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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후과정, 그 시간의 의미
박사후과정, 그 시간의 의미
  • 임형진 카이스트 박사·건설환경공학과
  • 승인 2017.07.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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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임형진 카이스트 박사·건설환경공학과

‘학문후속세대의 시선’이라는 기고문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예비군 훈련 중이었다. 박사과정동안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했기에 남들보다 늦은 서른 넘어 예비군을 시작하게 됐고 올해 2년차 훈련을 마쳤다. 6월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을 때 전투복을 입고 방탄모를 쓰고, 총을 들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보다는 이런 저런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기고문을 어떻게 쓸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변의 선후배 및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직장을 잡기 전까지의 박사후과정이 심적으로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학생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서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이어나가며 언제 나올지 모를 관련 분야 채용 공고를 기다리는 일은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물론 그 동안 많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열심히 연구를 하고 좋은 논문을 많이 써서 취업 시장에서 본인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공고가 나서 지원을 해도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기에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나도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까지 약 2년의 박사후과정을 보내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곧 좋은 직장을 잡게 되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몇 번의 채용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그 기대는 점점 불안감으로 바뀌어져 갔다. 해외로 박사후과정을 나가고자 해외의 많은 교수들에게 이력서와 함께 메일을 보내 보기도 했지만 예산 문제로 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흐르게 됐을 때, 연구재단의 ‘리서치펠로우’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채용 시 본인이 연구비를 수주하고 과제를 직접 수행한 경험이 있으면 채용시장에서 보다 유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고, 선정이 돼 연구조교수로 과제를 수행하게 됐다.

‘리서치펠로우’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이전보다는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줄었다. 본인이 중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최대 3년의 연구기간과 연구비, 고용을 보장받기 때문에 보다 긴 호흡으로 현재의 연구 및 앞으로의 연구인생을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인의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받기 때문에 일반 박사후과정과는 달리 연구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도 있다. 연구 성과에 있어서도 단기적 양적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질적 성과에도 보다 신경 쓸 여유가 있어 향후 채용 시장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 ‘리서치펠로우’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박사학위 주제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영역을 넓히고 보다 많은 연구경험을 쌓아 연구자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지도교수님은 박사후과정을 5년 동안 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박사후과정 5년 동안 본인이 향후 몇 년간 연구할 아이템들을 발굴하고, 기초연구를 수행한 것이 오히려 교수가 되고 나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생각을 해보면 정식 직장을 잡아 교수나 연구원이 되면 초창기에는 당장 본인이 수행해야 할 업무(수업, 제안서, 각종 회의 등)에 치여 앞으로 연구해야 할 내용들에 대한 설계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면 박사후과정은 논문을 읽고, 기초적인 실험과 연구를 직접 수행하고, 최소 1~2년, 길게는 5~6년의 연구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 이 시간을 보다 유익하게 사용하려 노력한다면 향후 본인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처럼 어떤 일이든 본인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같은 시간일지라도 누구에게는 그저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본인의 미래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박사후과정을 그저 취직을 준비하는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본인이 앞으로 연구자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 시간을 보다 즐겁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임형진 카이스트 박사·건설환경공학과 

카이스트에서 구조공학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비선형 초음파 모듈레이션을 이용한 피로균열 진단에 관한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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