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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급감, 기초학문(전공)도 ‘교양’에서 소화”
“학령인구 급감, 기초학문(전공)도 ‘교양’에서 소화”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 승인 2017.06.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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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 석좌교수, 대학교육 혁신의 길 6. 교양교육 내실화

그 동안 한국의 대학교육은 ‘특화된 전문직업교육’에만 열중해 왔지, 교양교육을 토대로 한 ‘일반적 보편지성교육’은 등한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직업교육의 성격이 강한 응용학문 분야의 전공교육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전공학업에 투입하도록 요구해 온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교육이 널리 시행됐던 데는 물론, 한국의 경제사회적 여건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강도 높은 산업화를 통해 급속히 국가사회를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선진 문물을 가능케 하는 특정 전문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단기간 안에 대폭적으로 학습·수용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됐기 때문이다.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한국사회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도 산업화를 거쳐 급속히 ‘정보사회’로 이행한 것이 현실이고 보면, 산업화에서 요구됐던 ‘특정 분야의 기성 지식’을 학습하는 것만으로는 대학의 고등교육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교양교육이 중심이 되는 ‘일반적 보편지성교육’이 곧 ‘전문 직업교육’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부분이 됐다. 

오늘의 정보사회에서는 지식도, 기술도, 산업도 분화, 전문화보다는 융합, 종합화의 길을 가야 더 큰 산업적 성과를 가져온다. 각 전문 분야들의 지식도 하나의 문제 앞에서 서로 결합되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력한 것이 되기 쉽다. 오늘의 문화사회적 상황은 여러 문제들이 서로 결합돼 우리의 해결을 기다리기 때문이요, 이는 또 문화사회적 삶이 영역별로 분립돼 있지 않고 서로 융합되어 통합되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가 융합됨은 물론, 산업과 문화가 융합되고 예술과 공학이 융합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총체적 맥락 속에서 그 맥락과 더불어 한꺼번에 다가온다면, 문제해결의 방식도 총합적일 수밖에 없다. 각 전문분야들의 지식을 폭넓고 깊이 있는 안목 아래서 조망하고 연결시켜주는 ‘지적 연결지평’이 요구되는 것이다. 교양교육은 이에 기여하는 것으로, 본래 융복합교육의 성격을 갖는 교양교육이 바람직한 전문 직업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초학문 분야에서 균형 잡힌 학업을 수행하도록 ‘교양교육’을 그 본래 이념대로 정상화, 내실화,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진 것이다. 기초학문분야에서는 전공교육과 교양교육을 점차 통합시켜 그 구별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교육내용을 응용학문분야의 학생들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해진 것이다.(기초학문분야에서 특정 학문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이를 대학원 교육에 연계해 학문후속세대 후보로 양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대전제는 ‘교양교육’을 그 본래의 모습대로 ‘기초학문 분야의 균형잡힌 융복합 교육’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한국의 대학에서는 교양교육은 학술성이 결여돼도 무방한 교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전공 교과의 수준을 낮추어 교수-학습하는 교과, 상식의 확장이나 취미생활의 고급화를 위한 교과들로 구성된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무방한 여분의 교육’ 정도로 인식돼 온 경향이 있다. 이처럼 교양교육이 크게 변질, 왜곡돼 왔기 때문에 기본개념에서부터 교육과정 편성 및 과목 설강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으로 재정비돼야 한다. 물론 그 교육 총량을 종래보다는 현격히 증대해 전공교육과 맞먹을 정도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기초학업을 뺀 진정한 의미의 교양교육이 전체 교육 총량의 3분의 1은 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간 소홀히 다루어져 왔던 대학의 교양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의 대학 현실을 염두에 두고 강화 방책을 생각해보자. 

