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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만한 것부터 수 미터 크기까지 … '수호' 역할 했던 신장상
손톱만한 것부터 수 미터 크기까지 … '수호' 역할 했던 신장상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7.04.24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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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 52.목조금강역사상 (木彫金剛力士像)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說法을 할 때 주변에서 帝釋天, 梵天, 四天王과 八部衆, 仁王등의 무장을 한 호법신이 武力으로 佛法을 찬양하고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여러 신들을 神將이라 하며 이 신장들의 조각상을 神將像이라 한다.

여러 신장상들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불교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전통문화에 다양하게 접목돼 다양한 형태로 표출됐으며 조성된 신장상의 재질도 매우 다양해 돌, 금속, 그림, 토제, 목제 등 모든 재료를 사용했다. 용도에 따라서 신장상의 크기도 다양해 손톱만한 작은 것에서 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신장상도 제작됐다. 조선시대는 대부분 나무로 조성한 신장상이 많이 남아있고 고려시대 이전에 조성된 신장상은 돌이나 금속제로 만든 신장상이 남아있다(나무로 조성된 신장상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오랜 세월로 인한 소실로 현존하는 유물은 거의 없다). 신장상이 조성된 유물은 석탑, 탑사리기, 탱화, 작은 불감, 사찰의 문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帝釋天’은 신장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석굴암의 제석천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형상은 인간의 탐욕과 죄를 씻어주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거나 합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원래는 인도 성전에서 벼락을 신격화 시킨 강력한 신으로 모든 악마를 제압하는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면서 부처님의 설법자리에 나타나서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에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모든 신을 주재하는 가장 강력한 신으로 사천왕을 권속으로 삼고 있다(사진①).

‘梵天’은 우주의 창조신으로 부처님이 세상에 오실 때마다 가장 먼저 설법을 청해 듣고 제석천과 함께 석가삼존을 양 옆에서 모시는 불법의 수호신이다. 형상은 네 얼굴과 네 개의 손으로 오른손에는 연꽃과 보주를 들고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사진②).

‘仁王’은 갏剛곋士라고도하며 상체를 벗은 모습에 근육질로 주먹을 쥐거나 방망이를 든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신들처럼 고대의 인도 신화에서 유래했으며 불교에 수용되면서 사찰의 인왕문, 명부전이나 탑의 문비 양쪽에 배치돼 문을 지키거나 탑과 사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문의 오른쪽에는 나라연 금강역사이고 왼쪽에는 밀적 금강역사다. 密迹金剛力士는 부처님의 곁에서 모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손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강으로 만들어진 무기인 금강저를 꽉쥐고 있다(사진③).

‘四天王’은 4방4주의 四天國을 다스리는 왕들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며 持國天(東), 廣目天(西), 增長天(南), 多聞天(겗)이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모습으로 칼이나 창, 탑, 활, 도끼 등을 들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木造四天王像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중종10년(1515년)에 제작된 전남 보림사 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이다(사진④). 남북국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경북 감은사터 서삼층탑에서 발견된 금동사리외함(보물 제366호)에 조각된 사천왕상이다(사진⑤).

‘八部衆’은 天, 龍, 夜叉, 아수라(阿修羅), 건달바(乾達婆), 긴나라(緊那羅), 금시조(迦樓羅), 마후라가(摩喉羅伽)를 말한다. 이 팔부중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불교에 수용돼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갑옷을 입고 武裝을 한 도상으로 정형화되지만 持物이나 자세는 통일되지 않고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는 불타팔부중이 주로 형상화돼 불교를 수호하고 부처님을 지키는 신장으로 남북국 신라시대는 석탑기단부에 세련된 조각으로 많이 남아있다(사진⑥).

(사진⑦)은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목조신장상으로 인왕에 해당하는 금강역사상이다. 곱슬머리에 상투를 틀고 지켜 올라간 눈썹아래 부릅뜬 눈의 눈동자는 각기 주시하는 방향이 다르다. 찡그린 양미간과 매부리코밑의 수염과 턱수염도 힘차게 뻗어있다. 왼쪽 귀 앞으로는 한줌의 머리카락을 묶어 길게 늘어트리고 붉은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있다. 굳게 다문 입은‘密迹金剛力士’로 볼 수 있으며‘훔금강역사’라고도 한다.‘ 훔’자는 범어의 끝 글자에 해당한다. 반면에 입을 벌리고 있는 금강역사는‘아금강역사’라고 하는데‘아’자는 범어의 첫 글자다. 이는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仁王像은 대부분 한 쌍으로 배치된다(사진⑧ ⑨).

금강저를 쥐고 있는 오른 손의 손목과 어깨아래 팔뚝에는 팔찌를 차고 있으며 손에 쥔 금강저의 윗부분은 유실됐다. 이 삼고저(三錮杵)의 금강저는 밀적 금강역사가 모든 악귀를 물리치는 데 사용하는 중요한 무기다. 왼손에 쥐어진 持物은 유실돼 확인할 수 없고 손목에는 팔찌를 차고 있다(사진⑩⑪).

신체의 비례가 조화로운 모습으로 허리와 왼 다리를 약간 틀은 二曲의 모습은 신라시대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 기법으로 조각가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검은색의 금강역사상을 바탕으로 옷자락과 세부표현은 金彩로 표현해 강조했다. 발바닥에는 고정시켰던 구멍이 있으며 부분적으로 떨어져나간 곳이 있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고 재질은 소나무이며 잘 조각 한 후에 두껍게 칠을 한 조선 후기의 수준 높은 목각 예술작품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성된 우리나라의 신장상들은 시대에 따라서는 독자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주로 불전이나 탑, 승탑 등의 수호상으로 조각된 것이 많다. 전 시대에 비해 불교가 쇠퇴하는 조선시대에 으르면 신장상의 조성이 급격히 제한되고 줄어들며 역할도 辟邪의 기능으로 민간신앙과 접목하게 된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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