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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옳고 그름'으로 각인됐다 … "지금 절실한 것은 북한을 바로 아는 일"
'다름'이 '옳고 그름'으로 각인됐다 … "지금 절실한 것은 북한을 바로 아는 일"
  •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국문학
  • 승인 2017.06.21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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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 _ 34. 北盲을 넘어, 남북문화의 소통을 향하여
▲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북한 주민. 출처=http://unikoreablog.tistory.com/6823[이미지 원 출처=VOA]

‘남북의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통일과 문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다. 통일문화를 위해서는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사용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질감은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이질감이라는 것이 극복한다고 해서 과연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통일 문화를 위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하는 이질감은 어떤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알 수 없다. 남북의 문화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된 것이고, 어떻게 변화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한반도 분단 이후 통일은 분단국으로 독립한 대한민국의 지상과제가 됐다. 우리 민족의 원했던 분단이 아니었다. 당연히 하나의 국가로 맞이해야 할 광복이 아니었기에 통일은 곧 단일 국가를 이뤄야 하는 민족적 열망이었다. 남북 분단 이후 통일에 대한 열망은 학문적 탐구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실 학문적으로 탐구할 대상도 아니었다. 언어, 역사, 문화 모든 것이 얼마 전까지 하나였었다. 38선 너머에 가족과 친척이 살고 있었다. 통일만 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한반도 위에 그려진 분단의 선은 넘지 못할 선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치열한 전쟁을 거치면서 생성된 적대감은 주적으로서 적대감과 동포로서 이중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싸우면서 건설하듯이, 싸우면서 통일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치열한 싸움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됐다. 경쟁을 통해 서로를 이겨야 하는 대상이 됐다.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남북은 경쟁했다. 남북이 서로 선택한 체제가 얼마나 좋은 지를 반복적으로 학습했고, 상대 체제가 선택한 제도에 대해서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부정했다. 자연 남북은 서로 다르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남북 분단 이후 반복 학습을 통해 남북의 다름은 ‘옳고 그름’으로, ‘맞고, 틀림’으로 각인됐다. 그렇게 한 세대를 보냈고, 또 한 세대를 보냈다. 여전히 맞고, 틀림은 남북을 비교하는 유일한 잣대가 됐다.

“북한이 변했다고 생각하세요?”, “북한이 변할 것 같으세요?” 통일관련 강연을 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북한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설명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뻔하다. “에휴. 그건 변한게 아니죠. 북한은 안 변해요. 김일성(혹은 김정일, 혹은 김정은)이 살아 있는 한 안 변해요. 다 거짓이예요. 속고 있는 거죠. 실상을 알아야 해요.”

궁금하다. 왜 그렇게 북한의 변화에 집착할까. 북한이 변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변하면 통일도 되고, 북한도 잘 살게 될 것인데, 북한이 변하지 않으니 통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사회든 변화는 불가피하다. 북한에도 휴대폰 가입자가 3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아파트도 공공연하게 거래된다. 시장에서는 쿠쿠밥솥이 최고 인기상품의 하나다. 중국 단둥에서는 골프치러 나온 북한 주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북한이탈주민 대부분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하고, 송금도 한다. 아랫동네 소식은 어지간한 주민은 알고 있다.

이런 일도 극소수 일부의 일, 특권층의 전유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일부에 한정된 일인지, 아니면 더욱 자주 접하게 되는 일이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휴대폰을 사용하는 300만 명을 극소수로 볼 수는 없다. 반문해 본다. “북한이 변하지 않을 수 있나요? 50년 전하고 꼭 같은 가요? 10년 전하고 꼭 같은 가요.” “그건 변한 게 아니죠. 근본적인 체제가 변해야죠.” 반복되는 응답이다. 변화를 판단하는 기준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내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변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 때문에 변해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의심 없이 갖고 있다. 통일문화의 출발은 우리 마음속에 갖고 있는 이 변화의 기준과 강박을 거두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北盲 수준의 북한 연구

일 년 동안 통일관련 행사가 이곳저곳에서 셀 수도 없이 벌어진다. 통일강연, 통일대학, 통일음악회, 통일토크콘서트, 통일공모전, 통일박람회, 통일체육대회, 통일음반, 통일노래부르기, 통일캠프, 통일교육주간, 통일문화주간, 시민교실 등등. 종류도 많고 형식도 다양하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통일 관련 세미나 열리고, 행사가 벌어진다. 이 모든 행사는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통일의 길을 열어가자는 취지로 마련된다. 의미는 참으로 좋지만 결과는 공허하다. 분단 이후 통일을 그렇게 열망하면서도 제대로 된 자료관 하나 없다.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북한자료센터는 본격적인 학문체계로서 통일을 연구하기에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한 층,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북한 연구 수준을 보여준다.
 