먼저 교양교육을 위한 교육 내용을 정비해야 한다. 교양교육의 내용은 학문적 가치의 보편성을 고려해 인문학, 기초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분야의 연구성과로 구성해야 한다. 특정 영역의 직업교육과 직결되는 응용학문분야의 내용은 배제돼야 함이 원칙이다. 전문 직업교육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이는 꼭 지켜져야 한다. 당해 학문의 성격은 불문에 부치고 어느 전공이든지 교양교육과정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하려고 하는 대학현실은 학생 교육을 생각해 볼 때 개탄스러운 일이다. 학문적 성격도 약한 ‘시민생활적 교양’을 위한 과목이 청산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기초학문분야의 고전적인 연구성과가 교양교육에 반영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이에서 더 나아가 새로이 등장하는 문화사회적 문제 영역에 대한 창의적인 연구성과나 이질적인 학문분야들을 가로지르며 주어진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논구해 얻는 연구성과도 교육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전자 즉 인간, 문화, 문학, 예술, 종교, 사회, 역사, 국가, 자연, 과학, 기술 등 인간과 세계의 여러 근본적인 문제영역에 대한 고전적인 탐구 성과를 교육하는 일을 法古라 한다면, 후자 즉 현대문명, 환경,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 신과학 등 새로운 주제영역을 탐구한다든지, 예술과 기술, 철학과 경제, 문학과 정치, 심리와 법 등 이질적인 문제영역에 대한 복합적 연구를 해서 새로운 교육내용을 개척해 나가는 일은 創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양교육이 ‘일반적 보편지성교육’의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도 법고창신의 노력은 필요하다.  

“교양교육 대학교육의 30% 돼야”

교양교육을 강화하고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물론 교육과정에서 이 부분이 차지하는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교양교육은 해당분야 전공교육을 낮은 수준에서 시행하는 초보적인 교육으로 간주해 교육과정상 저학년에서 완료하도록 하는 현재의 교육과정은 개선해야 한다. 교양교육은 전공교육과 더불어 대학교육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으로 오히려 고학년에서 전공교육과 나란히 시행돼야 그 교육적 성과를 얻을 것이다. 

대학교육 전체에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도 30%는 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직업교육의 성격이 강한 응용학문 분야에서 전공을 택하는 학생에게는 이 비율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위에서 말한 대로 전체 대학교육 중 일반 교양교육은 기초학문 분야가 전담하도록 할 경우, 문제는 기초학문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를 일반 교양교육에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데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기초학문 분야에서의 전공교육과 기초학문이 참여하는 일반 교양교육을 연계시키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해당 분야 각 전공 교과과정에 교양과목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전공과목들을 선별 혹은 개발해 전공과 교양 영역에서 ‘중복 설강(Double Listing)’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효한 한 방안이 된다.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도는 교육구조를 개편해 전문적인 직업교육은 전문대학원에 맡기고 학사과정에서는 교양교육을 교육의 중심과제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명실상부하게 ‘학부제’를 실행하고, 나아가 전공의 구분 없이 다양한 이질적인 여러 학문분야에서 교육받게 하는 ‘학부대학’을 그 본래적인 형태로 운영함으로써 실현될 것이다. 이를 위한 전 단계로, 직업교육의 성격이 강한 응용학문 분야에서 전공을 택하는 학생에게는 기초학문 분야에서 또 하나의 전공을, 혹은 부전공으로 택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현실에서 볼 때 이는 실현가능성이 적은 게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차선책으로 교양교육과정을 기초학문분야의 교육으로 충실히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응용학문 분야의 전공교육과 기초학문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교양교육이 균형을 이룰 때, 대학이 대학다우면서도 직업적 능력의 함양을 도모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들이 전공학생들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게 될 때, 그 기초학문 전공학과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므로 기초학문 교육은 교양교육의 강화로 그 교육적 의의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 아닌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변화가 더 적절한 것이다.

어떤 교육이념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교양교육의 강화를 위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대학에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교육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교양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각 전공분야마다 고유한 교육 목표를 갖고 교육내용과 교육과정을 기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이러한 전공교육 중심의 제도에 의탁해 일반적인 교양교육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교양교육의 고유성을 대전제로 하는 독립적인 전담 기관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독립적인 기관이 설립됐다 해도 이에 전속되는 교수진이 구성되지 않으면, 그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교수진의 구성 또한 이와 함께 요구된다.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한국철학회 회장, 성균관대 학부대학장,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명예교수,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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