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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세계질서' 탐색 … 교훈보다 적극적 실천 강조
'정의로운 세계질서' 탐색 … 교훈보다 적극적 실천 강조
  • 정승현 서강대 사과학연구소·정치학
  • 승인 2017.06.23 00: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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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지구적 정의란 무엇인가?』 존 맨들 지음 | 정승현 옮김 | 까치 | 296쪽 | 18,000원

트로츠키는 ‘조용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 20세기에 태어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요즘 세상을 목격했다면 아마 ‘21세기에는 양심적인 삶을 기대하는 것조차 잘못’이라고 말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세계를 보노라면 심각한 혼돈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른바 강대국들은 입만 열면 ‘세계정의’ ‘인도주의’ ‘인류의 양심’하면서 떠들어대지만 막상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호소와 참상은 외면하고 있다. 과연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됐다는 이 지구화 시대에 세계 차원에서의 정의는 있기나 하는 것인가?  지금 소개하는 책은 영미권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입각해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은 정치학의 주요 개념을 소개하는 ‘핵심 개념(Key Concepts)’ 시리즈 중의 하나로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뉴욕주립대학(SUNY) 알바니 대학(Albany) 철학과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롤스의 정의론을 토대로 삼아 사회정의 및 지구적 정의와 관련된 연구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롤스와 관련하여 상당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존 롤스(John Rawls)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유주의에 입각한 지구적 정의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롤스와 달리 추상적인 철학원리보다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실현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현실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저자가 롤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각각 다른 문화와 세계관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원칙이나 합의 사항을 찾아내고, 그것에 기초해 범세계 차원의 정의 개념을 정립하자는 주장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전개된 ‘정의의 정치적 개념’이 그것인데, 저자는 그 원칙을 인권에서 찾는다. 또 하나는 현재의 주어진 조건 아래 국제질서를 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의의 원칙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롤스가 『만민법』에서 ‘현실적 유토피아(realistic utopia)’라고 불렀던 접근법이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덕목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배격하는 동시에 도덕적 훈계에 머물지않고 실천 가능한 지구적 정의 개념을 적극 모색함으로써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인도적 개입, 세계빈곤, 인권침해 등의 문제에 관련된 쟁점과 대처 방안은 우리에게 충분한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롤스의 기본 틀을 받아들이면서 인권 개념에 기초한 범세계 차원의 정의론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 맨들의 주장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각 사회는 저마다 문화·전통·세계관·윤리관도 다르지만, 인간의 ‘좋은 삶’에 관해 서로 일치하는 의견들이 있다. 문화와 전통을 초월하면서도 서로 일치하는 이 합의를 통해 세계 차원의 정의 원칙을 세울 수 있는데, 그 합의의 원칙이 인권이다. 저자는 기본인권들이 적절히 보호받는 것을 지구화시대의 정의의 원칙이라고 내세우며, 이 권리들이 요구하는 내용과 보호 범위는 사회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근본 원칙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둘째, 인류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정의와 관련된 의무를 갖고 있지만, 국외자로서 우리에게 그 의무의 내용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저자는 그것을 정당성(legitimacy) 개념과 결부시켜 논하고 있다. 한 사회의 헌정질서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기본인권을 보호해줄 때 그 사회의 정치구조는 정당하다고 규정한다. 비록 자유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사회의 국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지구적 정의의 일부로서 이 사회들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당성을 갖춘 정치질서 없이 사회 구성원의 기본인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하는 무법국가에 대해서는 인권 침해와 권력 남용을 막는 조치를 취해야한다. 국외자로서의 우리의 궁극적 의무는 이러한 나라들에서 정당한 정치구조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량학살이나 인권의 조직적 침해 같은 특수한 상황이 닥치면 인도주의적 개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셋째, 부자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지만, 국제적인 분배 평등은 지구적 정의의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기본인권이 보호받고 있는 한 국제 차원에서의 분배 평등의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의의 일차적 의무는 기본인권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확보하는 제도의 창설을 돕는 데 있기 때문에, 부자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의 어려움을 도와야 할 이차적 의무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국외자 혹은 외국인으로서 우리의 의무는 이들 나라가 기본적 생존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며,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난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원조와 제도 건설에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토빈세(Tobin tax) 등을 포함한 몇몇 방안을 그 해결책으로서 제시하고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세계빈곤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넷째, 저자는 지구화의 부작용은 인정하지만, 지구화는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문화와의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기회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유토피아’는 지구화가 가져다준 기회를 활용해 인권 개념을 축으로 삼는 지구적 정의 개념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정당성을 갖춘 국가들에 의해 기본인권들이 우선적으로 보호받는 세계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것이 정의로운 세계질서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우리들의 의지 부족과 정치적 실패 탓이라고 지적하며, 도덕적 교훈에 그치지 않는 적극적 실천을 강조한다. 

이 책은 2006년에 출간돼 다소 낡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 차원에서 정의의 문제를 다룬 저작들도 이미 출간돼 있다. 그렇지만 세계평화, 빈곤, 국제법, 인권 등의 제한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지구화 시대의 세계정의의 문제에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책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덕목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배격하는 동시에 도덕적 훈계에 머물지 않고 실천 가능한 지구적 정의 개념을 적극 모색함으로써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인도적 개입, 세계빈곤, 인권침해 등의 문제에 관련된 쟁점과 대처 방안은 우리에게 충분한 시사점을 준다. (남이 보기에는) 상당한 경제발전과 군사력을 갖춘 한국은 지구적 정의에 뒤따르는 책임을 국제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매우 미적지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입장에서 지구화를 그대로 인정하거나, 이른바 ‘적정 수준의 위계사회’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기본인권의 보호 범위를 다소 좁히고 있다. 또한 환경문제는 지구적 정의의 문제에서 배제하고,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지구적 정의론에 대한 우리의 대응 논리를 마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나 덧붙인다면 이 책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상품·재화·정보·문화가 확산되면서 지구 차원에서 동질적인 구조를 강제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을 지구화로 부르고 있다. 이 동질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세상의 다양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설립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맞추어,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정의 혹은 국제정의 대신 ‘지구적(global) 정의’라는 낯선 단어를 썼다. 

 

정승현 서강대 사과학연구소·정치학
필자는 서강대에서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탈서구중심주의는 가능한가』(공저), 『한국정치의 이념과 사상』(공저)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청년 맑스의 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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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2017-06-23 20:06:59
노벨상을 받을 만한 혁명적인 통일장이론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학자들은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나 찬성을 표시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하나의 이론이 완전하다면 다른 이론이 공존할 수 없는데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이 상호보완하면서 공존하는 것은 모두 흠결이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현상의 크기를 계산하는 도구에 불과하므로 수학으로 우주의 원리를 기술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모두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크기, 장소, 형태와 상관없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의 물리학이론은 국소적인 상황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