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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성공 버리고 배양해낸 '심원한 사상'의 울림
세속적인 성공 버리고 배양해낸 '심원한 사상'의 울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5.22 15: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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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5강.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의 ‘비코 사상의 현재적 의미’

지난 4월 29일(토)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에서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4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1섹션 철학/사상의 다섯 번째 강연은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과)의 ‘비코 사상의 현재적 의미’였다.
강연자로 나선 조한욱 교수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미슐레의 비코를 위하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내 곁의 세계사』,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등이 있고 그밖에 피터 버크의 『문화사란 무엇인가』, 로저 에커치의 『밤의 문화사』, 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 린 헌트의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등을 번역하는 등 활발한 연구,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조한욱 교수의 이번 강연은 200자 원고지 140쪽 가까운 분량에 기초한 것으로, 역사의 저편에 존재하던 이탈리아 사상가 비코를 21세기 오늘의 한국 지식계에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17세기 말~18세기초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활동했던 비코를, 그는 어째서 오늘 이곳으로 불러낸 것일까.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거의 완전하게 잊혔던 비코(Giambattista Vico, 1668년~1744년)가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코 사상 자체의 진가가 서서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크로체는 “비코의 『자서전』은 『새로운 학문』의 정신 속에서 씌어졌다”고 정확하게 갈파한 적이 있다. 개체 발생이 종족 발생을 반영하듯, 비코가 자신 개인의 불행한 운명이 더 큰 행복을 위한 신의 섭리의 배려였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인류의 조잡한 이기심이 궁극적으로는 ‘이상적인 영원한 역사’를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거대한 역사철학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비코는 일곱 살 때에 부친이 경영하던 서점의 사다리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두개골의 오른쪽에 골절상을 입었다.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이 어린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 뒤 ‘쾌활하고 잠시도 쉬지 못하는 아이’였던 비코는 ‘천재성과 심오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속하는’ 우울한 기질과 화를 잘 내는 성질을 갖고 자라나게 됐다. 열여덟이 되던 해에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데다가 가세마저 심각하게 기울었다. 그 결과 그는 바톨라에 있 는 로카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지내면서 9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그는 법학과 시학에서 최대한의 전진을 이룰 수 있었다. 1723년에는 나폴리대학교 시민법 교수직의 공개 모집이 있었다. 실력 면에서는 어느 경쟁자보다도 좋은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지만, 대학 내의 인사 관계 정치 문제에는 둔감했던 관계로 탈락했다. 큰 실망이 따랐지만, 그 이후 비코는 나폴리의 대학 공동체 내부에서의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어떤 희망도 포기한 채 자신의 심원한 사상을 배양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 결실로 태어난 것이 바로 『새로운 학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평가한 『새로운 학문』의 최대 업적

이 불행했던 순간들은 비코 개인에게 있어서는 비극이었지만, 신의 섭리에 의해 인류 전체를 위한 희극으로 바뀐 순간들이었으며, 비코 자신도 그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비코의 또 다른 열렬한 추종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새로운 학문』의 최대의 업적이란 정신의 극심한 한계 속에서도 많은 변화와 적응이 가능하고, 그것을 구분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지적했던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제약 조건 내에서 인간 실존의 다양한 가능성을 비코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입증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 실지로 『자서전』은 비코가 스스로를 창조해나간 과정의 이야기다. 그는 당시 자신이 알던 대다수 중요 사상가들의 가르침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는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출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건대 궁극적으로 비코의 생애란,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만을 알 수 있다’는 명제로 귀결될 수 있는 그 자신의 ‘verum ipsum factum’의 원리에 대한 최고의 예로 간주될 수 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을 피하며 비코의 본령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실로 비코 자신이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도출해내 인류의 역사에 적용시켰던 원리인 ‘verum ipsium factum’, 즉 ‘만든 것과 진리는 같다’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 방법론적, 혹은 인식론적 원리에 대해 비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태고의 원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어둠의 밤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빛나고 있다. 의심할 수 없는 그 진리는, 시민 사회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원리는 우리 인간 정신의 적응 가능성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신만이 알 수 있는 자연 세계의 연구에 철학자들이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반면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알 수 있는 여러 민족의 세계 혹은 시민 세계의 연구는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풀어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은 자신이 만든 것, 혹은 원칙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원리다. 이 원리에 내재하는 가정이란 문화적 산물은 인간 의식의 창조물이며, 과거의 인간 정신은 현재의 인간 정신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자연 현상에 대해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적 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해는 계몽사상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의 연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귀납적인 연구에 근거한다.

