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6:35 (화)
아직도 공자 타령이라니?
아직도 공자 타령이라니?
  • 이강재 서울대·중문학
  • 승인 2017.05.29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강재 서울대·중문학
▲ 이강재 서울대 교수

일전에 어떤 최고지도자 교육과정에 공자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갔다가 뜻밖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보다 한 주일 먼저 강의한 분께서 현대사회에서 공자를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앞서 강의한 분은 다른 제자백가 사상가를 전공한 분으로 자신의 전공 입장에서 공자의 사상은 현대사회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상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논어와 공자를 전공하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내가 간혹 공자를 팔아서 먹고 산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그처럼 단정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말한 사람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그 분의 배짱과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또 그 근거 없는 무모함에 대해 헛헛한 웃음만 나왔다.

戰國時代의 한비자는 공자와 유자들에게 대해 날선 비판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의 하나가 ‘守株待兎’라는 사자성어 속에 들어있다.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는 이 성어는 ‘한 번 이뤄진 우연을 다시 기대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렇지만 이 성어의 출전인 『한비자』 「오두편(五?篇)」의 내용을 보면 원래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송나라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려가다 여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 사람은 이것을 보고서 쟁기를 내려놓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얻지 못하고 그 자신은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보면, 이 성어는 당연히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에 대한 단순한 비판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비자가 이 성어를 만들어낸 목적은 바로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지금 선왕시대에 통하던 정치를 가지고 현재의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 위 이야기의 그루터기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계속된 전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전국시대를 살아간 한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春秋時代 후기를 살았던 공자가 선왕의 정치를 강조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경지로 요순임금을 언급한 것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집이고 시대적인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잘못된 주장일 뿐이다. 결국 공자의 주장은 이전에 이뤄졌던 어떤 일이 새롭게 바뀐 환경에서도 또다시 이뤄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행동과 같다는 것이다.

한비자가 공자를 비판한 것은 한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공자 사상을 그대로 자기의 시대에 적용했을 때 현실적으로 갖는 한계에 대한 인식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일반화해서 말한다면, 모든 고전은 그 고전이 나온 시기의 역사성을 갖고 있고 또 현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성에 근거해서 원래 어떤 뜻이었는지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사실 ‘지금’과 ‘여기’라는 현재성을 전제로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것이 갖는 가치가 더욱 크다. 이런 측면에서 고전의 현대적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자신의 생각에 근거해서 특정 고전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자신이 비난하는 고전이 갖고 있는 현재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앞서 언급한 공자 공부가 무의미하다고 하는 주장이나 한비자의 공자 비판은 고전의 특징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는 같은 차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고전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위에서 언급한 ‘수주대토’라는 성어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이 점은 인문학에서 고전교육을 주장할 때에도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 자신이 혹은 우리가 전공하는 특정 고전만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서도 안 되고 또 그저 과거의 유명한 고전에 대한 단순 지식 차원의 학습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인문학적 사유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면서 그 고전이 갖고 있는 현재성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어야 하고, 그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발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공부의 목적이 돼야하는 것이다. 가령, 공자를 언급한다면 ‘君子’를 통해 현대사회의 리더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和而不同’을 통해 갈등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공자맹자 타령이냐고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 ‘왜’, 그리고 ‘어떻게’ 공자를 볼 것인지를 먼저 논의한다면, 우리에게 유의미한 고전으로 다가올 것임에 분명하다.

이강재 서울대·중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