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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편지] <교수신문> 창간 25주년을 축하합니다
[독자 편지] <교수신문> 창간 25주년을 축하합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7.04.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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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창간 25주년을 맞아, 창간부터 지금까지 25년동안 <교수신문>과 함께 울고 웃었던 독자들이 축하와 격려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이 말하는 ‘내가 본 <교수신문>의 25년’과 앞으로 ‘<교수신문>에 바라는 점’을 소개한다.

 

일흔 넘도록 無窮蒼蒼할 <교수신문> 기대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보인다. “敎授新聞은 대한민국의 언론이다.” 또 “1991 11월 전국 사립대학 교수협의회 연합회, 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교수 3단체가 전체 교수사회를 대변할 정론지 발간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수차에 걸쳐 <교수신문> 창간을 위한 논의 전개했고, 1992 4월 창간호 발행(15일). 프레스센터에서 창간기념 축하행사(30일). 정기간행물 등록 완료(발행인 이영수 교수, 편집인 유재천 교수, 주간 이동신 교수, 편집국장 최영진)”

이렇게 시작한 <교수신문>이 스무 다섯 해 동안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잘 버텨온 것이 참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신문들처럼 광도 하나도 제대로 없이 말이지.

사실 나만큼 관심을 가지고 신문구석구석 살피는 사람도 드물 터다. 2009년(4월 29일)부터 지금까지 9년째(177회) ‘생물읽기 세상읽기’를 격주로 연재 중인 탓에 그렇다. 근래 와서는 생물사진을 덧붙이니 생동감이 나서 더 좋다. 이 자리를 빌려 씨도 안 먹히는 내 글을 色讀해 주시는 독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써볼 참이다. 

아무튼 <교수신문>은 여러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잘 짜인 신문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해마다 세밑에 제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白眉가 아닌가 싶다. 시중신문마다 자랑스러운 <교수신문>이 도배를 한다. 올해는 ‘君舟民水’가 그 자리를 차지했었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吾十有五而志於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뒀고, 서른에 홀로 일어섰고, 마흔에 유혹에 빠져들지 않았고, 쉰에 천명을 알게 됐고,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하는 바를 따라 행동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머잖아 우리 <교수신문>도 ‘홀로 일어설’ 나이가 된다. 내내 일흔이 넘도록 無窮蒼蒼하길 빈다.


 

기다려지는 <교수신문> 100년, 200년 지속되길

강덕수 제주대 명예교수·경영과학

대학사회를 대변하는 <교수신문>을 창간한다고 해서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구구독을 신청했었는데, 벌써 25년이 됐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신청을 할 때 “이렇게 저렴한 구독료를 받고 <교수신문>이 얼마나 오래 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반세기를 지탱해 왔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고, 또한 운영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교수신문>은 일반 신문에서는 읽을 수 없는 교수님들의 깊은 사색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품격 높은 글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지난 한 해를 비춰 보고 새해가 나아갈 방향을 명필로 제시하는 사자성어는 일 년 내내 곱씹어 보게 합니다. 요사인 <교수신문>이 기다려집니다. 앞으로 100년, 2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길 기원하면서 창간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고 해결하는 신문

김정휘 춘천교대 명예교수·교육심리학

한국과 혈맹국가로 지칭하는 미국이 강한 것은 강대한 군사력, 외교력, 정치력, 과학 기술력, 수준 높은 인적 자원뿐만 아니라, 교육력의 중요한 구성 요건인 세계에서 다수의 명문대학과 우수한 교수진이 대학을 지키고 있다. 또,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데 동력이 된 뉴 프론티아 정신으로 표현되는 창의력과 지적인 수월성을 존중하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공존·공영을 위한 지속가능한 평화유지와 인간의 존엄성의 실현에 대한 노력과 배려, 지도력을 실천해 온 공익 정신과 덕목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한다.

25년여의 연륜이 축적된 유일한 <교수신문>도 오고오는 세월동안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고 품격의 발전을 이룩해 오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비유하자면, 기업의 창업보다 守城이 더 어렵다고 하는데, 성공의 함정(역설)에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예상되는 생존지능(survival intelligence)을 굳건히 하고 잘 관리해서 忍冬草와 같이 활력과 생명력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미국의 정치, 외교, 군사와 학계, 언론계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도전할 만한 대상이 지구상에 없다는 것이 향후의 미국의 진로 상에서 걱정거리와 위기일 수가 있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이 기회에 <교수신문>에 바라기는 대학과 교수, 대학생, 교육부, 교육수요자의 동반자이므로 이들에게서 제기되는 산적한 교육 난제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 제안을 다루기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칭찬과 격려하는 용기와 교육문제에 대한 균형적인 지성도 필요하다. 독자들은 <교수신문>이 지식인의 스승과 동반자, 우정어린 비판자이기를, 그리고 교육입국의 동반자이기를 기대한다.

