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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현실의 무게
학문과 현실의 무게
  • 박성진 인하대 박사후연구원·철학과
  • 승인 2017.05.2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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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박성진 인하대 박사후연구원·철학과

송나라의 도학자 정이가 임종을 맞이할 때 그의 제자들은 정이의 학문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정이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는 무엇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공부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학문 본연을 위해(爲道) 탐구했을 뿐이라고 유언했다. 이렇게 여타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문 본연을 위해 학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동아시아 지성사의 일관된 자세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의 공통된 목표일 것이다. 또한 오직 학문 본연을 위해서 탐구하고자 하는 그 충실함이 자신의 심연에 착실히 축적돼 인류 지성사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희망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러한 희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희망은 현실이라는 고단함에 결국 저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충실한 학자이기를 희망했지만 학자도 현실 속에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 강의 자리를 잡았을 때, 교육자로서의 자세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학자이기도 하지만 교육자이기에 학생들을 위한 강의준비를 소홀히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나의 연구를 위해 학생들을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학문적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겨우 스스로 학문적 심연으로 들어가 새로운 탐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심연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나를 다시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현실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나의 학문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이었으며 현실적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실체가 없는 미완의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학문은 현실태로서 발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상황이 좋아져도 나의 학문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완성을 위한 어리석은 시도를 멈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도들이 한 사회에 축적됐을 때 그 사회의 문화와 지성이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학자들이 현실의 무게로 인해서 학문에 충실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따라서 시간강사지원사업이나 학술연구교수지원사업 등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지원사업은 지금보다 더 확대돼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무게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른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무너져 내리거나 누군가에게 그 무게를 덜어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하는 것뿐이다. 공부한다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연구재단 지원 제도들의 확대는 어느 신진학자의 어께 위에 놓인 무게를 덜어주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박성진 인하대 박사후연구원·철학과

성균관대에서 정치사상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세기 영국에서 발현한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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