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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는 오래된 사고방식 … 철학은 우리 모두의 일상적 관심사다"
"실용주의는 오래된 사고방식 … 철학은 우리 모두의 일상적 관심사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6.05 16: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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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_ 9강. 정해창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윌리엄 제임스, 미국과 실용주의’

실용주의는 철학사적으로 유럽이 아닌 미국의 철학자들이 개척한 새로운 영역이었다. 이후 실용주의는 철학의 지평으로 넘어 곳곳에서 확산돼 왔다. 그 중심에 ‘윌리엄 제임스’를 놓을 수 있다. 지난달 27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네 번째 기획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아홉 번째 강연이 바로 이 문제를 겨냥했다. 정해창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윌리엄 제임스, 미국과 실용주의’ 강연이었다.
정 명예교수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석사 학위를, 뉴멕시코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델란드 라이덴대 교환교수, 독일 뒤스부르크대 방문교수, 일본 동양대 객원연구원을 지냈있다. 저서로 『제임스의 미완성 세계』, 『듀이의 미완성 경험』, 『퍼스의 미완성 체계』, 『현대 영미철학의 문제들』 등이 있고 역서로 윌리엄 제임스가 쓴 『실용주의』 등이 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실용주의의 태동 △철학적 배경 △극단적 경험론 △실용주의 △종교적 경험 △제임스의 유산 순으로 주제를 소화했다. 이날 강연 가운데 ‘실용주의의 태동’과 ‘제임스의 유산’ 부분을 소개한다.

자료·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bukhak64@kyosu.net

실용주의의 태동

철학에 관해서 19세기 말의 미국을 유럽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문명화된 세계에서 미국만큼 철학의 불모지는 없다고 한 토크빌(Tocqueville)이 아니어도 미국은 철학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던 나라이다. 그러나 퍼트남(Putnam)은 미국 철학자들이 오늘날보다 당시 독일 철학에 훨씬 정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른 말로, 이들은 기본기를 충실히 다지며 메이저 리그 입성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미국 철학자들에게는 유럽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함께 숨 쉬어온 철학적 전통이라는 것이 없었다. 전통은 기댈 언덕이지만 동시에 새로움의 출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들은 새로움을 갈구했고, 이 황무지에서 처음 수확한 결실이 실용주의이다. 실용주의가 처음 알려졌을 때 유럽 철학자들은 이 ‘아마추어들’의 교의를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철학사에 등장했다 사라진 수많은 철학 에피소드 중 하나 정도로 간단히 여겼던 것이다. 반면에 실용주의를 종교 개혁에 비견해 ‘철학의 중력 위치가 바꿔져야 한다’라고까지 주장한 제임스에게 이들은 철학적으로 화석화된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실용주의자들에게 이들은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됐지만 아직도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몰락한 귀족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용주의의 태동은 1872년 보스턴에서 일단의 반형이상학적인 지식인들이 ‘형이상학 클럽’이라는 아이러니컬한 이름을 내걸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진 데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여기에서 실용주의 형성에 이르는 주요 의견들을 교환했다. 나중에 퍼스(Peirce)가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여기에서 논의됐던 것들을 정리해서 발표했고, 이것이 실용주의가 세상에 나온 계기가 됐다. 한동안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었는데 20년이 지난 후 제임스가 실용주의에 관한 글을 다시 발표했다. 이즈음 실용주의의 원저자로 현대 기호학의 아버지이고 미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라는 평가와 함께 ‘철학자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퍼스는 이미 학계에서 잊힌 지 오래였다. 이후 너도나도 실용주의라는 악대 차에 편승해 각기 다른 버전(version)이 13개나 있었다고 한다. 퍼스는 실용주의를 의미론에 한정시킨 반면에 제임스는 실용주의를 의미론과 진리론을 아우르는 교의로 만들었다. 퍼스는 제임스가 실용주의를 왜곡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실용주의에 ‘프래그마티시즘(pragmaticism)’이라는 이름을 붙여 차별화하고자 했다. 그 이름이 너무 추해서 아무도 더 이상 훔쳐가지 않으리라는 빈정거림이었다. 이들은 함께 실용주의를 창시했고 친구지간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여러 점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당대 철학자들의 논리적 무식을 한탄한 퍼스는 제임스의 논리적 무능을 혹독하게 비판한 반면에, 제임스는 논리가 삶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무논리성을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대꾸했다.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 『실용주의』(1907)에 ‘오래된 사고방식을 위한 새로운 이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즉, 실용주의가 새로운 이론이나 새로운 유형의 사고가 아니고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사고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자생적 철학을 탄생시키는 순간에도 그는 소크라테스적 겸양을 잃지 않았다. 그는 실용주의 선구자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영국 경험론자들, 칸트, 밀 등을 꼽았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실용주의를 단편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실용주의가 형성되던 시기에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적 관념들이 본격적으로 대두했고 이것이 실용주의 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진화론은 당시 학계의 관심사로 잠시 떠올랐던 관념론에 제동을 걸고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돌아서는 발판을 제공했다. 그 무렵 학계를 포함한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과학 지상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제임스의 유산

