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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소속 체제 벗어나 ‘교육과정’에 집중해야
학과소속 체제 벗어나 ‘교육과정’에 집중해야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 승인 2017.06.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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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 석좌교수, 대학교육 혁신의 길(최종회)_ 한국형 리버럴아츠칼리지

학술성 추구와 산업계 요구 반영, 이를 위한 기초학문 교육과 직업교육, 이 ‘투 트랙’의 ‘이중과제’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교육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초학문 분야든 응용학문 분야든 차별하지 않고, 교육기구를 ‘전공학과’라는 동일한 형태의 것으로 획일화시키지 말고, 그 교육의 목표와 내용에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해 ‘교육구조의 다양화’를 구체화시킨다면,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는 앞서의 두 가지 교육수요를 함께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즉, 기초학문 분야 교육기관과 응용학문 분야에 교육기구을 두되, ‘전공학과’ 중심으로 운영하지 않고 교육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후자의 학과에서는 전공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전자의 학과에서는 자기 학과 학생뿐 아니라 전교생을 상대로 교육하도록 한다면, ‘이중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교육구조의 도입을 위해 전제가 될 요건으로 다음 세 가지 단위를 별개로 취급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①교수 소속 교무행정 및 교수활동의 단위인 학과와 ②(전공-부전공-복수전공-연계전공 등으로 다양한) 학생의 학업 트랙 ③(학과단위, 소계열, 대계열 등으로 다양한) 신입생 모집 단위를 별개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통념에 따르면 이 세 단위는 하나로 통합돼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꼭 그렇게 돼야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방침을 수용하면, 기초학문분야에서는 그 특정 학과에 ‘전속’돼 그 학문을 ‘전공’으로 학습해야 하는 학생은 없다 하더라도 교수가 속한 그 학과는 엄존할 수 있다. 그 대학에 그 학과의 교수들이 제공하는 기초학문분야의 교과를 배울 학생이 있는 한, 그러하다. ‘전공학생’이 없더라도 전교생을 상대로 기초학문분야의 교육을 해야 한다면, 교수진은 오히려 더 확충돼야 할 것이다. 응용학문분야의 교육을 받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기초학문분야의 교과목을 수강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면 되는 일이다. 

이 ‘학사운영의 유연화’ 방침과 더불어 ‘교육과정의 성층화’ 방침을 채택, 이에 따라 기초학문 분야 학업을 토대로 하고 그 위에서 특정 응용학문분야 학업을 수행하도록 교육과정을 ‘성층적’ 구조로 편성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직업지향적 학업을 수행하는 다수의 학생들도 불가피하게 기초학문분야의 교육을 받게 되고, 이 교육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 분야의 학문적 기반도 확실해질 수 있게 된다. 

전공학과의 구획이 엄격한 현행의 ‘단층형’ 교육구조는 기초학문분야 전공과 응용학문분야 전공을 평면에 병렬시켜 놓고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어, 앞서 말한 ‘투 트랙’을 오직 상호 배제하도록 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역시 대학이 ‘전공학과’ 중심의 교육을 개선해 ‘교육과정’ 중심의 교육으로 변신할 때, 기초학문분야는 그 학문적 교육적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전망을 갖는다. 

기초학문분야의 교육기관과 응용학문분야의 교육기관을 ‘전공학과’라는 동일한 형태의 것으로 획일화시키지 말고, 그 변양을 수용하는 ‘교육구조의 다양화’ 방침을 채택한다면,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는 교육수요를 함께 충족시켜 ‘투 트랙’의 고등교육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초학문 분야 교육기관과 응용학문 분야 교육기관을 두되, 전자는 전교생을 상대로 교육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구조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학사과정에서는 학생을 ‘전공학과’에 ‘전속’시키지 않고 기초학문 분야에서 여러 학문을 다양하고 균형 있게 교육받게 하는 미국식 University College(학부대학) 또는 Liberal Arts College(자유학예대학)등의 교육구조다. 

