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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 그 오래된 미래?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 그 오래된 미래?
  • 정웅기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정치학
  • 승인 2017.06.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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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은 지금_ ①사회과학의 ‘두 문화’, 그 경계짓기와 경계넘기

전미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APSA)에는 정치학 방법론에 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분과가 존재한다. 1986년에 설립된 정치학 방법론 분과(Political Methodology Section)와 좀 더 최근인 2003년에 만들어진 질적 연구 및 다방법 연구 분과(Qualitative and Multi-Method Research Section)가 그것이다. 전자가 현대 정치학에서 지배적인 양적 방법론을 다루는 연구자들의 모임이라면, 후자는 질적 방법론과 이를 다른 방법론들과 결합시키는 데 관심을 가진 일군의 연구자들이 새롭게 결성한 모임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연구방법론에 관한 공통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입장을 가진 조직들이 발전해왔을까? 단적으로 말한다면, 이 글의 목적은 이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단순한 조직의 차이가 이 글의 관심사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차이는 현대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과 사회학의 방법론적 발전분기와 수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단면을 관찰하려는 한 가지 시도로서, 여기서는 질적 연구 및 다방법 연구 방법론을 통한 인과추론(Causal Inference in Qualitative and Multi-method Research) 분야의 최근 동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논쟁의 출발점: 킹, 코헤인, 그리고 버바

사회과학, 특히 경험적 사회과학의 본령이 연구설계(research design)에 있다는 언명은 학계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하나의 상식이다. 그러한 연구설계의 중핵은 이론(분석틀)의 구축과 방법론에 대한 정당화로 구성된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사회과학은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방법론의 사용을 둘러싸고는 많은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관한 논의를 이해하는 가장 통상적인 경로는 이른바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따르는 것이다. 예컨대, 방법론의 대가로 폭넓게 인정받는 개리 킹(Gary King)은 컴퓨팅 기술과 통계 소프트웨어의 전례 없는 발전이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과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그가 사회과학에서 양적-질적 연구 간의 오래된 분할이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통합적 사회과학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킹의 이 같은 야심찬 기획은 그의 연구경력 초기부터 관찰할 수 있지만, 그의 주장이 학계에서 하나의 확립된 견해로 대두한 데는 한 권의 책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94년에 그가 같은 대학의 로버트 코헤인(Robert Keohane), 시드니 버바(Sidney Verba)와 함께 쓴 Designing Social Inquiry (이하 KKV라는 통칭으로 표기)가 그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학부 고학년과 대학원 수업에서 정치학 방법론 수업의 교재로 널리 읽히는 영향력 있는 저작이다. 

KKV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는 좋은 연구를 위해서 어떤 절차와 방법을 써야 하는지에 관한 실전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례(관찰)를 선택하는 방법(4장), 선택된 사례를 분석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피하는 방법(5장), 그리고 추론의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방법(6장)이 차례로 논의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적 실천을 정초하는 것은 이들이 제시한 추론 개념이다. 

KKV는 사회과학을 ‘과학(science)’으로 만드는 핵심 개념이 추론(inference)이라고 주장한다(1장). 구체적으로 KKV는 추론을 기술추론(descriptive inference)과 인과추론(causal inference)로 구분한다(2장과 3장). 이들에 따르면, 기술추론은 단순한 기술(description)과 구분된다. 후자가 ‘사실의 모음(the collection of facts)’이라면, 전자는 이론이나 가설을 관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한 사실을 잘 조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추론의 요체는 연구대상의 체계적 요소를 비체계적 요소로부터 분리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새롭게 알 수 있는 것을 끌어낼 수 있다. 반면 인과추론은 반사실적 상황(counterfacutals)에 대한 검토를 통해 처치(treatment)의 인과효과를 밝히는 작업이다. 인과효과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단위 동질성 전제다. 이에 따르면, 두 분석단위가 핵심 설명변수에 관해 동일한 값을 가지고 있다면 종속변수의 기댓값 역시 같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조건부 독립이다. 이는 설명변수에 할당되는 값은 종속변수가 취하는 값과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설명변수가 종속변수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위의 논의는 KKV가 준거하는 인과추론의 논리가 통계적 인과모델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의 한 구절에 집약돼 있다. “두 가지 연구 스타일이 존재하지만, 추론의 논리는 하나다(two styles of research, one logic of inference).” 즉, KKV는 양적 연구뿐 아니라 질적 연구에도 동일한 추론의 논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부제 ‘Scientific Inference in Qualitative Research’는 이들이 질적 연구자들과 그 연구행위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질적 연구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주장은 질적 방법론을 양적 방법론에 귀속시키려는 시도였다. 이는 곧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KKV에 대한 대응: 질적 연구 및 다방법 연구방법론(QMMR) 운동

