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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행동 혹은 문자폭탄에 관한 열한가지 비판과 답변
문자행동 혹은 문자폭탄에 관한 열한가지 비판과 답변
  •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 승인 2017.07.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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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김명석의 필로폴리스_2. 쟁점으로 읽는 '문자폭탄'

2016년 겨울 이후 한국사회는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더 깊이 심화된 실질적 민주주의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무관심을 넘어 일상의 삶이 모두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식의 확장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드는 발화점이 될 것이다. 그간 <교수신문> 지면을 통해「박근혜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과 언어철학」등을 발표했던 철학자 최성호 경희대 교수와, 『정치신학논고』의 저자인 김명석 국민대 교수가 격주로 번갈아 집필에 참여하는 '최성호-김명석의 필로폴리스'연재를 새롭게 선보인다. 한국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사안, 사회적 이슈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젊은 철학자들이 전개하는 명쾌한 분석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표창원 의원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디어는 여전히 문자행동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다. 지난 몇 주 동안 사설을 통해서 혹은 자신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학자를 내세워 문자행동을 전방위로 공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도 ‘문자테러’나 ‘디지털 홍위병’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그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문자행동에 대한 이런 비판들은 억지스런 우격다짐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무시무시한 테러이고 민주주의의 유린이라고 말하며 비난할 정도면 그에 걸맞는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논리의 박약함에,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에,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무지에 놀랄 따름이다.
 
윤평중·이택광 교수는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문자행동이 마녀사냥이라고 성토하며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목소리에 힘입었는지 야당 일각에서는 ‘문자폭탄방지법’이란 것을 만들 모양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이다. 많은 민주주의 학자들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표현의 자유(가령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에 비해 훨씬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그런 기본권의 제약에 관한 논의는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시민적 권리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일각에서 막무가내로 문자행동을 금지하는 법의 도입을 주장하고 그것을 주류 미디어에서 전문가의 견해인양 보도하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문자행동이 그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나쁜가? 한번 주요 쟁점을 조목조목 따져보자.

비판 1. 문자행동은 민주주의를 말살한다.
△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명언이 말해주듯 국민들이 자신의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국민들의 자기지배(self-govern)를 그 핵심 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국민들의 적극적 정치참여가 필수적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다이아몬드(L. Diamond)나 달(R. Dahl)과 같은 유수의 민주주의 학자들은 빠짐없이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참여를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로 꼽는다. 문자행동이 시민들의 정치참여의 한 양상이라 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해당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말살한다는 비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비판 2. 문자행동은 이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짓밟는다.
△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양한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상의 자유시장(free market of ideas)에서 합리적 토론을 거쳐 최선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대표적 사상가인 밀(J.S. Mill)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들 사이의 경쟁은 필수적이고, 그 경쟁의 핵심은 상호비판이다. 정치인의 선택이나 판단에 대하여 시민들이 비판적 의견을 문자로 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정확히 그 목적에 맞게 행사하는 것으로 건강한 민주주의의 징표이다.

비판 3. 문자행동은 단순히 이견에 대한 비판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게 만들고 의정 활동을 위축시킨다.
△ 문자행동이 일부 정치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는 말은 맞다(이전 글에서 밝혔듯 필자는 이런 심리적 압박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행동 그 자체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정치인의 자세에서 말미암은 바 크다. 늦게 출근한 철수에게 부장님이 “오늘 늦었네”라고 말할 때, 그것이 다음부터는 회사에 늦지 말라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장님의 말을 철수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철수를 압박할 의도 없이 부장님이 단순히 아침인사로 그 말을 한 경우에도 철수가 그것을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화자의 언어행위가 청자에게 유발하는 효과를 철학자 오스틴(J. L. Austin)은 발화효과(perlocutionary effect)라 부른다).

문자행동이 정치인에게 가하는 압박의 효과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항의문자로부터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있을 수 있다. 표창원이나 하태경 의원은 수많은 항의문자를 받고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 전혀 머뭇거림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받은 항의문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을 다시 한 번 성찰할 기회를 주고, 그에 따라 그들이 더 바람직한 정치인이 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볼 수도 있다. 문자행동을 더 나은 정치인이 되겠다는 자세 하에 건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문자행동이 어떤 특정 정치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의정 활동을 위축시킨다면 그건 그 정치인이 문자행동을 수용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문자행동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철수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부장님의 인사말 자체가 아닌 그 말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철수의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판 4. 국민들은 투표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할 수 있다. 굳이 논란이 될 만한 문자를 정치인에게 보낼 필요가 있나? 나중에 선거에서 심판하면 될 일 아닌가?
△ 코헨(J. Cohen), 하버마스(J. Habermas), 엘스터(J. Elster) 등 쟁쟁한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이 투표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인과 시민들이 각종 이슈에 대해서 숙의(deliberation)해야 한다고 본다. 서로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고 논쟁하고 토론하며 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문자행동은 그런 숙의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

