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3:25 (금)
끝, 그리고 시작
끝, 그리고 시작
  • 김득수 중앙대 박사후연구원·의과학
  • 승인 2017.06.27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득수 중앙대 박사후연구원·의과학
▲ 김득수 중앙대 연구원

우리는 흔히 頂上에 오른다고 한다. 눈앞에 높은 언덕이 있다면 그 언덕의 정상이 길의 끝인 것처럼 착각이 된다. 막상 끝인 것만 같던 그 언덕의 정상에 서면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우린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또 다른 언덕의 정상을 위해 처음 마주한 듯 무심히 또 다시 걸을 뿐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연구자들이 꿈을 위해 정답도 없고 正道도 없는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나도 예외없이 학위를 목표로 쉼 없이 걸어왔다. 학위 과정동안의 기억을 사진으로 표현한다면 몇 안 되는 장면들만이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일상 반복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구를 하면서 백신 및 항체 단백질을 발현하는 식물을 새롭게 구축을 했을 때에 기쁨, 한계에 부딪쳐 한없이 무너져 내릴 때의 회의감, 사회에서 낙오된 듯한 불안감, 예상했던 결과를 얻었을 때의 즐거움 등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했음에도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만 치부했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학위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그때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것들을 외면한 채 무심코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며 넘어온 언덕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은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두려움과 부담이라는 단어가 따라왔다. 학위과정을 받는 학생이 아닌 한 분야의 박사라는 무게에 눌려 사회가 정해 놓은 잣대에 맞추고 있었다.

학위과정 때부터 백신 및 항체를 식물에서 발현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겪은 많은 어려움들이 이제는 좋은 약이 돼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어려움들을 해결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의 성취감이야 말로 연구자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이렇듯 일상에서 소소하게 찾아오는 행복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면 한다. 문득, 많은 시행착오와 무의미 하다고만 여긴 많은 일들이 언젠가는 연구자로서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고 하셨던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이 학위과정을 하면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학위는 치열함 속에서 잘 견딘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며, 또 다른 시작의 동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씨앗이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맺는 달콤한 열매처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꽃 피웠으면 한다.

김득수 중앙대 박사후연구원·의과학

중앙대에서 의과학 전공을 했다. 식물에서 다양한 형태의 백신과 항체 단백질을 발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