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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절대적인 역량’ 탐색
모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절대적인 역량’ 탐색
  • 전성욱 동아대·한국어문학과
  • 승인 2017.06.0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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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절대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생명과 혁명』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496쪽 | 25,000원

 

이 책의 압권은 역시 4부의 글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 본인의 구체적인 실감 속에서 마음의 미세한 격동을 절제하는 가운데 쓰인 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잇따른 역사적 재난들 속에서, 그 파국의 참상을 절대적민주주의의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역량으로 역전시키려는 저자의 사상적 분투가 너무나 절절하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문학자로 출발한 저자의 정치철학적 사상에 내재한 감수성의 독특한 질감을 감각한다.

 

나쓰메 소세키론으로 등단했던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와 칸트를 경유함으로써 세계공화국이라는 영구평화의 정치적 구상에 이르렀다. 왕후이는 절망과 희망, 개체와 군중, 전통과 근대 사이에 소재하지만 소속되지 않는 루쉰의 역설적 사상을 읽어낸 박사논문으로 시작해, 자유주의의 허위를 꼬집는 비판적 지식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서구적 민주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정치철학에 이르렀다.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노동해방문학론의 열혈 이론가이자 비평가로 활동했던 조정환은, 네그리를 ‘사숙’함으로써 제국에 대항하는 다중의 잠재적 역능에 주목하는 정치철학자로 거듭났다. 

조정환의 근작 『절대민주주의』를 앞에 놓고 나는 가라타니 고진과 왕후이를 생각한다. 이들의 정치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에 ‘문학’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 그것이 이들의 사상에 내재하는 어떤 남다름의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들의 정치적 사유는 현행의 체제에 대한 분석보다는 도래할 세계에 대한 전망에 더욱 치밀하다. 다시 말해 ‘규제적 이념’에 대한 이들의 사상적 열정이란, 가능한 것에 대한 상상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의 특질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조정환이 정치철학적 사유의 고투 속에서 도달한 ‘절대민주주의’라는 것 역시 나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개념 속에는 이 세계의 악랄함에 대한 냉철한 원인 분석과 더불어, 마땅히 도래해야할 그 잠재적 세계의 현실화에 대한 전망이 간절하다. 

예술미학을 거쳐 정치철학적 주제로

조정환은 『예술인간의 탄생』(2015)의 후기에서, 정치철학적 주제에 기울어 있는 동안에도 예술미학의 문제로부터 벗어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에게 예술미학은 정치철학과 전혀 다른 무엇이 아니다. 전문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비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예술이 삶이고 삶 그 자체가 예술인 ‘예술인간’이란, 신자유주의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대중을 지양하고 어떤 제한이나 제약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으려고 하는 ‘절대적 다중’과 다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정치철학적 사유가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절대’는 ‘무한’, ‘전체’, ‘유일’과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가 다분한 개념이다. 저 개념들을 현실의 구체적인 대상으로 실체화하려고 할 때 얼마나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를 우리는 역사의 사례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한 바가 있다. 현실의 삶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절대나 무한은 세속 너머의 신성한 무엇으로 상상하거나 가늠하거나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가능하거나 있어야 하는 잠재적인 것으로 존재할 때라야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절대민주주의’는 현실화되기 어렵고 도달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이룩해야만 하는 역설적인 정치의 이상이다. 조정환에게 그것은 삶과 예술의 일치와 마찬가지로 ‘지금 시간’으로 실현돼야 할 잠재적인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강력한 정치적 요청으로서의 절대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民의 정치적 의지를 농락하는 초월적 주권의 현행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민주적 잠재력이다. 현실적인 정치의 구도 속에서 민은 국민으로 환원돼, 대의되지 못하는 대의제로부터 제한당하고 배반당하고 있다. 대의제는 물론이고 직접민주제마저도 내재적 주권이자 절대적 구성력으로서의 민의 잠재력을 억압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절대민주주의의 구성력과 잠재력을 발굴하고 현실화하려는 노력은 긴급하고도 절실하다. 따라서 절대민주주의는 모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절대적인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인 ‘신자유주의 이후의 생명과 혁명’은 절대민주주의의 구상이 어떠한 맥락에서 이뤄졌는가를 분명하게 예시한다. 조정환의 정치철학적 사유의 밑바탕에는 세계화의 양상으로 전개됐던 신자유주의의 탈근대적 전환이 가져온 악마적 결과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베르그손의 철학을 통해 ‘가능성’ 발굴 시도

