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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등 뜻하는 ‘이소노미아’ 논의에 주목 … 그가 던지는 실존적 질문은?
정치적 평등 뜻하는 ‘이소노미아’ 논의에 주목 … 그가 던지는 실존적 질문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5.29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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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8강.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한나 아렌트와 정치철학’

지난 20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4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여덟 번째 강연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한나 아렌트와 정치철학’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자주 호명되는 건, 그만큼 그의 정치철학에 내재된 현재적 의미가 울림이 커서일 것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주로 연구해온 박 교수가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읽어낸 게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그의 연구 전력이 오히려 작금의 ‘아렌트 읽기’와 결이 다른 독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됐다. 과연 그는 어떻게 한나 아렌트의 현재적 의미를 읽어내고, 그 사상의 역동적 무게추를 무엇으로 설정했을까?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자료·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대안을 찾아서: 정치의 회복을 위한 모색 

아렌트는 정치공간의 회복을 위해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이소노미(isonomy)를 제시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 개념은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는 정치공간이다. 인간은 불평등한 존재이나, 개인들 모두를 정치공간으로 초대하려 할 때는 불평등을 제거하게 된다. 즉 정치공간에 들어올 때 인간은 각자 사적인 영역을 내려놓고 평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와 토론을 통한 정치공간의 구성은 불가능하고, 명령-복종의 질서에 함몰된다. 그러므로 정치공동체는 서로 지배하거나 지배받지 않는 동등한 존재들로 구성돼야 한다. 현대의 법 앞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과는 다른,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는, 정치적 평등이 이소노미아(Isonomia)인 것이다. 천부인권사상과는 반대인 것이다. 모든 이들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소노미아가 필요했고 이를 통해서만 자유가 가능했다. 아렌트는 그리스에서의 지배-피지배가 없는 삶의 방식을 이소노미아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렌트 역시 이소노미아를 ‘정치적 평등’으로 해석한다. 지배-복종 관계가 아닌 정치 전통의 예로 이소노미를 든다. 다시 강조하자면, 아렌트는 liberty와 freedom을 구분한다. 전자는 구속, 압제, 빈곤, 생물학적 필요성 등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로, 오직 소극적인 의미만을 지닌다. 반면 freedom은 헤로도토스 이후로 지배-피지배의 구분이 없는 무-지배(no-rule) 아래 시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정치조직의 형태라고 정의한다. 아렌트는 freedom의 핵심을 폴리스의 정치체제로 민주주의 대신 제시했던 이소노미로 파악한다. 모든 체제는 지배의 관념을 갖고 있으나 지배 개념이 없는 것은 오직 이소노미 뿐이다.

지배-복종이 없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점에서 이소노미는 정치공간의 존재를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은 기회의 평등, 법 앞의 평등,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흔히 번역하듯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법 안의’ 평등이 더욱 정확하다. 법에 의해 보장되는 정치공간에서 이 공간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의 평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정치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평등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은 특정의 정치체제 없이는 보장받을 수가 없다. 불평등을 벗어난 영역으로서 정치공간이 존재한다. 정치공간이 불평등한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나 경제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이 평등은 발언 기회의 평등으로 보장된다. 평등한 대화를 말한다. 이소노미아의 현대적 적용노력이 아마도 인간평화를 향한 아렌트 정치철학의 현실적이며 제도적인 귀결이 아닐까 싶다.

용서와 화해: 세계사랑의 출발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을 정치의 핵심으로 본다. 화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랫동안 지탱돼온, “생명에는 생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손에는 손, 발에는 발”법칙(신명기 19;21. 마태 6;38. lex talionis)을 야만의 행동으로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용서는 실로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관용은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기 위한 절대적 선결요건이었다. 이것은 기독교 근본교리이자, 아렌트의 입점이다. 성서는 인간 사이의 용서와 관용을 반복해 먼저 요구하고 있다. 신에게보다 인간들 사이의 용서가 먼저인 것이다.

일찍이 노자는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면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나아가고, 승전을 했을 때는 승전고를 울리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패자를 위한 喪禮를 올리라고 하고 있다. 상례는 곧 葬禮(funeral rites)를 말한다. 우리 인간들 중 누가 과연 자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자를 위한 상례를 갖출 수 있을 것인가. 동서를 막론하고 애도와 비통의 표현인 매장의 예를 적에게 갖춘다는 것은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가장 놀라운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죽음의 포용을 통해 이생의 갈등을 용서하는 동시에 용서를 빌며, 관용하는 동시에 관용 받고 싶은 인간의 절대적인 생명열망과 화해열망을 내포한다.

