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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권의 변천사
우리나라 인권의 변천사
  • 교수신문
  • 승인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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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는 ‘인권의 유린으로 점철된 질곡의 세월’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단계부터 난무했던 정치적 횡포는 이승만 정권을 지나 박정희 정권에 이르며 무수한 인권 탄압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어두웠던 70년대. 1970년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외쳤던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분신’, 1974년 유신헌법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폭로하고 구속됐던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발표 직후 전남대 교수 11명이 해직됐던 1978년의 교육민주화 선언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등을 비롯한 무수한 민주화 투쟁 사건은 유신체제 아래에서 인권은 구제하기 어려울 만큼 피폐해져 있을 뿐 아니라, 인권정책 역시 전무했음을 보여준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양심수 석방을 위한 단체인 민가협,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인모임, 인권운동사랑방이 꾸려지고,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인권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들이 활성화되면서 인권에 대한 각양각색의 논의는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게 됐다. 1995년 문민정부가 제정한 ‘5·18 특별법’과 ‘노·전 두 대통령의 구속’은 고위 여하를 막론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상징적 처벌로,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01년 11월 26일에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동안 정부가 가져왔던 인권에 대한 ‘내부적 반성’과 인권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여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과 성과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에 초점이 맞춰져있던 인권에 대한 논의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여성, 환경, 소수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1994년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여성의 인권 되찾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됐던 여성에 대한 성희롱 문제가 최초로 법적인 보호를 받았을 뿐 아니라, 여성의 고용차별 등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인권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이슈. 2000년 ‘탤런트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은 동성애자의 인권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론화하기에 충분했던 사건이었고, 2001년 ‘오이도 지하철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는 그간 가려져 있었던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논의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됐고, 최근까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투쟁은 계속 이어져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왜곡된 교육과 사회에 노출돼 있는 청소년의 인권도 대안교육과 대안학교 등의 등장과 함께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1993년 ‘국가보안법’상 자신의 동호회에 사노맹의 글을 올려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로 구속된 ‘김형렬 씨 사건’부터 최근 통신질서확립법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에 항의하는 인터넷 검열 반대 시위까지 가상의 세계인 인터넷에서도 인권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문화 인권과 환경 인권에 대한 논의도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인간이라면 모두 문화적 수혜를 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것.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설문조사 ‘올해의 인권 침해자’로 정권 교체기마다 선정되는 인물은 여지없이 현직 대통령이었다. 인권에 대한 풍성한 논의만큼 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인권정책에 대한 따가운 질타가 아닐까.

이은정 기자 iris79@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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