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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과학자를 꿈꾸며
행복한 과학자를 꿈꾸며
  • 이지윤 경희대 연구교수·기초의학과
  • 승인 2017.07.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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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지윤 경희대 연구교수·기초의학과

척수손상 치료제 개발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동물실과 실험 쥐(rat)는 나의 삶의 일부가 됐다. 척수손상 동물모델은 척추뼈를 제거하고 노출시킨 척수에 추를 떨어뜨리는 수술을 하게 되는데, 척수손상 받은 쥐는 하반신이 마비되고 방광기능이 손상을 입어 매일 방광을 눌러 배뇨를 시켜주어야만 한다. 일 년에 500마리가 넘는 쥐를 수술하는 나는 주말에도, 명절에도 수술한 쥐를 위해 동물실을 드나든다. 이제는 나의 두 아이들도 엄마가 쥐 오줌 누이러 연구실 가는 것을 자연스레 생각한다.

학위과정 때에는 그렇게 힘들게 쥐를 care해서 얻은 뇌와 척수의 RNA, Protein 등으로 실험을 하면 결과가 늘 들쭉날쭉이었다. 한 샘플을 가지고 여러 번 실험해도 결과가 달리 나올 때가 많았고, 또 다른 쥐에서 나온 샘플로 실험하면 제3의, 제4의 결과가 나오기가 일쑤였다. 멋지게 내 가설을 증명하고 싶은데, 다양한 실험 결과가 나오니 무엇이 진짜 데이터인지 몰라 연구가 앞으로 갈 수가 없었던 적이 정말 많았다. 실험이 꽝 나면 바로 다시 해보고, 또 다시 해보고. 무한반복 속에서 데이터가 아니라 더 많은 실수가 속출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논문을 읽을 시간도 없고, 내 몸은 지쳐가고, 어깨는 축 처지고, 랩미팅 자료를 준비하다 보면 아무것도 건진 것 없이 일주일을 보냈구나 하는 자책도 들었다.

그 때 지도교수님께서 제안해 주신 것이 있었다. 첫째, 아침 8시 30에 실험을 시작할 것 (출근이 아니라 파이펫을 들고 실험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실험하는 동안에는 기기 사용하는 것 외에는 자기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실험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해 놓을 것. 셋째, 실험 프로토콜을 외우지 말고 반드시 스텝마다 보면서 할 것. 넷째, 실험 중간에 이상이 생겼을 시 즉시 STOP 할 것이었다. 어떤 대단한 것을 알려주신 것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들이었지만, 실제 이것을 지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침 8시 30분에 실험에 들어가기 위해 그 전날 이론과 기기 등 모든 것을 점검하고 준비하고, 아침에 일찍 와서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실험 중간에 뭘 가지러 자리를 뜨지 않기 위해서는 실험에 사용되는 자잘한 도구까지 미리 계산해 철저히 준비해야만 했다. 급한 날은 실험 시간을 좀 단축하고 끝내고도 싶었지만 프로토콜대로 정확한 시간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STOP한다는 것은 쥐 수술부터 다시 해야 하는 너무 고된 일이라 이쯤은 괜찮겠지 하고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rule을 철저히 지키기 시작하면서 내 실험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것은‘철저한 준비’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 결단’ 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됐다.

그렇게 실험적인 부분이 해결되고 나니, 기존 문헌들을 토대로 세운 나의 가설을 증명하고, 실험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되면서 보물을 찾아 하나씩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설레임을 느낄 수 있었고, 연구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할 때 즈음 어느덧 나는 박사가 돼있었던 것 같다. 이제 학위를 시작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열정과 자신감에 차 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차분함과 이론과 기술을 꼼꼼히 쌓아가기 위한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결국 실험의 variation을 뛰어넘지 못해 연구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연구의 길을 떠나는 것을 보면 참 아쉽다. 또한 자기가 예상했던 또는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믿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짜를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정말 멋진 과학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데이터는 positive result가 아니라 negative든 positive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진짜 result이다.

현재 나는 나의 스승님과 박사학위과정을 포함해 14년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지금은 척수손상을 기본으로 뇌졸중, 당뇨, 통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신경계 질환을 접목해서 연구의 범위를 넓혀 더 많은 인체의 비밀을 재미있게 알아가고 있다. 사실 이는 전적인 나의 스승님의 배려이다. 내가 잘 하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자유롭게 몰입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나 같은 박사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연구비를 받을만한 주제를 찾아 과제를 쓰고, 그에 대한 연구만 해도 돈과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한국 연구자의 현실이 것 같다. 이제는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내고 교수든, 연구원이든 내 Job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변에서 조언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다 할 직함이 없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아하는 연구를 맘껏 하는 지금이 자유롭고 행복하다. 사실 교수님의 연구비에서 급여를 받아야 하는 내 현실이 늘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학문후속양성세대 박사 후 연구원 과제와 리서치펠로우 과제 등을 지원받으면서 규모는 작아도 고용이나 연구비 등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단기적인 완화책일 뿐 장기적인 대책이 분명 모색돼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연구교수로서 수주할 수 있는 연구비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고용이라는 현실의 벽과 타협하면서 나와 같은 중견을 바라보는 연구자들이 과학자가 아닌 직장인으로 바뀌어 이제까지 쌓아온 연구결과와 노하우, 과학에의 열정이 묻혀 버리지 않도록 연구환경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윤 경희대 연구교수·기초의학과

연세대에서 척수손상 치료제 개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척수손상 후 신경세포 사멸, 척수혈관장벽 손상, 신경병증성 통증 기전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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