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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화운동’에서 ‘촛불’ 이후의 과제를 짚어내다
‘87년 민주화운동’에서 ‘촛불’ 이후의 과제를 짚어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6.1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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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

시간은 불가역적이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2017년은 1987년의 에피고넨 그 이상의 의미 맥락을 지닌다. 2017년은 모든 굴곡을 건너뛰어 직접적으로 1987년에 가닿는다는 말이다. 이른바 87년체제의 재조명과 ‘6월항쟁’의 연속성 문제인데, 여름 계간지들은 이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뤘다.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87년을 호명한 것은 <역사비평>119호다. 특집 자체가 ‘87년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다. <문화/과학>90호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에 주목하면서 특집을 배당했지만, 기획코너에 ‘1980년대 문화’를 내세움으로써 러시아 혁명 100주년과 1980년대 문화운동론을 잇는 작업에 나섰다. <창작과비평>176호와 <황해문화>95호는 87년의 호명과 재해석보다 ‘시대전환’과 ‘촛불’이라는 현재적 과제에 좀더 눈길을 던졌다. <오늘의문예비평>은 특집으로 ‘세속적 읽기와 쓰기’라는 원질적인 부분을 진단했지만, 개별적 논의에서 87년체제의 문제를 짚어냈다.

특집 ‘87년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준비한 <역사비평>은 두 편의 글과 좌담을 수록했다. 「87년 헌법의 개헌 과정과 시대적 함의」(강원택), 「왜곡된 87년체제―『민주화의 길』 분석을 중심으로」(박태균), 그리고 「좌담: 6월 항쟁 30주년, ‘87년체제’를 평가한다」(강원택, 박명린, 박태균, 천정환, 한정훈)다. <역사비평> 편집진 측에서 밝힌 그대로, 이 특집은 ‘87년체제에 대한 평가’다. “<역사비평>의 선택은 1987년의 상황을 다시 보는 것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봄으로써 87년체제의 문제를 그 출발점으로부터 찾고자 한” 기획이다. 이들의 논의는 ‘출발에서 문제를 찾는 시도’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역사비평>이 이를 의제화한 방식이다. 정치학과 역사학의 관점에서 글을 쓰고, 이에 대해 역사학, 정치학, 문학 전공자가 토론하는 좌담의 형식을 덧붙인 것. 

87년체제의 제한된 목표를 넘어서

87년체제라고 명명했을 때, 역시 그 기반은 ‘헌법’의 문제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의 논의가 이를 파고들었다. 강 교수는 87년 헌법 개정에 주목, 이것이 처음부터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후 30년간 지속되면서 87년 개정 헌법은 공정한 경쟁,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표를 상당한 정도로 실현했다”고 평가했다. 1997년, 2007년, 2017년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강 교수는 “87년체제의 제한된 목표를 넘어서 한 단계 더 심화된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야할 시점이 됐다”고 말하면서, “30년 전과 같이 정치권 내의 폐쇄적인 방식으로 개헌 논의를 행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시민들의 다양한 관심과 의견이 개헌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984년 3월 창간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의 소식지였던 『민주화의 길』을 분석함으로써, 어째서 ‘포스트 87년체제’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는지를 진단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논의가 흥미로운 것은, ‘87년체제의 전환’이 아닌 ‘제대로 된 87년체제 만들기’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1987년의 시점에서 요구됐던 목표가 현재까지도 본질적으로 성취되지 못했다면, 87년체제의 변화보다는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목표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즉 87년체제의 보완이 더 우선적인 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곱씹어볼만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혁명과 문화 100년’을 특집으로 내세운 <문화/과학>은 이렇게 말한다. “계간 <문화/과학>이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90호 특집으로 ‘혁명과 문화100년’을 택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작년 겨울부터 올 초 봄까지 이어진 촛불 시민혁명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평가가 개시되는 시점에서 <문화/과학>의 특집은 지리적 경계를 넘어 혁명의 역사적 유산과 이행의 문제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시기적절하다. 다만 이 특집을 정하게 된 계기가 단지 러시아 혁명 100주년만이 아니라 촛불 시민혁명에 있다고 볼 때, 이번 촛불 시민혁명이 역사적 혁명의 수준에 준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름호 계간지를 전체적으로 읽어낸다면, 기획 ‘1980년대 문화’의 자리가 이 논의보다 조금 앞설 것이다. 「1980년대 문화운동론의 구조」(김성일), 「1980년대 문화운동에서의 공동체담론과 오월 광주」(정원옥), 「역사적 합창으로서의 노동자 글쓰기-석정남과 신경숙」(김대성) 세 편의 글을 수록한 이 기획에서 주목할 점은 ‘80년대 문화운동론’에 내재된 당대의 목소리 경청 부분이다. ‘여전히 그 생동감을 잃지 않은’ 그 시대의 목소리를 통해 ‘현 시기 촛불민심의 진로탐색’을 비춰보려는 <문화/과학>의 의도라라고 볼 수 있다.

<창작과비평>의 기획 ‘문재인정부와 시대전환’에는 「새 정부가 시대전환에 이바지하려면」(이남주), 「지금 바로 경제적 전환을 시작하자」(전성인),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에서 길을 찾아야」(정현곤) 세 편의 글이 실렸다. 정치·경제·남북관계와 관련한 태세의 전환을 촉구한 글들이다. 이와 함께 김태우 한국외대 교수의 「6월항쟁의 재구성: 촛불의 관점에서 돌아보다」도 함께 읽을 만하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치권이 그 요구에 부응하도록 하는 작업을 강조했다. 

