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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정책
성공하는 정책
  •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17.06.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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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 민경찬 논설위원

새 정부가 시작됐다. 그동안 제시했던 공약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정철학과 방향을 점검하며 앞으로 5년을 설계하는 단계에 있다. 지난 몇 주 동안의 새 정부는 ‘파격적’인 모습도 보이며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새 정부는 ‘완장 찬 점령군’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며, ‘겸손’과 ‘진정성’으로 진지하게 공직사회, 야당 등과의 소통, 공감을 강조하며 협치의 틀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는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다.

사실 그동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인수위원회는 의욕이 넘쳐, 마치 ‘점령군’처럼 비치며, 새로운 불만,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는 여러 혼란을 만들어, 새 정부 초기의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곤 했다. 공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적 평가보다는, 조급하게 임기 내 업적을 따지며 밀어붙인 정책들은 초기에는 추진되는 모양이 되지만, 5년 후 그 동력은 크게 변질되곤 했다.

그동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권차원에서 ‘차별화’시키는 정책기조를 담는 새 ‘키워드’가 선언됐다. ‘녹색성장’, ‘창조경제’가 최근 익숙해진 용어들이다. 이는 많은 정책들을 쉽게 바꾸며 일종의 ‘쏠림현상’을 만들었고, 정부가 바뀌면 대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대못치기’했던 정책들도 소용없었다.

성공적인 정책은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되게 마련이다. 새 정부는 5년 후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정권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의 과제이며, 국민의 요구다. 국가의 미래 생존이 달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이다. 사실 거버넌스의 의미는 ‘시장-정부-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수평적 동반자로서 서로 협력하는 네트워크’라는 점을 매우 중시해야 한다.

대학과 교수들도 대학정책을 정부, 부처만의 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교육과 연구는, 정부 5년, 장관 1~2년의 임기를 넘어, 10년, 20년, 100년을 내다보며 추진해야 하는 전략적 과제다. 당사자로서의 큰 축인 대학 구성원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더 책임감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 대학은 정부와 사회와 더불어 서로 존중하고 명확히 역할 분담하며 수평적 협력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해야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연구자들이 선도해나갔다.

그런데 지난 4월 <교수신문>은 대학교수 인식도 설문조사에서 교수들 스스로 ‘지식인의 죽음’을 70.2%가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비판적 지성, 학자로서의 위상보다는 교육, 연구에 대한 ‘기능적’, ‘수동적’인 교수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30년간 지구촌에는 지식인이 실종됐다’는 사회적 비판과도 연계되는 이야기다.

성공적인 정책은 그 정책의 철학이 분명할 때다. 철학은 보편적일 때 더욱 큰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 정책은 지속될 수 있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 글로벌 시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철학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며, 정권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 관점의 큰 철학과 전략이 되어야 한다. 교수들은 여기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는 매우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일자리 등의 경제, 사회적 이슈는 물론 주변나라들과의 관계도 만만치 않다. 새 정부의 정책들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시대는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의 틀을 통째로 바꿀 것(reset)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 사회도 새롭게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며, 서로 간의 신뢰, 소통, 공감을 쌓아가는 일에 나서야 한다. 더 높은 가치를 목표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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