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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부터 편찬, 3천800여명의 학자가 집필 …
문화 국가의 기본 콘텐츠로서 안정적인 지원과 연구 토대 필요
1980년부터 편찬, 3천800여명의 학자가 집필 …
문화 국가의 기본 콘텐츠로서 안정적인 지원과 연구 토대 필요
  • 신익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지식정보센터 소장·&
  • 승인 2017.06.26 11: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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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대로 묻히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간행된 1991년 무렵, 한국 문화를 통째로 다룬 백과사전이 전무한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자녀들을 위해 갖추어 놓은 사전이라곤 한국에 관한 내용이 간신히 끼여 있는 세계 대백과 사전류가 고작이었다. 그러다보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간행되자 국민들의 반응은 대단히 뜨거웠다. 산업화시대의 중심에서 생활해오면서 잊혀 지기 쉬운 한국문화를 집대성하고 ‘웃음’, ‘恨’, ‘方言’, ‘아리랑’처럼 우리의 용어들을 항목으로 설정해 자세히 풀어낸 사전은 그동안 한국 관련 전문 지식에 목말라하던 국민의 갈증을 단박에 해소해 주었다.  하지만 불과 25년 만에 ‘낡은’ 사전이 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의 의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편찬은 국가가 주도한 장기 연구 프로젝트였다. 1979년 9월 25일에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대통령령 제9628호)이 선포되고, 1980년 4월 15일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가 설립되면서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이후 12년 동안 총 예산 174억 원을 투자하고, 3천 8백여 명의 학자가 참여해 10여년 만인 1991년 12월에 총27책을 발간했다. 6만5천 항목에 원고 매수만 42만매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편찬을 ‘팔만대장경 이후 최대의 민족 大役事’로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민족주의와 국민 계몽을 전면에 내세운 군사 정권의 정치적 의도에 일조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미권의 서구 중심적인 ‘세계’ 사전에서 벗어나 국가 주도로 자국의 민족문화만을 종합한 전문 사전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군사 정권에서 시작한 사업이지만 그 결과물이 가져온 파급 효과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여러 석학들의 평가다.

가장 큰 성과는 국가 주도의 연구 사업으로 이뤄지면서 상업 출판에서 다루기 힘든 한국학 관련 콘텐츠를 충실히 담아낸 점이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은 한국 민족문화의 지식 체계화에 폭넓게 기여했으며, 편찬 당시에는 생소하고 낯선 분야지만 이후 폭넓게 활용돼 결과적으로 인문학 부흥을 주도하는 매개체가 됐다.

우리나라는 백과사전 편찬의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다. 조선후기에 확 번지기 시작한 자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토대가 되고 典故에 대한 관심이 博學을 탄생시켰다. 『동국문헌비고』(1770년)에서 시작해 1908년 250권 50책으로 완성된 『증보문헌비고』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백과사전 편찬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현대에 와서야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정리, 집대성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것은 단순한 백과사전이 아니다. 대형 국책 사업으로 탄생한 한국의 대표 사전으로 한국학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 한국학 사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한국학 사전 편찬의 모범이 됐다.  

1991년 초판본의 발간 이후 변화를 거듭했다. 초판본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 요청에 부응하는 사전으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먼저 1992년에 보유편 1권을 추가하면서 총 28권이 됐다. 보유편에 6천 항목이 추가되면서 북한 및 해외 한민족사, 현대사 분야가 확충된 것이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2001년 12월에 『CD-ROM Encykorea』(CD-ROM 6장, DVD 1장)를 출간했다. CD롬에는 시각 자료를 확대해 도판 4만 개, 도표 2천 종, 동영상 5백 종, 음향 250종, 지도 3천 장, 「대동여지도」 1천 장을 수록했다. 이어 2007년 11월부터는 인터넷 웹 서비스를 시작해 지면으로 담아내기 힘든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대형 포털사와 손잡아 네이버나 다음을 통해서도 쉽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포털사이트를 통한 접속 건수는 2015년 4천300만 건에서 지난해 6천만 건으로 늘었고, 현재 네이버 제공 사전 중 이용률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1위를 차지했다. 

한국학 진흥을 위해 안정적 지원 절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발간 이후부터 운영에 녹록치 않았다. 초판본 발간 이후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기업이나 교육부의 수탁 과제로 개정 증보가 진행돼 왔다.  다행히 2007년 11월에 교육부의 수탁 과제로 10년간 매년 5억6천400만원(전임연구원 임금 포함)씩 투입돼 운영됐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10년간 이 예산으로 개정 증보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탁사업은 연구 목표로 제시한 과업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나가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연구 인력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보니 장기적인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이 사업에 투입된 인원?21명 중?5명을 제외한 인원이 전임연구원과 연구보조원이다. 이마저도 올 11월 10일에 종료될 예정이어서 2018년 이후 편찬 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 사전을 편찬한 지 30년도 채 되지 않아서 맞이한 현실이며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연구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80년대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편찬됐다. 그러므로 문화 시대인 21세기의 상황과 이용자 요구에 부합하는 사전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또 한국학의 연구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연구 성과가 계속 축적되므로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개정 증보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또한 국민의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보완할 사항도 있다. 이 사전은 민족문화에 중점을 두어 전통 문화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현대 한국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치, 경제, 산업, 과학, 환경, 노동, 인권, 여성, 복지, 대중문화 등의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북한 및 해외 한민족에 대한 내용도 소략한 편이다.  따라서 개정 증보는 필수 과제이면서 민족문화의 개념을 확대하고 현대 문화의 비중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IT 세대에 친숙한 모바일 및 멀티미디어 콘텐츠 확대 구축도 시급한 실정이다. 사진 및 PDF, 음향, 동영상이 유기적으로 구동되는 시스템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처음 발간될 때와 달리 지식 폭발의 시대다. 각종 정보가 손끝에서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가짜 지식이나 정보까지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공신력을 갖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 정보가 필요하다. 바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정보 과부화 시대에 지식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신뢰성 높은 사전으로 자리해야하는 이유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사전 편찬의 의미를 떠나 문화 국가의 저력을 높이고 경제 발전과 함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익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지식정보센터 소장·한국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의 매화시를 읽다』, 『역주 매천야록』, 『교감 역주 송천필담』 등이 있다. 고전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번역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한중연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한문학 전공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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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이 2018-05-13 13:06:19
집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대동여지도 모두 보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