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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 현황, 전망’ 다룬 학단협 연합 심포지엄
[학술대회]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 현황, 전망’ 다룬 학단협 연합 심포지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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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위기의식이 공론화되고 있다. 1987년 이룬 정치적 민주화가 15년간 지속되면서 보수화되는 경향 속에서 지역주의, 정당파행 등이 더욱 심각한 모순을 드러내고, 민주주의론은 그런 현실사회와는 관련 없는 추상적 이행론과 공고화론 등에 치중해 현실 설명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오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4일 동국대 학림관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번 총체적으로 점검해보자는 취지의 학술대회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학술단체협의회(회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신임 회장단의 첫 작품인 이 심포지엄에서는, 정치, 사회경제, 철학·이데올로기로 나눠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 현황, 전망에 대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여러 분야에서 젊고 진보적인 논객들이 모였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방향·노선없이 혼재된 ‘바람의 정치'

이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정상호 한양대 연구교수(정치외교학)다. 정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욕구들이 2002년 폭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지난 몇 달 간의 정치변동을 ‘바람’을 키워드로 읽어냈다.

정 교수가 보는 바람의 정치는 ‘일단’ 희망이다. 노풍을 만든 노사모가 “하향적 동원조직이 아닌 자발성에 기반한 상향적 시민조직이고, 온라인을 활용해 돈을 안 들이고 운동을 전개한 점” 등으로 미뤄 참여민주주의의 한 단계 진전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정풍의 경우도 지역주의를 구사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부각된 드문 사례이고, 2~30대 유권자가 지지기반이기 때문에 주목된다며, “항상 종속변수였던 세대정치가 본격무대에 올랐다”는 고무적 선언을 하고 있다. 또한 바람이 반미정서, 민족문제, 낡은정치 청산 욕구가 결합한 하모니 구조에서 발생했다는 데까지 파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이런 변화들이 구체적 방향이나 노선 없이 어지럽게 혼재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이것은 한국에서의 정당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도 주목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의 정치가 “정당정치의 근본 개혁을 가져올 동력으로 승화될 가능성이 없다”, “정치인의 인기 부침으로 마감되고 있다”라는 비관적 인식을 덧붙였다. 하지만 정당 등 “제도와 구조를 우회한 개혁은 한낱 해프닝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에 머물고 있어 논의가 미진한 감은 있다.

사회 분야에서는 민주주의의 저해요소를 ‘이론적으로’ 철거하는 작업이 펼쳐져 시선을 모았다. 조항제 부산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한국 언론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민주주의와 언론의 관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외부의 계기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라이프스타일, 환경, 성, 지역문제를 기반으로 세를 넓히는 사회적 균열선, 정보미디어의 지속적 다원화와 대안미디어 필요성 제기, 언론개혁 운동”을 그 사례들로 들고 있다. 정권교체의 여하에 따라 언론내부의 개혁 가능성도 완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일반 민주주의적 환상이 광범위하게 조성돼

철학 쪽에서는 ‘자유주의’ 문제를 다룬 김성우 건국대 강사(철학)의 글이 발표됐다. “한국에서는 보수반동 세력이 자유주의를 수입한 터라, 이 이념은 권위주의 정권의 이념 도구로 활용되거나, 낭만적 도피처로 오용돼왔다”라며 자유주의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또한 지배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자유주의가 되는 이중 아이러니의 상황을 제시했다. 과거 복거일 및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자유주의 논의 등과 연장선에서 한판 토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논문이었다.

자기성찰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박영균 방송통신대 강사는 ‘한국 진보주의의 최근 논의와 방향’이라는 발제문에서 “한국사회의 진보주의가 이제야말로 자기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피력했다.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현재 한국 진보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개발독재형 사회체제에 대한 ‘개혁’과 ‘민주’라는 이미지 아래에서, 일반민주주의적 환상이 광범위하게 조성돼 있다는 사실”이라며 뼈아픈 지적을 하고 있다. 박씨는 이를 “노동운동의 정치화, 사회운동의 적색화, 시민운동의 반신자유주의 투쟁화”로 돌파해야 한다는 당위성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정당체제에서 노동이 대표성을 갖지 못하면서 계속 국민·사회통합의 저해요인으로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적절한 문제제기다.

그 외 인문사회과학론의 냉전사고적 흔적을 역사적으로 훑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정치학)의 논문, 인터넷 공간의 민주주의를 다룬 박동진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의 글을 둘러싼 이야기도 활발하게 오갔다. 여러모로 이날 심포지엄은 흥미로웠다. 근자에 벌어진 사태에 대한 학계의 긴밀하면서도 심도 깊은 대응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그렇고, 중산층의 민주주의가 점점 보수화되는 현실에서 학문적으로 어떤 과제들이 있는지 반성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논문 한편 한편들이 내년 한국이라는 망망대해에 진주될 ‘민주주의호’를 저어갈 ‘튼튼한 노’로 역할하길 기대해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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