한때 여섯 곳이나 됐던 대학의 북한학과는 마침내 단 한 곳만 남았다. 대한민국에서 애견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이 30곳을 넘고, 뷰티 관련 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100곳을 넘는다고 한다. 텔레비전 방송 채널이 백 개를 넘지만 통일관련 방송은 인터넷으로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 어쩌다 통일문제, 북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해도, 자료를 보고, 연구하기에는 첩첩산중이다. 국민들이 알고 있는 북한 정보는 백지에 가깝다. 글을 못 읽는 文盲과 비슷한 北盲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정도로 잘못알고 있는 것도 상당하다. “북한에서 전구를 뭐라고 할까?”라고 물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알’이라고 대답한다. 우스개소리로 만든 것을 정말로 알고 있다. “북한에서 얼음보숭이는 뭐라고 할까?”라고 물으면 “얼음보숭이”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답을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데도 말이다. “북한에는 공산당이 없습니다”고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한다. 1946년에 신민당과 통합돼 노동당으로 존재한 지가 70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보건의료체계인 ‘5호 담당제’는 정치적 감시조직으로 알고 있다.
 
북한의 행정구역이 어떻게 되는지, 북한을 대표하는 꽃이 무엇인지, 國歌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은 지옥에서 부처님 만나기 수준이다. ‘그런 것이 뭐 그리 중요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차이를 아는 것이 소통과 통합을 위한 출발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70년을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다. 남북이 일상의 생활문화를 서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분단의 시간만큼 달라진 것이 당연하다. 남북의 문화 차이는 상당하다. 분단의 시간 동안 생활문화 속에서 형성된 생활방식, 가치관은 전혀 다른 체제로 작동하고 있다. 혈연적 공동체, 역사적 공동체를 이야기하지만 남북의 생활문화는 태평양 건너의 미국이나 유럽보다 멀다.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기층문화의 뿌리가 남아 있다고 해도 분단 이후의 생활문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교육현장에서부터 적대적이고 대립적으로 남북의 차이를 배우게 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모든 것이 비교됐다. 남한은 경제를 동원해 배고픔이 사라진 사회,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발전한 한강의 기적을 내세웠다. 경제규모, GNP, 각종 산업 생산량은 북한을 압도했다. 통일은 당연하게도 경제적으로 압도하는 대한민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당장 내일 통일이 된다고 해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통일 준비는 통일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정책과 준비를 의미한다. 통일이 당장에 올 것도 아니고, 또 통일이 된다고 해도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북한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다. 학문으로서도 매력적이지 않다. 기본적인 자료로서 구실할만한 것도 별로 없다. 자료가 있다고 해도 제한적이다. 자료 접근도 번거롭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책을 주문할 수도 없고, 현장 조사도 불가능하다. 북한 연구를 포기하는 ‘탈북’(탈 북한연구)의 유혹이 매력적이다.

손에 손을 잡고 통일을 노래한다고 통일이 되지 않는다. 통일을 위한 준비는 우리 내면의 문제를 돌아보고, 통일 대상으로서 북한에 대해 알아 나가는 과정이 축적돼야 한다.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북한을 알고, 우리를 알고, 그 속에서 공통점과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우리의 통일 논의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과정은 생략돼 있다. 이 또한 폭력이다. 변화를 겁박하는 것만큼이나 폭력이다. 함께 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성의 공유지점을 찾아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대화를 열어가기 위해서, 보다 나은 통일을 위해서, 지금 절실한 것은 북한을 바로 아는 것이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국문학

필자는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 북한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사회와 문화』, 『북한의 정치와 문학: 통제와 자율사이의 줄타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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