막걸리를 마시고,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그도 못살고 저그도 못살고 오막살이 이 찌그러진 집 한칸 지니고 사는디 넘으 집 칙간 청소하고 돈 십오만원 받아각고 사는디 뭐 집을 잽혀야 쓰겄다고 아나 여기 있다 문서허고 도장 있응게 니 맘대로 혀봐라 이 순 싸가지없는 새꺄 아 내가 언제 너더러 용돈 한푼 달라고 혔냐 돈을 꿔달라고 혔냐 그저 맻날 안 남은 거 숨이나 깔딱깔딱 쉬고 사는디 왜 날 못살게 구느냔 말여 왜! 왜! 왜!”라 외친다.

그러나 두 번째 ‘아버님 말씀’은 “은행에 가서 손도장을 눌러 본인확인란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막걸리 한잔 먹고 헌 말은 잊어버려라 너도 알다시피 나도 애상바쳐 죽겄다 니가 어떻게 돈을 좀 애껴 쓰고 무서운 줄 알라고 헌 소링게……”라 아들을 타이른다. 두 개의 아버님 말씀에서 분량의 차이, 옥타브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이런 차이는 다름 아닌 마침표 하나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말씀하셨습니다’에는 마침표가 없다. 아들의 요구에 열이 받치고, 막걸리도 마셨으니 속에 품었던 말씀이 따발총에서 실탄이 튀어나오듯 내뱉게 되는 것이다. 쉴 틈 없는 열변이고 넋두리다. 그러나 두 번째 ‘말씀하셨습니다.’에는 마침표가 찍혀 있다. 이 마침표는 어느 정도의 호흡을 유도한다. 호흡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긴 아버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마침내 마침표가 父性愛를 낳게 하고, 끝내는 최루제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듯 ‘문장부호’는 ‘글에서 문장의 구조를 드러내거나 글쓴이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부호’를 말한다. 이 ‘문장부호’가 문장의 구조를 드러내고, 글쓴이의 의도를 전달하는 부호라고 한다면 ‘문장부호’는 아무렇게나 쓰고 모양을 달리해서 처리해도 되는, 한낱 하찮은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어문 규정의 일부이니 ‘한글 맞춤법’ 부록으로 제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장부호’가 올바르게 쓰였을 때 강은교 시인의 「빨래 너는 여자」(『어느 별에서의 하루』) 1연에 쓰인 10개의 쉼표(,)에서 ‘빨래 너는 여자의 경쾌함’을 느끼게 되고, 서정춘 시인의 「달팽이와 놀아나다」(『귀』)에서, “가기는 가니”라는 물음에 깜짝 놀란 달팽이 모습을 ‘(!!)’로 표현이 가능하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고시(제2017-12호, 2017. 3. 28.)에는 ‘문장부호’의 정의를 비롯해 21개의 ‘문장부호’ 쓰임이 명시돼 있다. 문장부호의 이름도 이름이거나와 특히 부호의 위치와 용법도 자상하게 제시돼 있다. 그러니 틀리기 쉬운 ‘쌍점(:), 빗금(/), 물결표(~), 줄임표(……)’ 등의 제 위치와 쉼표와 작은따옴표(‘ ’), 큰따옴표(“ ”)의 모양도 규정에 맞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장부호’는 그 기능을 다하게 되고, 나아가 눈물을 불러낼 수도 있고, 빨래 너는 여자의 경쾌한 동작 표현은 물론 놀란 달팽이 촉수까지도 표현 가능하다. ‘문장부호’를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국어방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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