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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향방?
촛불의 향방?
  • 이채언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17.06.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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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채언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 이채언 전남대 명예교수

우리가 무슨 혁명을 벌써 이루었다고 촛불혁명이라고,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혈혁명이라고, 무슨 기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것이 어째서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혈혁명이란 말인가. 최근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색깔혁명에 대해서는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단 말인가.

서구 신자유주의이론의 세례를 받아 서구금융자본으로부터는 경제적 지원을 미국CIA로부터는 전술적 지원을 서구 언론으로부터는 광고 선전 지원을 받아가며 현지의 기득권세력과 기존노동조합을 약화 내지 몰락시킴으로써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없는 시장경제, 공정하고 기회균등이 보장된 시장경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구축하는 시대적 움직임을 간단히 색깔혁명이라고 부른다. 권위주의정부 대신 돈이 지배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4월 혁명과 비슷하나 일반근로대중의 요구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4월 혁명과 다르다.

1986년 2월의 필리핀 옐로우혁명, 1989년 12월의 체코슬로바키아 벨벳혁명, 2000년 10월의 유고슬라비아 불도저혁명, 2003년 11월의 조지아 장미혁명, 2005년 1월의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과 이라크의 퍼플혁명, 같은 해 3월의 쿠웨이트 블루혁명, 같은 해 4월의 키르기스탄 튤립혁명과 레바논 시더혁명, 2006년 3월의 벨라루스 청바지혁명(불발), 2007년 9월의 미얀마 사프란혁명(불발), 2009년 4월의 몰도바 포도혁명, 2010년 2월의 이란 그린혁명(불발). 2011년 1월의 튀니지 자스민혁명, 같은 해 2월의 이집트 연꽃혁명, 같은 해 3월의 중국 자스민혁명(불발), 2016년 7월의 마케도니아 칼라혁명이 다 같은 류의 색깔혁명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의 촛불혁명이 세계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건이란 말인가? 색깔혁명을 치른 나라치고, 그것이 성공했든 불발로 그쳤든, 주민생활이 더 나아진 나라는 지금껏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을 보면 그런 자랑이나 자부심은 정말 우려스런 현상이다. 

지금 촛불의 요구는 적폐청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경찰개혁’, ‘국정원개혁’으로 구체화되고 있지만 개혁대상으로 지목되는 지금의 검찰, 경찰, 국정원, 언론, 교육은 원래 일제가 패망과 더불어 이 땅을 떠날 때 남겨놓은 일제 때의 모습 거의 그대로 보전돼 왔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1987년의 민주화 이후 개선된 것도 있긴 하다. 한문위주의 세로쓰기 공문서를 국문위주의 가로쓰기로 바꾼 것, 공문서의 옛날 투 말씨를 현대 투 말씨로 바꾼 것, 일본식 관공서 용어의 어투를 순화한 것(이를테면 대학교 게시판에 ‘아래 학생은 장학금 대상자이니 3월 5일 12시까지 학생과로 출두할 것’이라던 공고문이 ‘아래 학생은 장학금 대상자이니 3월 5일 12시까지 학생과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로 순화된 것 등) 등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바뀐 바가 거의 없다.

예외가 있었다면 87년 이전에는 근로자의 화폐임금을 매년 정부가 산정한 일정금액 이상 지불하지 못하게 최고임금제도를 법으로 강제했으나 88년부터는 정부가 매년 산정한 최저생계비 이상 화폐임금을 지불하도록 근로기준법을 최저임금제도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97년의 IMF사태 후에는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근로자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돌릴 수 있게 만들어 88년 개선됐던 노동자의 처지는 87년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버렸기 때문에 결국 45년 해방이전이나 마찬가지로 됐다.

일본은 식민지 통치시스템만 우리에게 물려준 게 아니었다. 식민통치 시스템을 책임지고 운영해나갈 지배엘리트도 이 땅에 같이 심어놓았다. 그들은 조선에 귀화할 일본인 수만 명과 함께 일부 친일파 인사로 구성된 소위 세화회의 사람들에게 미군정이 들어서기 직전까지의 25일간에 걸쳐 마구잡이로 남발한 165억엔(현재 33조원 상당)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물려줌으로써 그들이 향후 조선의 정치를 매수하고 각종 적산 불하와 국유지 불하에 참여해 원시적 자본축적을 위한 종자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그들은 오늘날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재벌로 성장했다. 조선인을 개, 돼지로 보았던 일본제국주의자와 똑같은 사고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일제가 빠져나간 식민통치기구의 공백을 타고앉아 일본제국주의와 동일한 특권과 방식으로 한국인을 수탈했고, 일제와 동일한 방식의 편법과 탈법, 불법과 비리와 위법을 일삼으며 한국사회를 유린했다. 최근에는 그들의 특권적 지위를 자손만대 계승시킬 귀족중심사회로 한국사회를 변환시키려 획책했다.
 
