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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사회’ 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는 근대인의 人文知能
‘세뇌사회’ 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는 근대인의 人文知能
  • 김용하 동의대 ·국문학
  • 승인 2017.06.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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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정치적 글쓰기의 멜랑콜리: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을 중심으로』 김용하 지음 | 서강대출판부 | 380쪽 | 22,000원

현대인은 세뇌 사회에서 살아간다. 세뇌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지속해서 주입한다. 특히 세뇌 사회에서는 가짜 뉴스가 사회적으로 횡행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을 판별할 기회를 왜곡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현대인은 세뇌 사회에서 가짜 뉴스의 허위성을 폭로하기 위해서 정치적 글쓰기를 자기 주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근래 대중은 가짜 뉴스에 대항하기 위해 팩트에 기반을 둔 사실 관계를 규명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편입하기 위해 전자 매체를 활용한 문자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전자 매체를 활용한 팩트 체크(fact check)는 현안에 대한 사실관계만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각자의 견해를 밝히는 행위이다. 아울러 세뇌 사회의 정보를 사실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과정이 글쓰기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물론 팩트 체크 내 팩트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대중지성의 자유로운 상호 검증을 통해 조작된 팩트를 공론장에서 자율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대중 지성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정치적 견해를 글쓰기를 통해 피력하면서 기존의 관행적 언어 시스템과의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결국, 세뇌 사회의 정치적 폭력에 대해 정치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우리 사회가 도달해 있다. 

세뇌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의 ‘정치적 글쓰기’의 문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호모 스크리벤스을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 세뇌 사회에서 대중 지성이 나아갈 방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동서양 근대 사회에서 식민주의와 전체주의에 정치적으로 대응한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의 글쓰기에 주목했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각각 감옥과 도서관에서 글을 썼다. 신채호는 뤼순 감옥에서 조선 역사에 관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발터 벤야민은 음독자살을 하기 전까지 파리 국립 도서관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글쓰기를 수행했다. 필자는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의 정치적 글쓰기가 세뇌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팩트 체크를 하는 정치적 호모 스크리밴스의 기원으로 생각했다. 

이 책은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이 세뇌 사회의 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는 인문 지능의 표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살펴봤다. 제4차 산업 혁명이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제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특히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혁명적 흐름은 우리 삶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삶에서 소외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인간이 인공 지능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人文知能’이 필요하다. 인문 지능은 문·사·철을 중심으로 실제 현실의 모순을 자각할 수 있는 이론을 확보하고, 행복한 삶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시대적 추이를 고려해,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의 정치적 글쓰기를 언어, 역사, 종교, 주권의 관점에서 파악했다. 필자가 언어, 역사, 종교, 주권의 렌즈를 통해 새롭게 확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언어의 정치적 변용에 대한 글쓰기를 추구했다. 신채호는 일본 식민주의가 피식민지를 동화하기 위해 시행한 언어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본 식민주의의 언어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발터 벤야민은 전체주의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의 순수 언어를 왜곡하는지를 비판했다. 그는 언어의 자의성이 의사소통의 혼란을 초래하는지를 설명했다. 

둘째,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정치적 변용에 대한 글쓰기를 추구했다. 신채호는 진화론적 시간관을 추구했고 민족 공동체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반역자의 정치 서사를 마련했다. 발터 벤야민은 진보 사관을 비판하면서 도시 공간의 비의지적 기억을 복원하고 야만인의 파괴적 성격을 분석했다. 

셋째,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종교의 정치적 변용에 대한 글쓰기를 추구했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기독교를 공통으로 비판했다. 반면 신채호는 대종교의 민족주의를 수용하면서 단일 민족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확보하고자 했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교의 정치 신학을 통해 사적 유물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넷째,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주권의 정치적 변용에 대한 글쓰기를 추구했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주권을 지식인, 영웅, 민중과 결부해 파악했다. 특히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저주와 분노의 감정에서 주권의 정치적 변용을 시도했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활용한 정치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감정 정치는 정치적 현안에 대한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응집이 가능하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수용한 감정의 정치적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그들은 정치적 주권의 가변성을 염두에 두면서, 정치적 주체의 정치적 행위를 혁명과 파괴를 통해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타자의 멜랑콜리(melancholy)’한 시선으로 식민주의와 전체주의의 모순을 응시했다. 신채호는 식민주의의 폭력에서 배제된 타자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현실적 실패와 좌절을 체험하는 순간 멜랑콜리를 발견했다. 반면 발터 벤야민은 주체와 이성에 대해 대항하기 위해 타자와 감성을 전복적으로 수용하면서 멜랑콜리의 세계를 재해석했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의 멜랑콜리한 시선의 이면에는 현실 개조와 혁명 가능성이 불투명하게 보이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정직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들이 울분과 우울의 정념에서 벗어나 도달하고자 했던 꿈의 세계는 개인이 정치적 의견을 행복하게 표명하고, 타자에 대한 상호 존중의 열린 지평을 확보하는 곳이었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은 관조적 삶과 활동적 삶의 변증법을 추구했다. 신채호가 민족주의에서 아나키즘으로 사상적 좌표 이동을 하면서 줄기차게 활동적 삶을 표방했다면, 발터 벤야민은 사적 유물론과 유대 신학을 융합하면서 관조적 삶을 지속했다. 얼핏 외견상으로는 그들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관조와 활동의 경계에서 머물면서 식민주의와 전체주의의 폭력에 대항했다. 신채호는 의열단 활동과 같이 민중직접혁명을 추구하는 활동적 삶을 지향하면서도 조선 역사의 집필, 각종 선언문 작성 등 관조적 삶에 기반을 둔 글쓰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발터 벤야민은 소련 공산당 가입 거절, 유대 시오니즘 불참 등 활동적 삶을 포기하면서도 사적 유물론과 신학을 결합하려는 관조적 삶에 토대를 두면서 글쓰기를 지속해서 수행했다.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와 주변인의 삶을 옹호하기 위해 관조와 활동의 양극적 사유를 정치적으로 추구했다. 그들은 정치적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세뇌 사회의 거짓을 폭로하고 인문 지능의 비판적 행위를 정치적 글쓰기를 통해 멜랑콜리하게 보여주었다. 

 

김용하 동의대 동의지천교양대학 조교수·국문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신채호와 이광수 소설에 대한 비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의 사상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고, 저서로는 『정치적 글쓰기의 멜랑콜리: 신채호와 발터 벤야민을 중심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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