비판 5. 정치인에게 보내진 대량의 문자 속에는 욕설과 협박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에서 검찰에 고발한 건수는 200여건이다. 수만 개의 문자 중 일부가 욕설과 협박을 포함한다고 해서 문자행위 전부를 ‘테러’나 ‘폭력’이라는 말로 매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비판 6.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욕설이 포함된 문자를 보내는 것은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욕설에 대한 언어철학적 분석, 그리고 그에 대한 윤리학적 이론을 이 짧은 글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욕설을 사용한다고 늘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습절도범을 ‘도둑놈’, 연쇄살인범을 ‘살인마’, 조희팔을 ‘사기꾼’이라 부르는 것은 정당한 도덕감정의 표현이다. 정치인에게 보내진 일부 문자에 욕설이 담겨 있다 해도 그것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반드시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물론 모든 욕설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 보내진 문자 중 욕설이 포함된 문자가 많지도 않거니와 그들이 모두 비도덕적이지도 않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비판 7. 협박이 포함된 문자도 있다고 하던데?
△ 모든 협박이 다 불법인 것은 아니다. 국민의당의 김인원 변호사는 문자행동을 비판하며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글을 반복적으로 보내면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문자발송자들에 대한 사실상의 협박이다. 오직 X 자체가 불법적일 때에만 X에 대한 협박은 불법적이다. 김 변호사의 협박은 불법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 협박의 내용, 즉 법에 의해 처벌된다는 내용이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음 총선에서 두고 보자”, “다음 총선에서 자한당 폭망할거다”와 같은 문자는 비록 협박이지만 그 내용이 유권자의 합법적인 선거권 행사에 관한 것이기에 불법이라 볼 수 없다. 필자는 정치인에게 보내진 문자들 중에서 협박성 문자는 소수일뿐더러 그것들도 대부분 합법적 협박일 거라 추측한다.

비판 8. 문자가 조직적으로 발송된다고 하는데, 그건 문제가 아닌가?
△ ‘조직적’이라는 말이 적용되려면 과거의 국정원이나 청와대 알파팀처럼 우월적 지위를 갖는 의사결정권자와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추종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 어느 의원에게 문자를 보내자는 글이 게시되고 의원의 전화번호가 공유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조직적’이라 말할 수 없다. 시민들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문자를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 9. 문자행동은 정치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 개인적 사생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역사적 배경, 문화, 개인의 태도에 따라서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인이 자신의 휴대폰을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고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생업을 위해 그런 사생활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간판이나 전단지에 개인의 휴대폰 번호가 자발적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들에게 사생활이 중요하지 않아서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정확히 어떻게 구분될지 분명하진 않지만 국민을 대의해 정치권력을 행사 하겠다 하면 일정 정도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것은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 재산공개도 엄밀히 말해 프라이버시의 포기다. 사생활을 조금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국회의원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비판 10. 그렇다면 대통령이나 장관도 휴대폰 번호 공개하고 문자폭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 문자행동이 주로 지난 대선이나 청문회 기간 동안 발생했는데, 대선 후보 토론이나 청문회를 TV생중계하는 것에는 대통령 후보 혹은 장관급 후보에 대해 전 국민이 함께 숙의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 숙의 과정에 국민들이 문자를 통해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한편 대통령이나 장관의 주요 업무는 이와 상이한 성격을 갖는다. 국가기밀 혹은 여타의 민감한 정보들과 함께 일반인들이 함께 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그 숙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문자행동을 수행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바람직하지 않다.

비판 11. 문자행동이 활성화되면 장기적으로 정치가 후퇴하는 것 아닌가?
△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큰 문제는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과 무지다. 시민들이 문자행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그 문제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필자가 특히 희망적으로 보는 이유는 문자행동이 활성화될 때 정치인들이 정치적 선택을 앞두고 시민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탁현민 행정관과 관련해 문자행동이 여당의원에게도 수행됐다 한다. 여당의원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중요한 선택에 앞서 혹시라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대량의 항의문자를 받을 때 그 선택을 어떻게 공익의 관점에서 정당화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량의 항의문자 앞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선택의 공적 정당성을 설파할 수 있는 용기, 배포, 소신을 갖는 정치인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박근혜 시대처럼 내시 노릇하며 정치하던 시대는 끝났다.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최성호 교수는 서울대에서 과학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문화연구센터 수도권 전임 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전임강사, 호주 시드니대 시간연구소 연구원, 캐나다 퀸스대 철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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