KKV의 반향과 그 영향력은 심원했다. 흥미롭게도 이는 양가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KKV는 질적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방법론을 보다 명시적으로 확립하고 가다듬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대응은 KKV의 전면적 수용이 아니라, 그에 관한 강력한 비판을 수반했다(예컨대, 콜린 앨먼(Colin Elman)-그는 아래에서 언급할 시라큐스 대 산하 CQMI의 소장이다-은 오늘날 질적 연구 및 다방법 연구 방법론(이하 QMMR)이 KKV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학술적 대응을 검토하기 전에, 그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살펴보는 것이 KKV가 촉발한 실질적 여파와 그 대응의 정도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글머리에서 전미정치학회 내에 서로 다른 분과를 중심으로 양적 연구자와 질적 연구자들이 조직되어 있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밖에도 각자의 연구관행을 재생산하고 확산하는 유관기관들 역시 독립적으로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예컨대 양적 연구의 본산으로 불리는 미시간대의 ICPSR(Inter-university Consortium for Political and Social Research)에 대응해, 시라큐스대에는 CQMI(Center for Qualitative and Multi-Method Inquiry)이 존재한다. 두 기관은 또한 각기 별도의 여름 프로그램 The ICPSR Summer Program과 The Institute for Qualitative and Multi-Method Research(IQMR)을 운영하고 있다. 

끝으로, 출판사업의 측면에서도 양자는 나란히 케임브리지출판사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양적 방법론의 중요한 성과들이 ‘Analytic Methods for Social Research’ 총서(편집진: R. Michael Alvarez, Nathaniel L, Beck, Lawrence L. Wu)에서 발간되는 데 반해, QMMR의 핵심적 결과물은 ‘Strategies for Social Inquiry’ 총서(편집진: Colin Elman, John Gerring, James Mahoney)를 통해 출간되고 있다. 

학술적 차원에서, KKV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대응은 크게 두 권의 저작으로 집약될 수 있다. 하나는 헨리 브래디(Henry E. Brady)와 데이비드 콜리어(David Collier)가 편집한 Rethinking Social Inquiry: Diverse Tools, Shared Standards이다(2010년 <World Politics>에 출간된 논문에서, 마호니는 콜리어를 ‘현대 정치학에서 QMMR 운동을 정초한 인물’로 평가한다). 2004년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2010년에 수정2판이 나왔다. 이 책은 KKV에 대한 철저한 텍스트 분석에서 시작해 논의의 근간을 이루는 통계적 모델의 가정들에 대한 근본적 비판, 그리고 대안적 개념과 분석 전략의 제시를 아우른 혁신적인 저작이다. 

다른 하나는 제임스 마호니(James Mahoney)와 개리 고어츠(Gary Goertz)가 함께 쓴 A Tale of Two Cultures: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Research in the Social Sciences (2012)이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2006년에 저널 <Political Analysis>에 실린 동명의 논문이 근간이 되어 이후 단행본으로 발전한 결과물이다. ‘두 문화’라는 언명이 잘 드러내는 것처럼, 이들은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가 동일한 추론의 논리를 공유한다는 KKV의 주장과 달리, 양자는 서로 근본적으로 상이한 추론 형식을 취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질적 방법론에 근거한 추론의 논리는 사례 내 분석(within-case analysis)과 집합이론 및 논리학(set theory and logic)에 그 토대를 둔다. 다음 편에서는 두 저작의 내용에 주로 근거해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계속]

 

정웅기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정치학 
미국정치와 비교정치 분야에서 사회정책과 정치제도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개혁 ‘이후’」, 「트럼프 이전과 이후의 미국 정치」, 「점진적 제도 변화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등의 논문을 썼다. 제도주의 이론과 질적 연구 및 다방법 연구 방법론을 통한 인과추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미국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의 시행 이후 메디케이드의 확대가 주 정부 별로 차이를 보이는 결정요인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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