광화문에 있는 한국일보 사옥 1층 라운지에 “우리는 정부 정책을 칭찬하는 지성도 발휘합니다”라는 社示를 전시한 것을 보고 ‘4部’라는 공공성을 띈 언론의 또 다른 사명감을 배웠다.
아울러 교육부에 대한 의존력을 강화시키는 현재의 교육 권력을 개선하고 교육부가 교육 정책 을 집행함에 있어서 한국교육학회와 한국교총과 같은 여론 주도층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교수 신문>이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교육부 주도의 현재와 같은 공급자 중심의 교육 정책을 개선해 수요자 중심의 교육정책간의 조화와 협치가 바람직한 교육 행정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지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관심 가져주길

김향기 전 성신여대 교수·행정법

<교수신문>의 창간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30여년전 민주화분위기 속에 대학별로 구성된 교수협의회의 전국조직인 그 연합회에서 각 대학 교수협의회의 소식을 전하는 정도의 소식지가 있었으나 이를 대신해 모름지기 전체 교수사회를 대변할 정론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러한 분위기속에 당시 전국사립대학 교수협의회 연합회 회장이었던 현재 <교수신문> 발행인인 이영수 교수와 회장단이 이에 적극 공감하고 국립대학 교수협의회 연합회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의 공동참여 속에 1992년 4월 <교수신문>의 창간을 보게 됐다. 그 때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수신문>이 재정확보 등 여러 어려움으로 얼마나 갈지 걱정이었는데 그러한 의문을 털어내고 성장을 거듭해 이제 창간 25주년을 맞는다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창간초기에는 <교수신문>의 발간·배부가 각 대학별 평교수들과 교수협의회의 자발적 도움에 의존한 바도 있었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춰 왔다. <교수신문>은 대학사회의 소식과 학술정보의 제공 및 대학문화의 창달에 많은 역할을 해 왔다고 보지만, 이에 못지않게 대학의 민주화와 교권확보에도 크게 기여를 해왔다. 학내문제로 갈등을 겪는 대학과 교권침해로 어려움에 처한 교수들에게도 큰 힘이 돼줬으며, 이로 인해 <교수신문>은 다른 쪽으로부터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마다 선정하는 사자성어는 대학사회를 넘어 우리의 일반사회에 촌철살인의 각성을 줬다. <교수신문>은 최고지성의 정론지로서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위 있는 언론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사회 일각의 부조리와 비리와 위선과 기만의 왜곡된 현실을 외면하고 비판·견제의 역할 대신에 기득권에 유착 내지 안주하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작금의 우리사회의 기성 언론에 대한 자극제로서 <교수신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교수신문>의 창간 25주년을 축하하며, 이제 <교수신문>이 교수사회라는 틀 속에 머물기 보다는 최고의 지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의 전반에 걸쳐 좀더 관심을 가질 것을 기대해 본다.


 

나의 교수 여정과 함께 한 <교수신문>

이봉지 배재대·연극영화학과

<교수신문>의 창간 25주년은 나 자신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대학교수로 처음 임용된 이듬해부터 <교수신문> 창간 준비가 시작됐고 그 다음해에 첫 호가 나온 만큼, <교수신문>의 역사는 나의 교수 생활의 여정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교수신문>은 내게 한국 대학 사회의 전체적 그림을 보여줬다. 풋내기 교수 시절부터 나는 <교수신문> 지면에서 여러 가지 교수법을 배우고, 대학 사회의 여러 이슈, 교육 정책 등을 알게 됐다. 또한 북 섹션과 특별기획 등을 통해 내 전공분야 외의 다른 학문을 엿볼 수 있었다. <교수신문>의 서평이나 신간 소개에 실리는 책들은 일반 신문에 소개되는 책들에 비해 보다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책들이 많다. 따라서 <교수신문>이 없었더라면 나는 비전공자는 알기 어려운,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많은 책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연구실에서 묵묵히 한 분야를 파는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의 결실인 이 책들을 앞에 놓고 나는 그 저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연구재단 심사에 갔다가 그런 저자 중의 한 명을 만나서 매우 반가웠던 적도 있다. 이 역시 <교수신문>이 내게 준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교수신문>이 창간된 1992년 4월을 생각해본다. 당시 교수생활을 막 시작한 나는 정력과 열정에 넘쳐있었다.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 나는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됐고, 아직 쓰지 못한 논문과 책 생각에 한숨짓고 있다. 하지만 <교수신문>은 나와는 반대로 점점 더 원기왕성해지는 것 같다. 외적으로는 온라인 신문이 생겨 독자층이 한결 넓어졌고, 내적으로는 여러 가지 신선한 기획 등으로 내용이 더 탄탄해지고 있으며, 나는 여전히 교수 신문을 통해 대학 내외의 소식들을 얻고,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교수신문>에 더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지금처럼 계속해서 우리 곁에 있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폴리페서’ 아닌 참된 교수 이야기 담아냈으면…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중국현대사

