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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적 시좌를 통해 한국문학을 다시 묻다
세계문학적 시좌를 통해 한국문학을 다시 묻다
  • 김경연 부산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06.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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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뿌리내린 ‘한국문학회’ 창립 4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마치고

한국문학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지난 17일 부산대에서 열렸다. 1977년 부산· 경남 지역의 국문학 연구자가 주축이 되어 발족한 한국문학회는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문학 연구의 전문화를 표방하면서, 수도권 이외 지역 최초의 한국문학연구 학회로 출발했다. 40년 전 10명의 회원으로 시작했던 학회는 2017년 현재 500명에 육박하는 국문학 연구자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전국 규모의 학술단체로 성장했고, 등재학술지 <한국문학논총>을 발간하는 한국문학 연구의 산실로 도약했다. 1978년 12월 1집을 출간한 <한국문학논총>은 연 3회 발행되며 2017년 현재까지 75집을 발간 했다. 

“국문학을 깊이있게 연구하고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한국문학논총> 창간사에서 읽히듯, 그동안 한국문학회는 민족문학의 시좌에서 국문학 연구에 진력해 온 한편, 一國的 시각에 갇히지 않고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한국문학을 독해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중국 조선족 문학의 전통과 번혁’,  ‘일본 사행문학 연구의 현황과 방향’, ‘한일 간 문학의 상호 영향관계 연구’,  ‘한일 기층문학의 상관성과 의미 분석’,  ‘해외문화 접촉과 한국문학’, ‘문학 담론의 동아시아적 과제와 전망’ 등 한국문학회가 기획해온 특집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여기에는 학회가 기원적으로 터 잡고 있는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 역시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가 교통하는 관문적 위치가 부산이며, 서울/지방, 중심/주변의 이분법을 비판·성찰하는 변방의 자의식 역시 강한 곳이 부산이다. 일국적 시야를 벗어나 동아시아적 시각을 통해 한국문학을 再讀하려는 기획들은 이 같은 부산의 장소성에 대한 예민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일지 모른다. 학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역시 최근의 시류를 추수한 것이라기보다 한국문학회의 지속적 관심의 연장일 터이다.  

 서울/지방, 중심/주변의 이분법 비판·성찰하는 자의식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문학회의 40년을 돌아보는 회고강연과 기조강연, 그리고 기획주제를 집중 발표하는 두 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회고강연에서 한국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헌홍 교수는 한국문학회 40년의 역사를 개괄하고 1집부터 75집까지 <한국문학논총>에 수록된 논문을 영역별·갈래별로 일별하면서 그 현황과 성격을 분석했다. 특히 이 교수는 문학연구와 인접학문, 한국 문화와 문학, 동아시아문화권에서의 한국문학, 재외한인 문학 등으로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민속문학, 대중문학, 문헌학, 지역문학 등의 자료 발굴과 연구를 통해 텍스트의 다변화를 견인해온 동시에, 한국문학과 디아스포라, 다문화가정과 새터민의 삶에 대한 문학적 관심 등 지구촌시대 한국문학의 역할을 진지하게 궁구해온 온 <한국문학논총>의 성과를 술회하면서, 국가·? 지역·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어 통섭하고 횡단하는 도전적 연구를 지지해온 <한국문학논총>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회고강연에 이어 진행된 기조강연의 첫 순서는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제하의 발표에서 그는 서구, 특히 서유럽 중심의 세계문학사를 비판하고 비서구의 문학을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새로운 세계문학사 기술을 촉구했다. 서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사의 서술을 정상화하겠다고 나선 러시아 고르키세계문학연구소의 『세계문학사』 편찬 작업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세계문학사』가 러시아문학을 중요시하고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민족의 문학을 등장시킨 것은 진전된 측면이지만, 동아시아문학의 종횡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특히 “한국문학에 관한 서술은 미비하고 부정확해 세계문학사를 대등의 관점에서 총괄해 이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다양한 문화권이 공유하고 있는 ‘구비서사시’의 전통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부(중국)나 주변부(일본)가 아닌 월남과 더불어 ‘중간부’에 위치한 한국에서 중심부의 ‘공동문어문학’과 주변부의 ‘민족어문학’이 대등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 또한 다른 아시아·아프리카와 유사하게 식민치하에서 근대문학을 이룩하고 민족해방 의지를 고취하는 과업을 함께 수행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사 이해를 바로잡는 근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간취했다. 이는 자국문학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서구중심주의와 민족주의 양자를 넘어 세계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쓰려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 기조강연자로 나선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한국문학을 서구문학의 아류로 상정’한 과거의 비교문학론의 폐해와 ‘서구를 기원으로 숭배해온 비교문학적 연구에 대한 응전’으로서 내재적 발전론의 한계를 동시에 넘어서는 차원에서 ‘비교문학의 비판적 복권’을 주장했다. 최 교수는 서구를 하나의 원본/기원으로 삼고 서구문학을 발신자로, 일본문학을 중개자로, 한국문학을 수신자로 삼아온 비교문학론이 서구라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나, 이를 극복하겠다고 나선 내재적 발전론 역시 서구가 ‘숨은 신’의 형태로 편재했다고 지적하면서, “비서구 지역 근대문학의 탄생을 서구문학의 충격과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냉철히 인정하면서도 그 영향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서구 편향적 비교문학론과 민족 중심의 내재적 발전론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동아시아적 시각’을 제안하는데,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지역문학을 상정하고 한국문학을 그 범주 안에서 독해하는 작업은 동아시아 문학의 분절을 넘어 공동성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며, 서구문학 중심의 세계문학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닌 ‘기존 세계문학의 창조적 변용’을 모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논의되는 '세계문학론'에 대한 비판