인간은, 자신부터 매일 죄를 짓는 존재다. 따라서 탄생과 함께 원죄만큼이나 용서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양대 본질을 구성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세계는 평화를 결코 꿈꿀 수 없다. 이때의 ‘공정한 응보’는, 정확하게 다시 한 번 더 보고 걸러낸다(re+warder)는 뜻이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관용하지 않은 우리가 심판 날에 주의를 기울여 다시 한 번 더 정확하게 살펴볼 신으로부터 자기에 대한 용서와 사랑과 관용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화해와 용서의 숱한 이론들이 말하듯 용서가 바로 힘이고 지혜인 까닭이다. 폭력이 힘이 아니라 용서가 힘이다. 적대가 힘이 아니라 관용이 힘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세계사랑의 출발점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인간화해와 세계사랑은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종교는 물론이려니와 현실에서도 말이다. 산타 크로체 성당은 필자가 자주 들른 곳이다. 거기에서 특히 주목을 끈 묘지는 마키아벨리와 갈릴레오의 무덤이다. 이들이 이곳에 안장된 것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주지하듯 마키아벨리는 기독교에 의해 악의 화신으로 까지 묘사된 사람이다. 금서조치는 물론이었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해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천동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다. 둘 다 가장 반기독교적인 인물들로 낙인찍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란체스코 성인을 기리는 성당에 안장됐다. 세속 현실에서의 이 화해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 한나 아렌트(arendt_archive)

인간 행동에 내재한 불가 예측성으로 정치영역은 항상 파괴될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요체는 다른 데에 있다. 즉 지속과 파괴 자체가 아니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있다. 아렌트가 주목하는 것은 전환의 열린 공간인 틈새(hiatus)라는 중간지점이다. 이 지점은 ‘구질서의 종말과 신질서 시작의 사이’(Arendt)이며, ‘부정적 과거와 새로운 자유의 사이’이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과 아직 오지 않음의 사이’로 설명된다. 순환사관이자 시간의 일직선적 진행을 비판한 하이데거의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 점은 유토피아를,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다가올 현재’로 해석하는, ‘아직-아님(not-yet)’으로 설명하는 블로흐와도 직접 연결된다. 이 지점은 과거의 질서가 끝나고 새 질서가 성립되기 직전의 시간을 말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과 아직 오지 않음의 사이에서

아렌트는 국가와 민족의 이익과 관점을 넘는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는 진정한 인간주의자였고, 자기절제의 한 화신처럼 보인다. 추론컨대 이는 그녀가 이중-삼중의 패리어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전에 1943년 그녀는 민족분쟁을 경계선을 넘는 연방의 구성을 통해서 해결하자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매우 놀라운 발상이다.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하고, 이스라엘-아랍 각각의 두 국가건설도 반대하며 이스라엘-아랍 연방 건설을 주장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건국해 피억압자가 억압자가 돼, 팔레스타인들을 다시 피억압자로 만드는 정치의 파괴, 폭력의 대두, 전쟁의 도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민족 내부의, 또는 밖의 ‘적’ 누구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1945년-48년, 1950년-1953년, 그리고 이후 오늘날까지의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현대 인문학의 한 지평을 활짝 열었던 비조의 한 사람인 비코(Giambattista Vico)는, ‘인류의 원리에 관한 모든 오류의 고갈되지 않는 원천’으로 ‘민족의 자부심(boria delle nazioni)’과 ‘학자의 자부심(boria dei dotti)’을 든 바 있다. 그의 추상같은 언명은 미슐레와 브로델을 통해 자기 나라의 문제를 마치 다른 나라(another country), 다른 조국(another fatherland), 다른 민족(another nation)인 것처럼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그 나라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프랑스를 관찰하라는 페귀(Charles Peguy)의 언명을 강조해 다짐하도록 한다. 선과 악, 좋은 점과 나쁜 점,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사유하고 통찰해 그토록 프랑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슐레보다 더 애국적인 프랑스 역사학자를 찾기란 힘들 것이다.
 
아렌트는 철저하게 이 전통 위에 서 있지 않나 싶다. 소크라테스, 괴테, 칸트, 매디슨, 빅토르 위고가 아테네, 독일과 미국, 프랑스……를 넘어, 자기나라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동시에 인간문제 일반에 대한 해법을 추구한 세계시민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곧 구체적 체험에 바탕한 보편적 가치의 추구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곧 보편을 통한 구체요 인간애를 통한 민족애이며, 세계사랑을 통한 나라사랑(애국)이라는 점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둘 사이의 상호 대화 역시 진실이 아닌가 싶다. 아렌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실존적 물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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