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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도 환상적인 구성의 고려청자 … 불교와 함께 성행한 도교가 영향끼쳐
기발하고도 환상적인 구성의 고려청자 … 불교와 함께 성행한 도교가 영향끼쳐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7.06.07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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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 55.청자어룡도인형주자(靑磁魚龍道人形注子)

일본 대마도 나가사키현에 있는 海神神社는 바다의 수호신을 주신으로 모시는 신사로 대마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신사며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돼있다.(사진1)

이 신사의 ‘보물관’에는 남북국 신라시대의 불상을 비롯해 고려청자 등 여러 점의 우리나라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 10월 8일 새벽에 이 신사의 ‘보물관’에 소장된 ‘신라금동여래입상(사진2)’이 도난됐고, 도난범들은 한국인들로 2013년 1월 29일 국내에서 체포되며 도난 된 불상2구가 압수됐다. 이 사건으로 대마도의 해신신사는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압수된 불상의 반환여부를 놓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간의 외교문제가 발생하고 국내의 여론도 압수유물의 일본반환과 국내귀속으로 나뉘어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해신신사의 ‘신라금동여래입상’은 반환했으나 나머지 부석사의 발원문이 있는 ‘고려금동보살좌상’은 최종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으로 반환된 해신신사의 ‘금동여래입상’은 1974년에 일본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됐으며 臺座와 手印의 일부만 결실됐을 뿐 불상의 높이가 36,3cm나 되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명품이다. 

해신신사의 ‘보물관’에는 여러해 전에 필자가 직접 실견한 중요한 고려청자가 소장돼있다. 이 청자는 어룡을 타고 날아가는 도인을 형상화한 주전자로 국내서도 보기 힘든 명품이다. 일본에서는 이유물의 명칭을 ‘靑磁白泥彩鐵會鳳凰人物形水注(사진3)’라 하고 12세기~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으나 상감기법이 사용되기 전인 鐵畵, 堆畵의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11세기말~12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새처럼 생긴 몸통과 두 날개를 보고 봉황으로 착각한 듯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룡에서 나타나는 뱀의 목이 완연하며 몸통의 비늘도 역력하다. 청자로 제작된 어룡은 국보 제61호로 지정된 (사진4)의 청자어룡형주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사진5)의 청자어룡향로(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어룡을 타고 있는 신선을 포함한 사례는 없었으며 최초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 청자와 비교할 수 있는 유물은 미국 시카고미술관에 소장돼있는 ‘靑磁鳳凰人物形注子(사진4)’가 거의 유일해 같은 모양으로 봉황을 타고 있는 도인 모습의 주전자다. 미국 시카고미술관의 우리나라 도자기들은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한 러셀 타이슨(Russel Tyson. 1867~1964)이 기증한 것으로 1920년대 사업차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철도공사장에서 인부들이 보관하고 있던 자루 속의 도자기들이 예사롭지 않아보여서 약 90여점을 모두 헐값에 구입했는데 중국 도자기 컬렉터였던 타이슨은 고려청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으며 뜻밖의 횡재를 했다고 기뻐하며 귀국했다고 한다. 고려청자 최고의 명품에 속하는 (사진4)의 ‘청자봉황인물형주자’도 철도공사장 자루속의 한 점이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국내에 소장된 고려청자 중에는 (사진3)과 (사진4)에 비교할 만한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해외에 있는 두 유물만을 비교해야 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대마도 해신신사에 소장된 (사진3)의 청자는 풍만한 몸체에 비늘이 덮여있고 곧게 세운 날개와 부리부리한 눈은 철화점을 찍어 강조했으며 어룡의 등에는 의관을 갖춰 입은 도인이 올라 타고 있다. 몸통의 비늘에는 철화점과 퇴화점을 골고루 찍어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날개의 중심부는 작은 철화점으로 강조했다. 머리의 뿔과 입부분이 파손됐으나 두 눈과 귀는 온전하며 음각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갈기도 유려하다. 온 몸에 골고루 시유된 청자유약은 기포가 많은 불투명 翡色으로 중국의 여요청자와 비슷하고 광택이 살아있다.
 

이 ‘청자어룡도인형주자’는 주전자의 注口인 어룡의 입부분이 결실됐고 주전자의 뚜껑인 도인의 머리 부분이 결실됐으며 주전자의 손잡이도 결실됐다. 아울러 도인의 양 손부분과 날개 일부도 파손됐다. 비록 파손된 부위가 많은 유물이지만 아직까지 어룡을 탄 도인의 형상을 한 고려청자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극히 희귀한 고려청자로 연구자들은 대마도 해신신사의 ‘靑磁魚龍道人形水注’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사진7~사진9)

이렇게 기발하고 환상적인 구성의 고려청자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당시 불교와 함께 성행한 도교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전란과 내란이 연달아 일어났던 이유로 국내에 현실도피 성향이 나타나면서 풍수지리설과 신비주의가 성행했으며 예종은 도교를 권장해 福源觀을 세워서 도교행사를 거행하는 기관도 만들었으며 인종때는 老莊學을 연구하는 풍조가 확산돼 도교적 색체를 겸비한 유학자가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청자에 나타나는 도인의 모습은 주전자, 연적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사진3),(사진4)의 도인들과도 연결된다.(사진10),(사진11)

고려왕실의 官窯에서 제작된 최상급의 ‘靑磁魚龍道人形注子’는 어떤 경로로 일본 대마도의 해신신사에 정착하게된 것일까?  一千歲를 넘긴 유물만이 알고 있는 진실의 함성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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