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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말썽꾸러기지만 '길몽' 주인공
세계적 말썽꾸러기지만 '길몽' 주인공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05.17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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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78. 잉어
▲ 잉어.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이시돌의 약선도가’
(http://m.blog.naver.com/pyhgoodday)

한 일간 매체는 최근 용트림 치는 잉어 사진과 함께 “경기도 의정부시 중랑천에는 요즘 이색적인 광경이 연일 펼쳐지고 있다. 산란철을 맞아 팔뚝만한 수백, 수천마리의 잉어가 떼를 지어 강을 거슬러 힘차게 오르고 있다. 잉어들은 야트막한 강에서는 배를 바닥에 끌며 몸부림쳐 물보라를 일으키며 상류로 힘겹게 올라가는데 낚시를 금지하고, 수질이 개선되면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던 잉어 떼가 돌아왔다”고 썼다. 그리고 친구 말로는 경기도 안양천에도 잉어들이 앞다투어 새까맣게 몰려 오른다고 했는데 요샌 좀 뜸하단다. 아무튼 오랜만에 보는 멋진 구경거리다! 한강에 살던 놈들이 산란철이라 물풀이 많고, 천적(捕食者)이 적은 상류로 한데 모여드는(swarming) 것이렷다!

4~5월경에 그렇게 상류로 세차게 올라간 잉어들은 아침결에 알을 물풀줄기나 잎사귀에  달라 붙이자마자 수컷들이 정자를 뿌려 수정시킨다. 아무튼 끈질긴 노력 끝에 강이 한참 맑아져서 물고기들이 마구 설칠 수 있게 돼 참 좋다! 머잖아 감자 꽃 필 무렵이면 또 한 번 피라미들이 떼거리로 몰려 물길 따라 세차게 溯江할 것이다.

아뿔싸! 이놈들이 천년만년을 어우렁더우렁 무람없이 함께 살아와 모습(樣態)이 그렇게도 흡사해 보이는 것일까. 부부가 닮는 것도 오래오래 함께 지낸 탓이리라. 사실 잉어와 붕어는 겉치레가 닮아서 언뜻 보아 보통사람은 구별 못한다. 사실 내 눈에도 붕어(crucian carp)가 잉어(common carp)요, 잉어가 붕어로다. 어린아이들 눈에는 ‘물에 살면 다 물고기’로 보이듯 말이지.

그러나 서로 생김새가 흡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기에 國名과 學名(scientific name)이 다르다. 잉어(Cyprinus carpio)와 붕어(Carassius auratus)는 학명에서 보듯이 다른 屬(genus)에 딴 種(species)이다. 한 마디로 둘이 겉모양새는 빼닮았으나 속내는 영판 다른 피를 가졌다.

잉어와 붕어는 지붕기왓장 모양인 옆줄(側線)비늘 수가 다르니 잉어는 35~38개고, 붕어는 29~31개다. 또 잉어는 아래위 턱에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입수염(barbel)이 나지만 붕어는 숫제 없으며, 위턱수염이 아래턱 수염보다 짧다. 그리고 잉어는 몸집이 길쭉한 편에 비늘이 희뿌옇게 번쩍인다면 붕어는 작달막하고 통통하면서 비늘색이 흐린 편이다.

잉어는 잉엇과의 민물고기(단물고기, 淡水魚)로 헌걸찬 놈은 체장이 보통 50~120㎝다. 강의 중하류에 물살이 약한 소나 호수, 저수지에도 산다. 몸은 좌우에서 눌려져 납작한(側偏) 편이고, 통상 몸빛은 황갈색이며, 뱃바닥은 은백색이지만 환경에 따라 체색이 갖가지다. 머리가 원뿔형에 주둥이는 둥글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짧다.

잉어는 동남아시아 원산으로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남극을 제외하고 다 있으며 동물 중에서 민물고기가 가장 넓게 분포한다. 또 낚시고기로 인기지만 미국·호주·뉴질랜드에서는 해로운 고기로 취급한다. 먹이 찾느라 개흙바닥을 들쑤셔 파내는 습성이 있어 환경을 어지럽히고, 가는 곳마다 꺼드럭거리며 드세게 분탕질해 다른 녀석들을 못살게 굴기에 ‘세계 100대 말썽꾸러기’유입종(침입종, invasive species)으로 취급한다.

잉어는 부화 직후에는 동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지만 크면서 식성 좋은 잡식성으로 변하면서 다슬기·새우·잔물고기·물고기알·수서곤충·藻類·물풀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 겨울철 수온이 낮을 때는 깊은 강바닥으로 내려가 겨울나기(冬眠)를 한다.

일본에서는 錦鯉(koi)라 불리는 비단잉어(fancy carp)를 개발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야생잉어의 돌연변이종 중에서 빛깔·무늬·광택 등이 남다른 형질을 가진 놈을 골라 키운 관상용 품종으로 수많은 종류가 있고, 우리나라도 늦게나마 품종개량에 힘써 퍽 많이 수출하고 있다한다. 잉어에 ‘비단잉어’가 있다면 붕어엔 ‘금붕어’가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자연잉어를 인위적으로 개량한 ‘독일잉어’(일명 ‘이스라엘잉어’)는 등지느러미 바로 아랫부분에만 큰 비늘이 있으나 나머지는 비늘이 없고, 살갗껍질이 질기기 때문에 가죽잉어(leather carp)라 하는데 香魚가 바로 그놈이다.

잉어와 붕어는 共棲(cohabitation)한다. 때문에 흔히 이들 잉어와 붕어 사이에서 種間雜種(interspecific hybrid)이 생겨나니 ‘붕잉어·잉붕어’로 채수염(숱은 그리 많지 않으나 퍽 길게 드리운 수염)이 딱 2개로 양종(어미아비)을 서로 반반씩 닮는다.

잡종 제1대(F1)가 양친보다 형태·내성·생산성 따위(유전성)가 월등히 우월한 현상을 雜種强勢(heterosis)라 한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그런 효과일 터다. 그래서 우리네 다문화가정의 자손들 중에서도 여러모로 걸출한 人才들이 더러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잉어꿈은 아이 배기(受胎)를 알리는 길몽(용꿈)이라 여겼고, 잉어를 龍種(고려시대의 왕족)으로 불렀다. 뿐더러 입신출세의 관문을 登龍門이란 한다. 등용문 고사에, 중국 황하상류에 龍門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 근처에 물살이 거센 폭포가 있어 그 밑으로 잉어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용이 됐다(魚變成龍)고 한다. 아무튼 예부터 잉어는 알아줬던 물고기였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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