한보철강사건이 일어난 1997년까지만 해도 권력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은행융자조차 얻기 어려웠고 자기 돈이 있어도 일반인은 관청의 인가나 허가가 없으면 자영업조차 마음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화회의 재벌들은 쉽게 정치권력과 결탁해 탈세와 밀수를 일삼았을 뿐 아니라 외국의 선진기술이나 신상품의 국내 판권을 독점하는 식으로 폭리를 취해 국내기업의 경쟁력배양은 물론이고 성장잠재력까지 질식시켰다.
 
호경기에는 금융특혜(시중금리보다 1/3밖에 안 되는 특별금리)를 받아내 그것으로 자금을 조달해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그 돈으로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탈취, 도용, 매수해 나라의 기술혁신기풍과 기술개발의욕을 짓밟았고, 불경기에는 자기들이 지불하는 대출이자에 대해 탕감이나 지급유예를 받아내는가 하면 자기들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혜택을 제공받아 그동안 밀린 재고상품을 쉽사리 제값에 처분할 수 있게 했으며 매각이 힘든 보유자산(채권이나 부동산)을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높은 값에 구매해주는 방식으로 자기들 보유자산의 가치붕괴를 막았다. 자기들이 실제 출자한 돈은 전체 기업의 자산 가운데 정작 얼마 되지 않는 비율이면서도 계열사를 많이 거느릴 수 있었던 것은 순환출자, 상호신용, 내부거래 등의 방식을 이용한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회사에 손실이 생기면 세금특혜나 보조금으로 보상해주었고 이익금이 생기면 재벌일가 멋대로 처분토록 허용했다. 재벌의 바로 이런 행태 때문에 촛불은 재벌개혁을 적폐청산의 제1과제로 제기했다.

그러나 재벌개혁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정치적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지배엘리트들이 민심수습차원에서 약방감초처럼 제기해온 이슈였고 그때마다 군사재판(1961년의 5월과 1980년의 5월)을 통해 재벌로 하여금 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헌납하도록 했다. 이번 촛불도 재벌개혁의 주 내용을 재벌총수 이익금의 환수조치와 골목상권보호, 불법·탈법적 경영세습의 금지에 그친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과거 군사정변 때의 재벌개혁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재벌개혁은 재벌해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해체는 재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재벌개혁은 재벌이 그 탄생과정과 성장과정에서 자행한 온갖 편법과 탈법, 불법과 위법 및 비리를 모두 과거의 일로 덮고 넘어가는 대신 재벌총수의 재산은 그 일부를 사회에 환수토록 한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재벌개혁은 직접 외세가 개입해서 이루어진 적도 있다. IMF가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달러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재벌개혁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한국 내에서의 외국자본의 투자활동이 주요한 길목마다에서 재벌의 행태가 걸림돌로 작용해 공정한 경쟁을 봉쇄당해 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부터 민족진영이 주장해 왔던 ‘재벌해체’ 구호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재벌개혁’ 또는 ‘재벌혁파’란 구호가 대신 등장하다가 어느새 ‘재벌개혁’으로 통일됐다. 소위 강남진보와 신자유주의 세력인 외국금융자본의 합작이 이때부터 시작된 셈인데 이제는 촛불마저 그 구호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5월 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서부터 촛불항쟁이 ‘장미혁명’으로 불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촛불도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위한 색깔혁명으로 변질시키고자 하는 외세의 기획이 작동함이 의심된다. 정말 색깔혁명이라면 이제부터는 촛불의 힘으로 재벌을 비롯한 기존 지배세력을 철저히 약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근로대중의 요구를 철저히 배제해 나갈 것이다. 재벌을 비롯한 기존 지배세력이 약화된 그 힘의 공백에 끼어 들 세력으로는 외국자본을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세력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겉으로는 ‘공명정대하고 기회균등이 실현된 시장경제’를 표방하지만 아무 자본도 없는 기층대중은 애초부터 참여할 수 없는 허망한 세상이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외국세력에게만 살판나는 시장경제이고 청년실업의 해소나 사회양극화의 극복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한국의 촛불은 지금 세 갈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광복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유린해온 적폐세력이 청산되고 난 빈자리에 외세를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대신 들어앉아 사회양극화와 청년실업을 더욱 강제하는 장미혁명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그 빈자리에 민주적 시장경제를 도입해 사회양극화와 청년실업까지 함께 치유해나갈 민주촛불혁명으로 발전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청산의 대상인 친일세력이 다시 복귀해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주체로 변신하는 반역의 촛불로 허무하게 끝날지 세 갈래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앞으로 우리가 위 세 갈림길에서 어떤 혁명을 맞이할지, 미래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 촛불에 참여해 기꺼이 시대를 책임지려는 시민들의 자각에 달려 있다. 청년실업과 사회양극화의 문제는 비단 한국사회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침투한 지구촌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인류사회가 보편적으로 직면한 시대적 문제이다. 촛불항쟁이 적폐청산이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수과제에 머물지 않고 청년실업의 해소와 사회양극화의 극복이라는 인류보편의 시대적 과제의 해결에까지 나아갈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장미혁명’이라는 누명을 벗어던지고 인류의 미래를 밝힐 동방의 촛불, 세계사적 촛불혁명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이채언 전남대 명예교수 ·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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