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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평의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헌재’의 평의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7.05.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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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우석훈 지음, 문예출판사, 316쪽, 14,800원

박근혜를 대통령에서 파면하는 과정은 어려운 의사 결정의 연속이었다. 국회가 의결을 했고, 특검이 많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을 참고해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단심이고, ‘어필’이라고 부르는 상급심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없다. 한 번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결정이든지 결정은 내려져야 하고, 어떤 결정이든지 발생시키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과연 이 결정은 어떻게 내릴까? 이 과정은 헌법재판관들끼리 모여서 결정하는 평의에서 이뤄졌다. 평의? 평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도만 규정이 있지, 그 안에서 어떻게 진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미리 규정된 것이 없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사회적 경제에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평의는 주식회사 방식이나 공무원 방식은 아니다. 위원장이 생각보다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여의도 방식도 아니다. 헌법재판관들끼리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상하관계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단 한 명일지라도 반대 의견이 소수라고 무시되지 않는다. 주요한 반대는 판결문에 적는다. 이런 구조 자체가 사회적 경제의 의사결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헌법재판소가 평의를 통해서 가장 큰 의사결정을 처리한다면, 왜 다른 사회적 기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못할 이유는 없다. 개인의 선호와 취향 그리고 철학을 뛰어넘어 같이 내리는 결정을 못할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결정은 없다. 평의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회적 경제의 기구들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그 결정이 헌재 결정처럼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헌법재판관들이 평의를 통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법인들은 결정을 내릴 수 없을까? 우리 모두는 헌법재판관들이 공식· 비공식 평의를  계속해서 열어 가면서 결국 판단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실 사회적 경제도 그렇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면 된다. 많은 결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판단을 아예 내리지 않고 유보하는 것이 더 나쁘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진 결정 중에는 옳지 않은 결정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모두 옳고 딱 맞는 결정만 내릴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가 평의를 통해서 가장 큰 의사결정을 처리한다면, 왜 다른 사회적 기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못할 이유는 없다. 개인의 선호와 취향 그리고 철학을 뛰어넘어 같이 내리는 결정을 못할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결정은 없다. 평의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회적 경제의 기구들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그 결정이 헌재 결정처럼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결정을 중요하게 지켜보고 있고, 늦어지는 것은 괜찮지만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평의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판단을 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 수많은 전문적 지식이 중요해지지 않는다. 기본적인 상식과 약간의 지식 그리고 많은 토론과 의논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 정도는 어느 조직이나 할 수 있다. 헌재의 평의는 좌우를 넘었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 또는 사회의 분할도 넘었다. 그 판단은 정치적인 판단이지만 지난 수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수십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적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결정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결정이다. 그리고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경제적 불황 국면, 그래도 점점 더 강화될 지방자치, 국가가 직접 도와주기 어려운 개별적 경제 주체들이 만나게 될 절망감, 이런 것들은 사회적 경제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그 안에 결정적인 핵심 요소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연성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조직론에서 의사결정이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좌우로 나뉘고, 지역으로 나뉘고, 연령별로 심지어는 성별로도 나뉘는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많은 조직들이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내가 마지막까지 느낀 불안감은 바로 이 조직론의 맹점이다. 모든 물리적 요소가 준비돼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다. 비어 있는 그 마지막 퍼즐을 헌재의 평의가 채워 넣었다. 평의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좋은 의사결정 과정을 한 번이라도 본 사회과 그렇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미래의 차이, 그 변곡점을 우리는 지났다. 

□ ‘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한 희망의 경제학’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의 저자 우석훈은 『88만원 세대』, 『불황 10년』 등의 책을 쓴 경제학자. 사회 문제를 특유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분석, 통찰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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