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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면서도 달달하기까지한 건 없다”
“크면서도 달달하기까지한 건 없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05.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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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79. 참외

참외는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원산지는 동인도이고, 옛날에 비단길을 타고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본다. 한국·일본·중국에서만 재배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하며, 세 나라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주로 심기에 서양 사람들은 참외를 ‘Korean melon’이라 부른다.

예부터 참외는 알아주었는지라 부드럽고 반드러운 참외모양을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취색을 품은 청자참외모양꽃병(靑磁素文瓜形甁)이 국보 제94호이고, 긴 목 위의 아가리가 참외 꽃 생김새인 청자상감모란국화문참외모양병(靑磁象嵌牡丹菊花文瓜形甁)이 국보 114호라 한다.

멜론(melon)의 일종인 참외(Cucumis melo var. makuwa)는 매끈하고, 기름한 원기둥모양으로 길이 15cm 남짓이고, 무게는 450g에 가깝다. 하얀 줄무늬가 죽죽 골 따라 나있고, 果肉은 하얀 것이 즙물이 많고 달며, 안에는 자잘한 씨앗이 한 가득이다. 풍미는 감미멜론(honeydew melon)과 오이의 중간이고, 껍질은 깎아버리고 씨앗을 포함해 통째로 먹는다.

원줄기는 길게 옆으로 벋고, 배꼬인 덩굴손(tendril)으로 도르르 말아 다른 것을 붙잡고는 바득바득 기어오른다. 잎은 어긋나고, 손바닥 모양으로 둘레가 얕게 갈라지며, 밑은 콩팥모양(kidney-shaped)이고, 5~7개의 잔잎(裂片)이 나며, 가장자리에 톱니(鋸齒)가 있다. 한그루에 암수 꽃이 같이 피는 양성화로 6~7월에 노랗게 피고, 화관(花冠, 꽃부리)은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채소(果菜類, fruit vegetables)인 참외는 보통 황색이지만 녹색품종도 있다. 1950년대까지는 성환참외·감참외 등 여러 재래종이 재배했으나 1960년대부터 은천참외로 점차 바뀌어 요새는 그것이 대부분이라 한다. 모르지, 또 다른 품종이 등장했는지.

흔히 “크면서도 달달하기까지한 참외는 없다”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다 갖추어지기란 어렵다는 것을, “참외를 버리고 호박을 먹는다”란 알뜰한 아내를 버리고 둔하고 못생긴 첩을 취하거나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골라가짐을 빗댄 말이다. 그리고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瓜田不納履)고 의심받을 짓은 애초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참(眞)외’란 말에는 어떤 다른 ‘외’가 있음을 암시하니 ‘참외’에 대해 ‘물외’라 부르는 ‘오이(cucumber)’다. 물외란 물이 많아 이르는 말인데 ‘오뉴월 장마에 물외 크듯’이란 말은 어린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필자도 올해 처음으로 참외모종 다섯 포기를 사다 밭에 심어 지금 쑥쑥 자라고 있다. 참외는 새순을 얼마나 정성껏 질러주느냐에 따라 재배 성공여부가 달렸다. 아들줄기에서 열매를 맺는 수박과 달리 참외는 손자줄기에서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어미덩굴이 4~5마디가 되면 줄기 끝을 잘라주고, 또 아들덩굴이 15~17마디가 될 때 또 잘라준다. 그러면 아들덩굴의 잎겨드랑이에서 손자덩굴이 자라게 되고, 손자덩굴의 첫째 마디에서 열매가 맺는다. 포기당 열리는 게 몇 개 되지 않는 수박과 달리 참외는 잘만 키우면 7~8개나 달릴 수 있다.

참외를 먹어도 야리야리한 속과 씨를 다 파내고 열매살(果肉)만 먹는 버릇이 있다. 씨앗이 대변에 고스란히 고대로 묻어나오는 것이 께름칙해서 그러는데 실은 우리 집사람처럼 당분덩어리인 속과 지방산이 많이 든 씨앗을 모두 먹는 것이 옳다. 기실 과일의 살(과육)은 나중에 씨가 싹틀 때 양분이 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다른 동물들에게 먹혀서 씨를 멀리 퍼뜨리기(산포, 散布) 위한 노림수와 꾐이 거기에 들었다.

비닐하우스 탓에 참외도 절기를 타지 않아 벌써 이른 봄에 한껏 사다 먹고, 퇴비 되라고 밭고랑에 흩뿌려둔 것이 벌써 저절로 나서 자라기 시작했다. 말해서 ‘개똥참외’다. 참외씨는 씹어도 미끈미끈한 것이 씹히지 않고, 센 위산이나 강력한 이자액이나 창자액에도 끄덕하지 않고 내장에 싱싱하게 머물다가 대변에 묻어 나와 저렇게 자란다. 식물들을 알아줘야 한다!

해마다 있었던 일이다. 밭에서 절로 나 내처 늘씬하게 넌출이 산지사방으로 죽죽 뻗더니만 참으로 옹골차게 익은 주먹만한 누런 개똥참외들이 탐스럽게 열린다. 그런데 의외로 성주참외후손이라 그런지 크기가 좀 작을 뿐 태깔은 물론이고 맛도 훌륭했다. 어쨌거나 ‘개똥참외’란 저절로 생겨난 참외이거나 서자의 첩 자식을 업신여기고, 낮잡아 이르는 말이란다.

인물도 나는 곳이 따로 있듯이 참외나 다른 과일들도 유명산지가 따로 있는 게 신기하다. 성주 참외·나주 배·청평 잣·경산 대추·금산 인삼·의성 마늘 식으로 말이다. 식물이 잘 자라는 데는 마땅히 토질이 중요하지만 다른 여러 기후가 떠받쳐주어야 한다. 어쨌거나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가 아열대기후로 바뀌어가면서 과수재배 적지가 북으로 점차 올라간다고 한다. 오래 살다보니 별꼴을 다 본다.

보통 익은 참외열매는 식용하지만 익지 않은 것은 음식물을 빨리 토해내거나 가라앉히게 하는 催吐劑로 쓴다한다. 또한 한방에서 급성위염·고열·정신이상·황달·알코올 중독·배뇨통·근육마비 따위에 썼다하고, 현대의학에서도 참외에는 당뇨를 다스리는 성분이 들었고, 씨앗에는 리놀레산(linoleic acid)·올레산(oleic acid)·팔미트산(palmitic acid) 등의 지방산이 듬뿍 들었다고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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