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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삼켜도 속이 타네
얼음을 삼켜도 속이 타네
  •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 승인 2017.06.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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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근현대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명인 양계초의 호는 ‘飮氷室主人’이다. ‘飮氷室’은 그의 서재 이름으로, 『장자』 ‘인간세’ 편의 “왕에게 아침에 임무를 부여받으니, 저녁에 얼음물을 마셔도 속이 탄다(我朝受命而夕飮氷, 我其內熱與)”란 문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술변법이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한 양계초의 비장한 심정을 반영한 號인데, 이 시기 그의 글들을 모은 『飮氷室自由書』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강중기·양일모 외 옮김, 푸른역사). 1908년 그 일부가 국한문 혼용으로 번역돼 나온 적이 있으니, 110년 만에 비로소 완역본이 출간된 셈이다.

양계초는 이 책의 제목을 ‘자유서’라 붙인 이유를 “사상과 언론, 출판의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밀(J.S.Mill)의 발언에 동감하기 때문이라고 ‘敍言’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 수록된 글들은 양계초가 책이나 신문 기사 등을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별다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쓴 것이다. 당시의 동아시아 상황이나 본인의 처지가 급박한 만큼, ‘국권과 민권’, ‘중국혼’, ‘우국과 애국’, ‘파괴주의’ 등 무거운 주제가 많지만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 교육과 학문에 관한 글들도 눈에 띄는 데, 지금 읽어도 가슴이 뜨끔해지는 대목이 종종 있다.

“천하가 망한 것이 어찌 八股, 楷法, 考據, 詞章 때문만 이겠는가? 만약 정신이 없다면 날마다 서양 책을 들고, 서양의 학술을 말한다 하더라도 천하가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에는 관립이니 민립이니 하는 학교들이 수없이 설립됐다. 나는 그들 학교를 설립한 취지가 학생들을 지혜롭게 하려는 것인지, 어리석게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과연 국가의 치욕을 막기 위해 쓰일 사람을 기르려는 것인지, 아니면 훗날의 부귀를 도모하게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양계초는 당시 시국을 마치 ‘만 마리 말이 날뛰고 만류가 소용돌이치며 힘과 지혜를 겨루는’ 상황이라 보고, 이에 임하는 중국의 교육이 여전히 ‘복종’과 ‘훈육’에 머물러 있음을 한탄한다. 온 나라의 힘을 끌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 속에서,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오직 ‘자유’ 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용한 문장의 글 제목이 ‘정신교육은 곧 자유교육(精神敎育者自由敎育也)’인 이유다. 교육이 정부에 복종하는 것을 그 정신으로 삼게 되면, 젊은이들이 독립과 자존의 기질을 갖추지 못하고 비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 각 영역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개혁의 기대와 활력이 느껴지는데, 상대적으로 대학과 교육계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하다. 교육부의 역할 축소를 공약한 만큼, 교육부나 대학들이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럴 수 있고, 개혁을 담당할 장관이 아직 임명되지 않은 현실도 ‘태풍 전 고요’와 같은 현 상황의 이유일 것이다. 새 정부의 제일 정책 목표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니, 다른 무엇보다 대학 사회의 고질인 ‘정년 트랙’과  ‘비정년’ 교수 간의 차별이 이번 기회에 개선됐으면 싶다.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보수나 신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데, 대학만큼 이 문제가 심각한 곳도 없다.
 
새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기대와 함께, 장기적으론 교육이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권의 향방에 따라 교육정책이 바뀌고, 기존에 진행되던 학술 사업들이 이전 정부와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 전면적으로 조정되는 후진적인 모습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믿기지 않지만, 일각에선 정부의 일자리창출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학술지원사업의 규모를 축소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말 그대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모양새인데, 소문이 사실이라면 가장 인문학적이라는 현 정부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교육과 대학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고사 위기에 처한 인문학 진흥이나 기초학문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으면 싶다.
 
교육과 학문이 일자리창출이나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이라는 천박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할 수밖에 없다. 얼음을 삼켜도 속이 타는 심정이니, ‘飮氷室’의 의미에 절로 공감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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