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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의 촛불, 국립대도 밝힐까
이화여대의 촛불, 국립대도 밝힐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7.06.05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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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지난해 이화여대는 131년 개교 이래 가장 깊은 수렁에 빠졌다. 당시 이화여대 사태를 다룬 기사들의 글머리엔 ‘개교 이래 첫’ ‘대학 역사상 첫’이라는 수식어가 부정적(!) 의미에서 덕지덕지 붙었다. 정부재정지원사업 편법 수주 의혹으로 촉발된 개교 이래 최대 규모의 학생농성과 개교 이래 첫 교수들의 총장퇴진 교내 집회가 수개월째 이어진 탓이다.

▲ 최성욱 기자

최경희 전 총장이 자진사퇴하면서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가 했던 구성원들의 울분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입학·학사 비리로 인해 재장전됐다. 최 총장과 일부 교수들이 연루된 청와대 국정농단의 대서사극은 연일 국회와 언론을 넘나들며 이화인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갈기갈기 찢어놨다.

새벽이 오지 않을 것 같던 이화여대의 깊은 어둠에 처음 빛을 밝힌 건 학생들의 촛불이었고, 촛불행렬에 하나둘 용기를 내준 교수들이 있었다. 촛불에 힘입어 국정농단 사태는 최순실과 장차관 인사는 물론이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구속을 이끌어내며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최 전 총장을 비롯, 정씨의 ‘뒤를 봐준’ 소속 대학장과 교수들은 구치소에 수감돼 폭로전을 벌이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 이화여대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새벽을 맞았고 후임 총장선거에 돌입했다.

하지만 세간의 기대와 달리 총장선거는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이사회로부터 총장선출규정과 절차를 위임받은 교수들은 직선제와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지난 1월 전체교수회의에서 교수·교직원·학생의 투표반영비율을 ‘100:10:5’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다. 학생의 투표권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극히 적은 할당량”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투표반영비율 높이자는 데 무려 2천169명의 학생들이 서명했다. 결국 교수·직원·학생·동문의 반영률은 ‘77.5:12:8.5:2’로 직선제 선거가 치러졌다. 최종투표는 교수 988명, 직원 270명, 동문 1천20명에, 학생(학부·대학원생)은 무려 2만2581명이 참여했다.

이화여대가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던 국립대 교수들은 적잖이 속을 끓였을 것이다. 2012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국립대 선진화 방안으로 인해 총장직선제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5년 부산대의 한 교수가 총장직선제를 지켜내겠다며 투신자살한 비통할 일이 벌어졌지만, 이후 교육부는 임명제에 가까운 간선제(구성원참여제)와 무순위 추천을 명문화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내달렸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일부 국립대는 ‘열린직선제’를 모색했다. 교수 외 구성원의 반영비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이번에도 ‘교수직선제’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일단락되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국공립 8개 대학은 여전히 총장공석 상태에 머물러 있다. 총장선거를 바라보는 대다수 전임교수들의 기본 인식이 대학 운영과 교육·연구의 책임자로서 가져야할 무게 그 이상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총장 선거철마다 안팎에서 제기되는 ‘교수=기득권세력’이라는 비판을 일소하고 동시에 국립대 총장선출제도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기대하려면, 더 많은 구성원들이 총장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숨가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대학 구성원들은 총의를 모을 수 있는 총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화여대 모든 구성원이 참여한 첫 직선제 선거에서 최다 득표(결선투표 57.3%)한 김혜숙 신임총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취임사에서 ‘투명·공정·예측가능’을 정책기조로 제시하면서 그간의 사태를 이렇게 갈음했다.

“이화의 힘은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 데서 나오며,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데는 불안이 따를 것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의 초대 교육부장관과 전국 국립대 교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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