ⅰ) 제임스의 언명들은 산문적이고 회화적이다. 그를 니체와 같은 문학적 철학자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지만 그의 저술 어디에서도 예언자적 언명이나 초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저술에는 전문적 논의와 대중적 담화가 뒤섞여 있고 여러 학문 분야들이 혼재돼 있다. 그래서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만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추상이라는 족쇄로 구속하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주의에 경도돼 있지도 않다. 그는 과학적 관점을 지지하지만 만일 과학이 신, 자유의지, 불멸성을 믿을 권리를 부정한다면, 과학 역시 기꺼이 버릴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과학은 물 한 방울이고 우리의 무지는 바다다.”라는 그의 말은 과학이 세상을 읽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고뇌, 진지함을 가볍게 희화하는 우둔한 낙관주의를 비판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우울한 현실, 고통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감상적인 비관주의도 배격한다. 제임스에 의하면, “철학은 삶이 진실로 깊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갖고 있는 무언의 감(sense)”이다. 그리하여 그는 철학자들이 소홀히 하는 물음 즉 우리는 누구이고 또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에게 철학은 우리 모두의 일상적 관심사다. 철학을 하는 이유는 우연과 새로움의 낯선 세계를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인간이 처해 있는 조건들을 극복하는 일종의 정신적 치료가 되는 셈이다. 퍼트남에 의하면, 제임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문제들과 씨름한 심오한 사상가이다. 그의 해결책은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바와 같이 ‘철학자가 그러는 것보다 훨씬 더 황당하게 사유함으로써만 여러분은 철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하려는 철학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제임스의 이런 입장은 철학을 일종의 ‘질병의 치료’로 보는 비트겐슈타인과 맞닿아 있다. 동시에 “철학은 본래 시(詩)로 지어져야 하리라”는 그의 말도 ‘철학은 (……) 무언의 감’이라는 제임스의 언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ⅱ) 철학사에 이름을 올린 미국 철학자들 중에서 제임스만큼 빈번하게 인구에 회자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철학자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그의 철학이 대단히 비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는 현상학자, 과정철학자, 실존주의자, 분석철학자, 해체주의자, 사해동포주의자 등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을 ‘제임스의 신화’ 또는 ‘실용주의의 신화’라고 부른다. 제임스라는 풍성한 밥상에 숟가락이라도 올려놓아야 그와 겸상을 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으리라. 이 신화는 듀이를 거쳐 로티의 반철학(counter-philosophy)을 통해서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용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는 분명치 않다”는 실용주의자 콰인(Quine)의 말을 되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내가 실용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고, 삶이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지만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잠재해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존재다. 이런 점에서 실용주의자는 보통 사람들의 지혜에 확신을 갖는다. 이들은 삶의 역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듭 극복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노력은 경험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어 우리와 대상들이 상호 간에 친숙해지도록 만든다. 삶의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관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는 신과 인간의 협력에 의해서 개선될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 즉 노력에 따라서 도덕적 질서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고,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실용주의의 비전인 세계개선론(meliorism)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는 우리의 손에서 그 마지막 마름질받기를 기다리며 유순하게 서 있다. (……) 인간은 세계에 진리를 일으킨다.”

ⅲ) 실용주의는 1950년대 초 듀이의 서거와 더불어 철학사 창고의 한구석으로 퇴장하는 듯 했으나 로티의 『철학과 자연의 거울』(1979)이 출간된 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부활했다. 그 중간에 콰인, 셀라스(W. Sellars)와 같은 분석철학자이면서 실용주의를 위한 이론적 작업을 한 철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철학자는 신실용주의자 로티다.

‘실용적 전환’의 요체는 데카르트주의의 극복이다. 실용주의자들 이외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데카르트가 만든 덫 즉 이원론이라는 철학사의 질병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 병에 감염되는 경향을 보였다. 예들 들면, 20세기 초의 언어적 전환도 사실상 데카르트가 발명한 ‘정신’을 ‘언어’로 대체했을 뿐이다. 즉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언어와 실재의 관계로 바뀌었을 뿐 그 이원적 구도는 그대로 유지됐다. 고전 실용주의자들은 형이상학적 사변의 무의미함을 노출시켜 덫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와 달리 로티는 아예 인식론의 폐기를 주장한다. 그는 이원적 구도 대신에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이라는 수사학적 개념을 가지고 보다 나은 공동체의 구축을 이야기한다. 이런 ‘새로운’ 의식의 공동체 내에 전통적 의미의 철학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리하여 그의 신실용주의는 “철학을 위한 최선의 희망은 철학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숙제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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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2017-06-22 16:52:53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기존의 이론들을 부정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나 찬성을 표시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모순을 바로잡고 그들을 하나로 융합하면서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모두 밝힌다. 수학은 현상의 크기를 계산하는 도구에 불과하므로 수학으로 원리를 기술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크기, 장소, 형태와 상관없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의 물리학이론은 국소적인 상황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