기조강연에 이은 기획주제 발표는 두 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부 ‘근대전환기의 한국문학과 ‘세계’의 번역’에서는 조선후기 한일 간 교류를 통한 통신사의 학문적 자성 과정(정은영), 근대 한국 전래동화의 형성과 문예적 성격(권혁래), 근대 초 개신교 선교사 게일(James Scarth Gale)의 한국문학 세계화 기획(이상현)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이어진 2부 ‘지구지역시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에서는 김억과 우에다 빈을 통해 20세기 초 조선(식민지)과 일본(제국)의 서구 문예론 수용의 차이를 조명하고(김진희), 최근 국내 학계와 문단에서 전개되는 세계문학론에 대한 본격적 고찰(고봉준, 조영일)이 개진됐었다. 

고봉준은 「세계문학(론), 아포리아와 아토포스」에서 2000년대 이후 세계문학론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전과 변별하고, 세계문학론을 전유하는 방식의 차이, 즉 ‘괴테-마르크스적 기획’ 속에서 사유하는 진영과 기존 세계문학론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지구적 세계문학’의 구성을 주장하는 진영의 변별된 논의 방식을 조명했다. 아울러 그는 세계문학론의 확산이 한국문학을 ‘국문학’의 차원에서 사유해온 기왕의 인식에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관점을 벗어날 때 ‘국문학이라는 제도 자체의 기반이 침식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둘러싼 욕망의 다층을 읽어낸 조영일의 「국문학에서 K-문학까지」도 흥미로웠다. 그는 ‘국문학, 한국문학, K-문학’이라는 용어에 얽힌 서로 다른 사정과 욕망을 독해하면서, 최근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에 대한 강박관념과 국가 지원에 대한 집착이 국내 독자들마저 외면하는 한국문학의 가난한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서 시급한 세계문학론은 세계문학 논의 자체라기보다 세계문학에 집착하는 욕망의 정체를 심문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는 세계문학론에 대한 조영일의 비판적 지적은 누누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한국문학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지구지역적 관점에서 한국문학을 재독하고 세계문학적 시좌를 통해 한국문학을 성찰해보려는 이번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주제의 글들은 <한국문학논총> 76집(2017. 8)으로 묶일 예정이다.        

  

김경연 부산대·국어국문학과
필자는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을 지냈고, 비평론을 전공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이렌들의 귀환』,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등이 있으며, 편저로 『불가능한 대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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