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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비운다는 것
내려놓고 비운다는 것
  •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농업경제학
  • 승인 2017.07.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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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농업경제학

2년차에 접어든 미니사과(알프스 오토메) 200여 그루는 회초리 같던 지난해와는 달리 금년에는 어린아이 팔목만큼은 굵어지고 키도 3미터 정도 훌쩍 자랐다. 원래 3년차는 돼야 열매를 좀 딸 것이라고 하지만 나무 생육상태가 양호해 금년에도 조금은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위에서 얘기하곤 했다. 그래서 금년 들어 7월 현재까지 7번 유기방제를 하는 등 열심히 농사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금년 봄에 꽃도 제법 많이 피었으나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았다. 기후환경 변화 때문이거나 영양에 문제가 있거나 벌이 줄어들어 수분을 잘 못했거나 전문가들도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 내지 못했다. 조금은 의기소침했다.

그리고 과수원 이외의 작은 밭에는 비닐대신 풀을 베어 덮어줌으로서 잡초도 억제하고 퇴비도 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생물들이 서식해 건강한 토양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무경운 재배도 시도해 보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친환경유기생태농업을 지향한다는 거대한 꿈을 내걸고 농촌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으니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며 매일 풀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7월과 8월 두 달은 열심히 풀들과 싸우리라 단단히 마음먹기도 했다. 그러나 풀을 베어 덮어 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풀을 최소한 10~20센티미터는 덮어줘야 풀이 다시 나오지 못한다. 두렁주변의 풀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사과가 열매를 잘 맺지 못해 실망하는 일이나 악착같이 풀을 뜯어 잡초를 제거하려는 노력의 이면에는 지나친 욕심이 숨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 자신이 너무 함몰돼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2년 일찍 퇴임하고 귀농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었다. 퇴임 후의 도시에서의 안락한 삶은 물론 교수로서의 명예나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정말 평생의 연구 대상이었던 농민이 돼 직접 농사지으며 농촌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유독 농사일에는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매가 좀 덜 달리면 조바심이 나고, 벌레가 보이거나 잎에 이상한 반점이라도 생기면 즉각 방제하려 하는가 하면, 풀을 뽑아주거나 베어 주어야 한다는 초조감에 늘 사로 잡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귀농, 귀촌한다는 사실이 본의 아니게 다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 잘 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교수가 농사지으러 왔다더니 요령만 피우고 농장도 엉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사과나무도 돌보고 방제도 정성껏 하고 밭농사도 환경은 물론 생태적으로 지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이 또한 내려놓고 비워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요령껏 정당히 농사지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매가 조금 덜 달리더라도, 벌레와 균들이 좀 먹더라도, 아니 때로는 나무 전체를 망가뜨리더라도, 고라니와 멧돼지가 사고를 치더라도 최상의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고 농장운영을 잘해야 한다는 것 또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세삼 깨닫는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최대한 적응하면서 친환경 생태농업을 지향하되 그 과와 실에 대해서는 내려놓고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과 사람 앞에서만 내려놓고 비우는 삶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 앞에서도 늘 내려놓고, 비우고, 겸손해 지는 삶을 살고 싶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농업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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