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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적 사유의 글쓰기를 만나고 싶다
통합적 사유의 글쓰기를 만나고 싶다
  • 남송우 부경대.국문학
  • 승인 2017.04.26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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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학문후속세대와 함께 하는 학술에세이 최종심사평_

이번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약간의 편차는 보였지만, 빼어난 에세이로서의 면모를 지닌 글은 만나지 못했다. 연구자들에게 있어, 논문이 아닌 학술에세이는 그 자체로 생소한 장르일 뿐 아니라, 학술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일상화되지 못했기에 초래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연구자들에게 있어 학술에세이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사유의 터를 풍성하게 마련하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교수신문이 시도하고 있는 ‘학문후속세대와 함께 하는 학술에세이 공모전’은 계속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제3회 공모전 작품들은 특별히 더 의미있게 읽혔다. 이번 공모의 주제가 ‘공존’이었기에 일단 이 주제를 어떻게 자기방식으로 의미화시켜낼 지에 관심을 두었다. 본심에 넘어온 응모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인문 혹은 사회과학 전공자들의 글이었다. 이공계 석사과정  대학원생의 글도 있었다. 시대적 흐름으로 본다면, 세분화된 영역들이 이제는 서로 융합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는 통섭적 사유의 글들이 많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응모작 중에서 학술 에세이로서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몇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거대한 공포에 누가 저항하는가: 수용소 사회의 바깥을 향하여」, 「공존, 변이를 존중할 줄 아는 사회」, 「기록말살형과 역사에의 욕망 :공존의 권리를 역사화하기」, 「시(詩) 인간으로 함께 살다」, 「자살생각, 부재에서 열리는 급진적 가능성의 세계」,등이었다. 

 「공존, 변이를 존중할 줄 아는 사회」는 공존을 표준화와 변이의 가능성의 관점에서 사유한 글이다. 표준화의 중요성도 수용하면서, 변이의 필요성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분석한 점이 살만했다. 또한 공학도로서 이 정도의 인문·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변이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탐색이 부족한 점이 아쉬었다. 

 「기록말살형과 역사에의 욕망 :공존의 권리를 역사화하기」는 몇 가지 이론적 틀을 도구로 삼아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존할 권리를 어떻게 역사화하느냐는 문제를 다뤘다. 역사의 독점과 역사에의 욕망의 관점에서 공존의 문제를 살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었다. 그리고 존재의 역사성과 역사에의 욕망에 의한 공간 생성의 종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욕적이고 개성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무거운 주제를 풀어가는 데 활용한 하이데거, 후쿠야마, 부르디외 등의 도구적 틀들의 연관성에 대한 성찰이 다소 떨어졌다. 또한 ‘역사의 종언’ 이후에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 오로지 권리의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시(詩) 인간으로 함께 살다」는 공간, 시와 공감, 공존재, 공재 등의 개념을 바탕으로 공존을 가로막는 장애, 이의 극복으로서 ‘안전공간’ 등에 대해 실제 공간을 산책하며 사색의 길을 자연스럽게 열고 있는 글이었다. 또한 시와 철학을 오가며 ‘존재자의 본질이 담긴 장소’이자 사건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메타-토포스를 설정하고 공감을 매개로 공재를 모색하고 있는 지향점은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시가 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지, 공존의 양상은 어떠한지, 그리고 그 공존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지를 감성과 논리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는 글 솜씨가 매우 개성적이었다. 이런 수준의 감성과 논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글쓰기가 일상화된다면, 말 그대로 학술적 에세이의 한 모형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해 본다. 그러나 감성 혹은 논리적 해석으로 기우는 부분들이 산재해 있고, 공존이란 주제를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깊은 사유의 골짜기로 이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자살생각, 부재에서 열리는 급진적 가능성의 세계」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현실 문제인 자살을 공존의 문제로 풀어내고 있는 기획과 시선은 높이 살 만 했다. “크고 작은 공동체에 속해 살아가는 개인은, 소속감이 좌절되고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느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 논자의 사유는 여러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인간론을 관통하는 사유의 열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러 논자들의 사유가 다소 느슨한 상태에서 인용되고 있어, 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특히 에세이로서의 글 분위기를 위해 끌어온 글의 시작과 마무리 부분의 설악산 등반 에피소드는 작위적이란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오히려 자살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거대한 공포에 누가 저항하는가: 수용소 사회의 바깥을 향하여」는 한국사회가 거대한 수용소사회로 전락했음을 비교적 일관되게 그리고 과장되는 제스처 없이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었다. 영화 「숨바꼭질」을 빌려 한국의 중간계급의 박탈불안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이 중간계급이 박탈불안 속에서 하청노동자를 희생제의로 삼는 한, 수용소 사회에서 모두 평등하게 박해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지라르, 벡, 푸코 등의 담론을 자기화해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우리 사회의 공존을 위협하는 다양한 층위의 사회적 국가적 구조에 대한 성찰과 진정한 의미의 공존사회를 지향하는 방향성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글로 평가됐다. 그러나 저항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부족해 보였다. 또한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시선은 나름의 정당성과 자기 논리성을 지니고 있지만, 에세이가 지녀야 할 섬세한 인문적 성찰이 겸비됐으면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 「거대한 공포에 누가 저항하는가 : 수용소 사회의 바깥을 향하여」 이 작품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하고, 「시(詩) 인간으로 함께 살다」,  「기록말살형과 역사에의 욕망 :공존의 권리를 역사화하기」, 「자살생각, 부재에서 열리는 급진적 가능성의 세계」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더욱 정진해 학술 에세이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나가는 연구자들로 성장해 가길 기대한다.  

□ 최종심사평은 최종심사위원(김진석·남송우·이도흠)의 의견을 모아 심사위원장인 남송우 교수가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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