미국의 Liberal Arts College(자유학예대학)도 미국에 독특한 것이 아니라 실은 유럽의 고전적인 고등교육 전통을 전승한 것이다. 본래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이란 전문 교육에 대립하는 교육이념으로 문자 그대로는 ‘자유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직업이나 생업과 같은 특정 목적에 수단으로서 봉사하게 되는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케 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래적 가치를 갖는 품성을 도야하고 자기목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이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직업적 목표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데 있다. 자유교육의 지향은 따라서 자율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능동적 주체적 인격의 도야에 있으며, 이를 통한 ‘인간됨’(인격)의 고양에 있다. 이는 인간을 ‘형성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는 미정형의 ‘자유인’으로 전제하기에 가능한 것으로, 이 ‘자유인’은 비판적 사유를 통해 이 미정형인 자신을 ‘형성’시켜 나아가는 존재다. 

이러한 ‘자유교육’의 이념은 시민사회가 형성된 근대 이후 (특히 미국사회에서)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의 이념과 중첩적으로 대체돼 갔는데, 그 기본정신은 자유교육과 공통되는 요소가 많다. 대학교육의 현실을 두고 말하자면, 전공교육이 특정분야의 전문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분화된 특정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라면,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이란 이러한 특정의 능력을 갖고 특수 분야에서 특정의 전문적인 활동을 하는 직업인이기에 앞서 건전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일에 종사하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보편적인 자질과 능력을 함양해 전인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형성케 해주는 교육이라고 할 것이다. 

이 교육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란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로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으며,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선 공동체가 공유하는 ‘일반적 가치와 규범’을 인식하고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교육의 교과, ‘자유학예(Artes Liberales)’는 고전시대에는 언어적 학예인 3학(trivium; 문법, 논리학, 수사학)과  수량적 학예인 4과(quatrivium: 대수학, 기하학, 음악학, 천문학)로 이루어졌으며, 근대 이후에는 이들이 확장 변양돼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기초학문의 전 영역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학부교육 위주의 명문 사립대학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미국의 ‘리버럴아츠칼리지’에서 시행하는 ‘리버럴아츠 교육’은 ‘전문교육, 직업교육, 기술교육’과는 대조적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치우치지 않은 안목과 다양한 영역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의 지적 능력을 함양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의 대학들에서 이상적으로 보는 심화 강화된 ‘교양교육’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이들 리버럴아츠 칼리지에 관해 학사행정적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교육내용이 거의 모두 기초학문분야의 것이라는 점 △교수는 학문분류 체계에 따라 설치된 학과에 소속돼 있지만, 학생이 특정학과에 전속되는 일은 없으며, 자유로이 원하는 학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 △전공학업(major)을 하더라도 시기나 인원에 관한 규제 없이 오직 학생의 의사에 따라 수행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변형된 ‘한국형’ 리버럴어츠칼리지

한국의 일반적인 대학 사정과 대부분 대학인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미국 ‘리버럴아츠칼리지’의 원형 그대로 리버럴아츠칼리지를 설립, 운영함은 어려울 것이므로,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충책’을 세워본다.  

△원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당분간은 많을 것이지만), 학생을 학과에 소속시키는 현 제도는 당분간 유지하며, 따라서 일정 수준의 ‘전공학업’을 의무적으로 수행토록 한다. 장차 여건이 성숙될 때, ‘학업의 유연성’을 도모할 것이며, 아울러 적절한 시기에 신입생 모집 단위를 칼리지 전체로 확대하기로 한다. 각 학과에 속하는 학생들은 당해 학과의 전공학업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되, 부분적으로는 그 전공교육과정 대신 ‘공통의 교육과정’ 즉 ‘리버럴아츠 핵심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한다. 각 학과의 고유한 ‘전공교육과정’에서는 졸업생의 취업 요구를 고려해 과도기적으로 전공교육과정의 내용을 적절한 수준에서 변용한다. 각 학과에서는 리버럴아츠칼리지 외의 대학내 전교생에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강화된 교양교육, 즉 기초학문교육을 실시한다.  

종합대학교인 중대규모 대학의 대부분은 이런 형태의 ‘리버럴아츠 칼리지’를 설립해 전교생의 교양교육을 담당케 하는 것이 미구에 닥칠 학령이 반감되는 시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앞서 말한 ‘투 트랙’의 ‘이중과제’를 수행하는 적절한 길이다.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한국철학회 회장, 성균관대 학부대학장,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명예교수,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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