대학에 재직하고 있으면서 10년, 퇴직 후 10년, 20년 이상의 세월동안 한국 지식사회의 최전선에서 활발하게 다원적 가치를 모색하고 있는 대학사회의 정론지 <교수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벌써 창간 25주년이라고 하니 마음 가득히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四半世紀의 세월동안 이 신문을 만드는 이들의 노력으로 참으로 큰 발전을 했다. <교수신문> 이외에도 교수잡으로 교수임용 관련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획 출판으로 우수한 <교수신문>의 책들을 엮어내고 있다. 그리고 고교 진로·진학 정보지 <대나무>는 ‘대학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고등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에 대한 개념과 결정을 돕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대학 언론 기자학교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다.

일주일에 한번씩 <교수신문>을 펼치면 한국 지성사회의 쟁점과 동향, 교수와 대학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언제나 향기로운 지성의 내음이 가득해 기분 좋았다. 사실 요즘 대학이 많이 어렵고 교수들도 전혀 편안하지가 않다. 교육부는 억지 같은 정책으로 돈을 미끼로 대학을 휘몰아가고 있어서 학교는 취업이라는 관점에서 학생 위주로 정책을 펴나가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특히 인문학 교수들을 홀대하고 있다.

<교수신문>의 창간 정신을 보면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민주화, 학술 정보 제공과 대학 문화 창달 그리고 교권 옹호와 전문적 권위의 향상 등을 명기하고 있다. 이 창간 정신에 걸맞게 <교수신문>은 앞으로도 계속 교수의 권익과 학문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여론을 주도해 주고 앞장 서 주면 감사하겠다.

아울러 ‘폴리페서’가 아닌 참된 모습의 진정성 있는 교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실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면서도 임용되지 못하고 있는 많은 학문후속세대를 위해서도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하는 마음이다. 충심으로 <교수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다!


 

대중과의 거리를 더 좁혔으면…

임명진 전북대·국어국문학과

<교수신문>이 창간 25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에 “아 벌써 세월은 그렇게나 빠른가!”라는 탄식에 이어 이런저런 상념들이 뒤따른다. 우선 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했다니 “나도 어지간하네”라는 반성, 지금까지의 내 교수 편력 28년이 이 신문 이력 25년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작지만 묘한 동질감, 그리고 여태껏 나의 교수 생활에 <교수신문>이 끼친 영향이 대수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등등.

<교수신문>은 창간 이후 편집의 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은 것 같다. 초창기 이 신문의 내용을 세세히 기억할 수는 없어도, 학술동향·신간도서 소개, 교육정책 분석, 대학관련 이슈 등이 당시에도 중요한 콘텐츠였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러하니 말이다. 나는 이십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수신문>을 손에 들면 이 중요 내용들은 거의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 그래서 이 내용들이 앞으로도 이 신문의 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 내가 지금껏 그래왔듯, 보통의 일간지보다도 더 시간을 들여 <교수신문>을 읽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일반 대중은 <교수신문>을 대학교수들의 특수지로 보는 것 같다. 그것이 틀린 것도 아니고, 그런 시각 속에서 이 신문의 正體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 <교수신문>을 가장 많이 언급할 때가 있으니 매년 연말에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될 때다. 경향 각지의 언론들이 이 사자성어를 앞 다투어 보도를 하는데, 나는 이 신문의 애독자로서 “아, 이때서야 이 신문이 일반 대중과 교통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사자성어가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말들로 채워지면서, <교수신문>이 ‘꼰대’ 지식인들만의 ‘구별 짓기’에 앞장서는 게 아닌가 하는 달갑지 않은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 조금은 안타깝다. 원컨대, 쉽지는 않을지라도, 앞으로 일반 대중과의 거리를 한 치만 더 좁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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