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는 없는 직업… 사람들은 우리를 ‘유령’이라 부른다”
“법에는 없는 직업… 사람들은 우리를 ‘유령’이라 부른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7.06.12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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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교수들이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

시간강사를 비롯한 대학의 비정규교수들이 자신들을 위한 종합대책을 담은 국정로드맵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며 서울 정부청사 등지에서 열흘째(9일 기준) 노상농성을 벌이고 있다. 일부 비정규교수들은 내년 1월 1일 시행 예고된 ‘시간강사법’도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는 뒤로 밀리고 비정규교수에 대한 대량해고와 신분 불안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국정로드맵 제시와 시간강사법 폐지 외에도 △시간강사제도 폐지 △연구강의교수제도 도입 △연구보수 제공 △전임교원의 강의담당비율 지표 폐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정희정부가 도입한 대학의 시간강사는 최근 ‘고학력·저비용’의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학 비정규교수의 처우 문제는 미래 학문후속세대 수급과 학자들의 노동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고등교육의 획기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정부와 비정규교수의 강의 의존율이 높은 대학이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는 대학재정과 맞물린 채 수십년간 지속돼 오면서 ‘대학 비정규교수 처우 개선 방안은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까지 나올만큼 얽힌 매듭을 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비정규교수들이 주목하는 문제와 나아가 해법은 무엇일까. 인문학협동조합과 민족문학사연구소가 주최하고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법과인권교육센터가 주관해 지난 9일~10일 이화여대 ECC에서 열린 토론회 ‘대학의 인권과 민주주의: 대학 공공성과 자율성 회복을 위한 촛불들’은 주목할만하다. 행사 이튿날인 10일 ‘해직강사’ 민영현 전 경성대 시간강사가 발표한 「한국에서 대학의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살아감의 의미?」 중 일부를 소개한다.

‘고학력·저비용’ 이대로 계속 쓴다면…

[민영현 전 경성대 시간강사] 이미 10년도 전인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판결을 내리고 주문한 내용이 있다. 그 대강은 현재적 상황에서 대학의 강사란 분명한 사회적 직업군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근무 조건, 신분보장, 보수 및 그 밖의 물적 급부 등에 있어서의 차별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

이 같은 결정문이 제출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의 시간강사를 위해 법률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그 이후, ‘노사정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진행된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대책’에서도, 대학의 시간강사를 위한 조항들은 전부 예외로 규정하고 만다. 상황이 이러하니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어찌 이길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선 현장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은 곧잘 스스로를 ‘유령’이라 부른다. 법적 존재로서의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같은 현실을 초래한 정부의 책임을 논하자면, 입법부는 직무유기요, 행정부는 복지부동이며, 사법부는 무사안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른바 대학교육협의회와 같은 고등교육 카르텔에서는 사회 정의와 진리 탐구와 같은 교육의 일반이념과는 아무 관계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련의 작태를 서슴지 않게 자행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더 기막힌 현실인 것이다.

지난 2015년 12월 대교협 제52회 대학교육 정책 포럼에서는 ‘대학교원 및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에 대한 종합적 이해’라는 주제의 발표회에서 「시간강사 퇴직금에 관한 일부 하급심 판결에 관한 검토」라는 기획형 학술연찬회가 진행된 바 있다. 처음 이 발표논문의 제목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 대학들이 좀 제대로 된 생각을 해보려는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갖고 읽게 됐다. 그런데 결국 대학교육협의회란 카르텔에서 기획하고 의도하는 것이 고등교육의 정상화와 학생들의 학습권 및 소외된 시간강사들의 교육권을 위한 협의체가 결코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발표문들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이 발표회의 핵심은, 그동안 사법부의 하급심에서 판결되고 진행됐던 시간강사 퇴직금에 대한 일반 결론, 즉 ‘시간당 3배수의 강의근로 계산법’이 대학 측에 지나치게 불리하고, 이로부터 대학재정을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더불어 이 같은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관련 판결에서 강사에 대한 일방적이고 호의적인 판단을 넘어 대학의 입장을 고려한 합리적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의 전당이라 할 대학이 마치 기업과 같은 이익집단으로 기능해야만 한다는 식의 생각은 대학사회 내에서도 심각한 견해의 차이를 노정시키면서 갈등하고 있다. 이른바 ‘돈 되고 취업 잘 되는 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이 구조조정 돼야 한다고 믿는 일부 언론들의 편향된 시각 역시 이러한 잘못된 판단에 일조한다.

한국의 대학들의 일방적인 주장들을 접하고 나면, 사실상 시간강사와 관련해 우리의 대학들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이들은 기본적으로 시간강사에 대해 일용잡급직으로서의 단순 노무자, 아니 기계의 부속품 정도로 밖에 이해하지 않는다. 오직 대학의 경영을 위해 “박사급 이상의 시간강사들을 마음대로 해고하고, 그 인력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만 우리는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는 박사급 시간강사의 지적 능력과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권위 아니 심지어 인간의 인권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담고 있지 않다. 더욱이 사회적 公器로서 대학의 책무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반성적 의식마저 결여돼 있다. 다만 오직 기업처럼 언제나 이익이 남고 또 소모품으로서 강의근로자는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사회·법률적 환경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저항하지 않고 순종하며, 그러면서도 대학에 감사할 줄 아는 ‘잘 길들여진 시간강사들’만을 한국의 대학은 필요로 한다.

실로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담당해 온 교육과 지적 근로 그리고 이들이 학위를 따기 위해 먼저 지급한 일체의 비용에 대해, 대학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만일 기업이라면 숙련된 노동자로서의 기능과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노동자에게 상당한 교육경비와 함께 복지에 대한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이에 반해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지닌 능력과 학식에 따라, 일체의 다른 업무관련 교육비용을 투자할 필요 없이 바로 교육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준비된 박사급 지식노동자를 불러 쓰면서, 이에 대해 정상적으로 들어가야 할 경비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 오늘 한국 대학의 태도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학들이 보이는 오만불손한 작태는 결국 한국 지식정보사회의 몰락과 붕괴를 초래할 주요한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은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정리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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