일종의 ‘17년체제’론을 들고 나온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의 글은 ‘87년체제’와 묶어서 읽어도 좋을 글이다. 전 교수는 “87년체제가 과연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일관된 논리체계나 가치관에 기반해 사회구조를 설계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고 지적하면서, 87년체제의 가치체계를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17년체제의 핵심적 가치로 내세운 것은 ‘인적 자본의 축적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과 세대 간 통합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 공동체 구축’이다. 

사드를 안보 사안이 아닌 ‘정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주문한 정현곤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정치학)은 남북관계에서 좀더 ‘담대한 제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론을 말한다면, 그는 민간이 먼저 움직이고 당국이 이어서 움직이는 프로세스의 한계(군사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북미관계에 치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좀더 과감하게 10·4남북정상선언의 이행이라는 주제를 놓고 출발했으면 한다”고 제안한다. 그것이 바로 ‘체제공존형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87년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겹쳐 읽은 김태우 한국외대 교수(한국학과)는 이 두 가지 사건이 ‘진실과 용기’, ‘참여와 연대’, ‘선거와 헌법’이라는 세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고 지적하면서, 6월항쟁의 적자라고 할 수 있을 촛불이 체제전환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6월항쟁으로부터 ‘실패했던 정치적·경제적 민주화의 달성’이라는 교훈을 읽어냈다. 

<황해문화>의 특집 ‘촛불과 그 이후의 과제들’에는 「적폐청산의 시발점, 공안체제의 해체」(한홍구), 「오도된 ‘법치주의’ 개혁을 위한 과제―사법권의 역할과 조건을 중심으로」(김종철), 「빅데이터를 통해 바라본 촛불 민의―탄핵으로 가는 길, 탄핵 이후의 소망」(김학준), 「‘태극기집회’와 개신교 우파―또 다시 꿈틀대는 극우주의적 기획」(김진호), 「87년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의 모색―박근혜 탄핵 결정의 역사적 의미」(이국운) 등 5편의 글이 소개됐다. <황해문화> 편집위원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권두언에서  “적폐의 근원을 ‘48년 체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의 이면에는 반대파를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공안체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안체제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적폐의 근원이며 재생산 기지인 셈이다”라고 말한다. <황해문화>가 어째서 공안체제를 ‘촛불 과제’로 제일 위에 올려놓고 이를 겨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의 글과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이 놓이는 맥락이기도 하다. 

큰 담론 사이에서 돋보이는 ‘일상의 민주주의’

<황해문화>의 이 특집에서 좀더 눈길을 던질 글은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과)의 글이다. 이 교수는 촛불의 의미와 그로부터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출현을 1987년 민주화운동이 탄생시킨 87년체제의 최대치였다고 규정한다. “2017년 3월 10일의 박근혜 탄핵 결정은 87년체제의 퇴행을 87년체제의 최대한을 동원해 막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일대 사건”이라고 환기한 이 교수는 이 결정의 역사적 의미를 좀더 파고 들어간다. 이 교수에 의하면, 박근혜 탄핵 결정의 역사적 의미는 한국사회에 87년체제를 퇴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컨센서스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 데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퇴행을 막는 것이지 87년체제의 극복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87년체제를 극복할 정치적 과제를 전적으로 부담하게 된 것이다.”

‘문예비평’이라는 제목에서 확인하듯, <오늘의문예비평>은 비평 담론의 현장성에 좀더 착안한 계간지다. 이들이 특집으로 ‘세속적 읽기와 쓰기’를 들고 나온 데는 조금 사정이 있다. “여름호 <오늘의문예비평>특집은 이미지 중심의 사건들이 주는 스펙터클에서 눈을 돌려 문학적 행위에 주목하고자 한다. 모든 것들이 ‘증강’되고 ‘가상화’되는 현실 속에서, 읽고 쓰는 힘을 망각한다면 인간은 한 세[대를 넘어서는 가치와 감성을 유지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번 특집의 주제는 정치적 사건들에서 벗어나 ‘세속적 읽기와 쓰기’로 결정했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읽기와 쓰기의 모습을 살피고자 한 것이다.”

세 편의 글을 수록했는데, 「스크리보 에르고 숨(Scibe, Ergo, sum)―‘나는 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정치학」(강동수), 「이게 책인가요? 네 책이에요」(양사윤), 「비평의 자리」(고봉준) 등이다. ‘비평, 문’ 코너에는 「87년체제 바깥으로 탈출은 가능할까」(하승우)를 실었다. 하승우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의 진단은 좀더 강하다. 87년체제는 민주화의 물꼬를 텄지만, 기존의 기득권 체제를 와해시키지 못해 서민들의 소외 경험, 엘리트주의가 강화되는 등 한국사회를  극심한 상황으로 이끌었다는 것.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일상의 민주주의, 먹고 사는 일, 지역 문제에 주목한다. 일상에서 민주주의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나아가지 못한다는 그의 진단은 ‘풀뿌리민주주의’에 세례 받은 그의 이력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현장 곳곳을 들여다볼 때, 누구나 우리 내면의 민주주의적 경험의 황폐함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크다. 그는 87년체제와 달리 이제 지역과 중앙의 의제를 전달한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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