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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弊로 전락해버린 대학
積弊로 전락해버린 대학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7.06.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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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새 정부가 혁명적인 개혁의 목표로 대학을 정조준하고 있다. 국공립대는 ‘통합네트워크’로 묶고, 사립대는 ‘공영형’으로 전환시킨다. 입시 과열 해소를 위한 국공립대 ‘공동선발제’에 상위권 사립대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교육을 붕괴시켜 인구절벽을 초래하고, 취업절벽으로 청년들을 절망시키고 있는 대학을 積弊로 규정하는 메가톤급 개혁의 광풍이 자칫 공교육 전체를 초토화시켜버릴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다.

고착화된 서열화와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과열된 입시 경쟁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문제 인식은 나무랄 수 없다. 그렇다고 대학이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인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대학은 5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는 황당한 교육개혁의 희생양이다. 정체성도 상실했고, 재정도 파탄났다. 적폐의 인과관계를 뒤집어 놓으면 진짜 적폐 청산은 불가능하다.

교육 적폐의 원인은 서열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목표가 다르고, 교수진의 역량과 열정이 다르고, 전통과 환경이 다른 대학들의 서열화는 필연이다.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열을 왜곡·고착화시키고, 대학의 자율적인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켜버린 교육 정책에서 적폐의 진짜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국공립대를 하나로 묶는다고 모두 ‘서울대’가 된다는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착각이다. 투입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이 제한되어 있고, 전통과 환경이 모두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흰색 물감에 빨강·파랑·노랑 물감을 모두 섞으면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변해버린다. 결국 통합네트워크 구상은 참여정부의 ‘서울대 폐지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학벌주의는 대학 탓에 만들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대학도 학생들에게 다른 대학 출신들과 어울려 살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고질적인 학벌주의는 비윤리적으로 타락해버린 관료·정치인·경제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학을 개혁하면 타락한 기득권 집단이 학벌주의를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사립대에게 공동선발제를 강요하겠다는 발상도 어불성설이다. 자신들이 가르칠 학생을 스스로 선발하는 권한은 사립대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알량한 지원금으로 사립대의 학생 선발권을 빼앗아버리겠다는 발상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사교육 시장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학생부 전형이 입시 과열을 해소시켜주고, 공교육을 살려줄 것이라는 주장도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학생부 전형은 학생들에게 한 순간의 일탈과 방황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대한 족쇄와도 같은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희망진로를 억지로 공개시키고,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반교육적이고 폭력적이다. 이미 1등급 몰아주기와 학종 컨설팅에 지쳐버린 학생들이 공교육을 떠나기 시작했다.

새 정부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교육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던 대학 평가와 구조조정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 국정농단의 단초를 제공했던 대학재정 지원 사업과 반값 등록금 정책도 서둘러 바로 세워야 한다. 교육 양극화·계급화를 부추기는 고등학교와 입시 제도의 다양화도 손질해야 한다. 역사 교육 필수화를 위한 꼼수였던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과 수능 개편도 중단해야 한다. 자칫하면 고등학교 교육이 1학년에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

대학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부의 폭압적인 개혁 시도와 교수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확실한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 퇴직 법관·관료·정치인·언론인·장성들의 경력 세탁장으로 변해버린 대학의 현실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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