과거의 인간 의식은 현재의 인간 의식에 의해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문제가 현재의 문제와 동일하다거나, 과거의 인간들이 그 문제에 반응하던 방식이 현재의 인간들이 그 문제에 반응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각 시대는 자체의 문제를 갖고 있으며, 그 문제에 반응하는 방식은 그 시대의 문화가 도달한 합리성의 수준에 따라 다르다. 각 시대는 자체의 요구와 가능성과 선입관을 갖고 있다. 각 시대는 그 요구를 처리하기에 필요한 제도와 가치관을 만든다. 따라서 현대인이 원시인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는 원시인의 세계 속으로 공감적으로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 의식을 합당하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류가 어렸을 적으로, 사람들이 이성을 그다지 많이 지니지 않고 행동했을 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비코의 인식론적 원리와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이 원리에 근거해 비코는 데카르트의 진리에 대한 관점을 역전시켰다. 데카르트가 누구인가. 과학 혁명의 이론적 틀 하나를 제시하여 수학적 담론이 지배하던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 아닌가.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를 제공하는 것은 수학밖에 없으니, 그 논리적 결과로 명석 판명한 진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은 학문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데카르트는 천명했다. 그의 영향 아래 모두가 수학적으로 말하고 자연과학적으로 생각하던 시대에 비코가 그에 맞섰다. 인간 사회는 인간이 만든 것이니 인간이 알 수 있고, 자연은 그렇지 못하니 인간이 연구해야 할 합당한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 사회이자 인간 역사라는 주장으로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밝힌 것이다.

‘이상적인 영원한 역사’의 보편성과 그 특수성

사상사의 맥락에서, 이것은 진리의 근거를 명확하고 확실한 것에 두면서 수학이나 물리학에 최고 학문의 위치를 부여했던 데카르트에 대한 반발이 확실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기억력에 근거하는 학문인 역사학은 학문의 근거가 박약하다. 기억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하기 마련이며 역사가들은 자신의 과거를 훌륭하게 윤색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코는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은 알 수 있다는 원리에 근거해, 인간의 합당한 연구 대상은 인간의 사회, 인간의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학을 위한 기틀을 제공한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하듯 우리는 기하학에서 가장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란 기하학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부터가 인간이 만들어낸 가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비코의 원리가 지니는 논리적 타당성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비코 사상의 핵심인 이 인식론적 원리에는 일견 모순적인 두 가지의 요소가 혼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과거의 인간 정신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에서 보이는 ‘이상적인 영원한 역사’의 보편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각 민족의 출발점이라는 특수성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명제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코의 위대성은 그 두 영역의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에 있다. 이제 본고에서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비코가 사용하는 중요한 방법적 도구의 하나인 어원학과 ‘이상적인 영원한 역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 작용에 대해 논할 것이다. 실상 어원이란 각 민족의 정신 상태에 침투하는 수단으로 그 민족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말하며, ‘이상적인 영원한 역사’란 모든 민족의 부침이 그에 따라 결정되는 법칙, 혹은 틀을 말한다. 따라서 그 둘은 모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비코에게 있어서 단어의 기원을 찾는 일이란 언어 이전의 언어 즉 보편적이고 영원한 언어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인 한편 ‘이상적인 영원한 역사’는 언제나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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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2017-06-22 17:06:30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기존의 이론들을 부정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반대나 찬성을 표시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모순을 바로잡고 그들을 하나로 융합하면서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모두 밝힌다. 수학은 현상의 크기를 계산하는 도구에 불과하므로 수학으로 원리를 기술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참된 과학이론은 우주의 운행은 물론 탄생까지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크기, 장소, 형태와 상관없이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의 물리학이론은 국소적인 상황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