이 책의 1장에서는 절대민주주의 존재론적 토대인 ‘생명’을 위협하고 절취하는 생명권력과 생명산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지성’을 넘어서는 ‘직관’과 같은 새로운 인지적 역량의 발굴을 통해 삶의 혁명을 모색하는 저자의 입론이 선명하다. 조정환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핵심을 생명정치의 차원에서 파고들었던 푸코나 아감벤을 참조하는 대신, 베르그손의 철학을 통해 시간을 이완시키는 물질에 시간을 수축시키는 생명을 대립시킴으로써 새로운 시간을 여는 절대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발굴하려고 한다. 오래전부터 사빠띠스따와 같은 반세계화운동의 정치적 함의를 적극적으로 독해해왔던 저자에게, 2008년의 촛불봉기와 2010년의 아랍의 봄은 생명을 축적의 도구로 삼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다중의 혁명적 잠재력을 확인하는 극적인 순간으로 각인됐다. 2장과 3장이 바로 탈근대적 전환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양상에 대한 정치한 분석이라면, 4∼7장은 금융자본의 착취적인 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론의 구체적인 전망을 세계 각지 혁명의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생명 착취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과 전망에 대한 사유가 우리의 역사적 현실 위에서 대단히 밀도 있게 논의되는 것이 마지막 4부의 8∼11장에 이르는 글들이다. 이처럼 이 책은 각기 다른 정치적 상황에서 시차를 두고 각각의 장소에서 발표된 글들을 수합한 것이지만, 저자의 일관된 정치철학적 사상을 매우 적절하게 편성했다. 

이 책의 압권은 역시 4부의 글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 본인의 구체적인 실감 속에서 마음의 미세한 격동을 절제하는 가운데 쓰인 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3·11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용산의 투쟁과 참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옥쇄파업, 세월호 참극,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이르는 역사적 재난들 속에서, 그 파국의 참상을 절대적민주주의의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역량으로 역전시키려는 저자의 사상적 분투가 너무나 절절하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문학자로 출발한 저자의 정치철학적 사상에 내재한 감수성의 독특한 질감을 감각한다. 

이론적 분석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잉여의 지대를 감성적인 호소로 채워나가는 그 글쓰기는 어떤 묵직한 울림을 준다. 특히 촛불과 탄핵 정국을 다룬 마지막 11장의 글은 지금까지 그 어떤 시사평론적 분석이나 제도 정치학의 장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참신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 관점이란 다름 아닌 다중의 시점이며, 이른바 ‘썰전’과 같은 자유주의적 엘리트주의의 시각으로는 미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해석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광주항쟁의 제헌적 의미를 읽어낸 『공통도시』(2010)에서 분석의 틀로 제시했던 호헌, 개헌, 제헌의 논리를 여기에서는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라는 논리로 전유해 더 밀고 나갔다. 제정하는 권력(군주제, 귀족제)을 극복하는 제헌하는 권력(민주제)의 역능, 촛불의 다중 혁명을 ‘모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절대민주주의의 가능한 방향성’으로 읽어내는 것으로써 저자는 자신의 정치철학적 입론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나는 이 책이 대학이라는 제도권의 바깥에서 이뤄진 역작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대학에 자리를 잡고 제도권의 지식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와 네그리가 추방과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바와 같이, 조정환은 투쟁과 수배, 검거와 도주 사이의 고단한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그의 정치적 구상이 상당한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는 이유 역시 그 선택, 그러니까 그의 타협 없는 탈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대학의 바깥에서야말로 이런 저작이 가능한 현실은 참담하다. 국문학이라는 분과 학제의 틀을 넘어 예술철학과 정치철학적 사유를 분방하게 펼치고 있는 조정환의 길이 곧 우리의 학문과 대학의 길로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성욱 동아대·한국어문학과

필자는 동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은 책에는 평론집 『바로 그 시간』,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연구서 『남은 자들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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