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시대' 인간 삶과 역사의 단서 '음식'을 찾아 나서다.
'미식의 시대' 인간 삶과 역사의 단서 '음식'을 찾아 나서다.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7.04.24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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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 음식의 문화사' 연재를 시작하며_ (1)볼로냐에서 보내는 편지 혹은 채식주의자의 고백
▲ 산 페트로니오 기념성당(the Basilica di San Petronio)에서 바라본 볼로냐 풍경. 가운데 있는 것이 생명의 성모 마리아 교회 돔(the dome of Santuario di Santa Maria della Vita).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ologna

볼로냐에서 보내는 편지

볼로냐(Bologna)에 왔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베로나에서 멀지 않은 이탈리아 중북부의 도시 볼로냐. 평생 안식년 휴가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내가 이곳에 온 까닭은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귓전에 들리는 북소리, 떠날 것을 종용하는 그 울림 때문에 이탈리아에 왔다고 했다. 괴테는 따뜻한 곳에 간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고 『이탈리아 기행』에 썼다.

내가 여기에 온 건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천년 역사의 볼로냐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구를 하자고 온 건 아니다. 두어 달 짧은 기간만 머물 것이기 때문에 수학을 한다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해도 볼로냐대학의 전통과 학문의 냄새는 맡고 싶었다. 이 도시의 별명은 학문의 도시, 음식의 도시, 붉은 색의 도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음식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역사학, 인류학은 물론 언어학적 관점에서 음식 문화에 접근하고 싶었다. 이 대목에서 내가 채식주의자인 줄 아는 사람들은 피식 웃을 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60여년 내 나름대로 음식을 즐긴 사림이고, 음식 문화를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당한 음식 전문가다.

웬만치 파스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라자냐 알라 볼로네제(Lasagna alla bolognese)를 맛보았을 것이다. 볼로냐식 라구 소스와 베샤멜, 치즈가루를 라자냐 면과 함께 층층이 쌓아 만드는 이 오븐요리의 맛은 라구, 정확하게는 라구 알라 볼로녜제(rag? alla bolognese)라고 불리는 볼로냐 미트 소스가 결정짓는다. 나는 볼로냐 시내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이런 현지 음식의 냄새를 맡고 주민들의 음식 사랑을 엿볼 것이다. 그러면서 궁금해 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먹는 것에 몰두할까? 내가 풀어갈 음식 이야기는 음식에 얽힌 인간의 욕망이다. 앞으로 연재할 칼럼의 타이틀을 ‘욕망의 음식’이라고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라자냐 알라 볼로네제. 사진출처=http://www.pastapirro.it

食貪과 貪食은 어느 글자가 앞이고 뒤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두 단어의 뉘앙스는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식탐을 경계하라는 말을 쓸 때, 식탐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지나치게 먹는 것을 밝히는 일, 아무 거나 많이 먹는 일을 식탐이라 하고, 이를 죄악시한다거나 금기시하는 느낌이 든다. 한편 탐식은 많이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음식 자체를 탐한다는 느낌을 준다. 중국어에서 食貪이란 말은 貪吃(음식, 재물을 탐할 참)의 뜻으로, ‘게걸스럽게 먹다, 乞神들린 것처럼 먹다’의 뜻을 지닌다. 한편 貪食은 貪食者, 貪食症, 貪食症 患者, 貪食症病人의 예에서와 같이 쓰인다.

이처럼 남들은 관심도 없을 말놀이를 하고 있을 무렵, 정유년(2017)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아시아 인문학기행』을 펴낸 글항아리 강성민 대표를 광화문에서 만났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데다 겨울칼바람이 매서운 날이었다.
 
출판사 대표와 내가 왜 만났는가. 한 달 전쯤인가 점심 식사를 함께 하다가 내가 음식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을 던졌다. 마침 강대표도 음식문화사에 관한 책을 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음식이냐, 어떤 내용을 글로 쓰고 싶으냐는 자연스런 질문이 돌아왔다. 음식의 탄생,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채식과 육식, 단식과 탐식 등 인간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언어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닌 여행가의 입장에서 써보고 싶다는 게 나의 답변이었다. 한 번 해보자고 그가 말했다.

사실 나는 채식주의자, 그것도 vegetarian이 아닌 vegan이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묻는다. 왜 채식을 하느냐고? 영양 불균형이 생기지 않느냐? 종교 때문이냐? 고기가 몸에 안 받느냐? 더러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멸치는 먹지 않느냐, 짜장면에도 고기가 들어 있지 않느냐고 회의적으로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에게 나는 “내게는 멸치 한 마리와 고등어 한 마리가 똑 같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짜장면을 먹는 거지 고기를 먹지는 안찮아요”라고 한숨을 쉬며 해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요즘 들어서는 겸손한 척 채식의 변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식복이 없는 거지요. 세상에 맛난 음식이 무수히 많은데 그걸 마다하니 말입니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상 고기가 참 맛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세상 한편에는 여전히 굶주리다 못해 배고파 죽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또 식욕을 자극하는 별별 산해진미가 세상 곳곳에 널려 있기도 하다. 어느 면에서 맛난 음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때로 죄악이 된다. 더러는 파멸을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늘도 맛난 음식을 탐한다. 음식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 나는 그걸 파헤쳐 볼 참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광대는 입에 맞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해 단식을 한다지만, 나는 음식에 대한 인간 욕망의 근원을 더듬어 볼 생각이다.

연재를 통해 다루게 될 주제는 대략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주제인 미식과 식탐은 명나라
말기의 기녀 동소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1. 미식과 식탐
 2. 일곱 가지 죄
 3. 음식과 금기
 4. 금요일의 물고기
 5. 사랑을 부르는 음식
 6. 참을 수 없는 단맛의 유혹
 7. 커피 칸타타, 투란도트, 세헤라자드
 8. 양귀비와 여지
 9. 香妃의 체취, 클레오파트라의 香氣
10. 素食이냐 斷食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11. 靑春의 음식, 回春의 음식
12. 해적들의 음식 vs. 신들의 음식


채식주의자의 고백

채식주의자, 엄밀히 말하면 곡식주의자에 가까운 내가 음식문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에 도전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나의 글이 채식주의자로서 육식주의자 내지는 잡식주의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나는 언어학자로서 오래 전부터 음식 관련 명칭의 기원에 관심을 가져왔다. 언어 접촉에 따른 음식 관련 어휘 차용과 전파 등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서 음식의 기원과 역사, 문화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셋째, 나는 또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언어와 풍속, 습관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중국의 사서는 물론 유목민의 구전 자료, 아랍의 문헌 등 고대부터 전해진 풍부한 사료를 검토하여 음식문화의 변천사는 물론 교류사를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넷째, 나는 제법 알려진 여행가이기도 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지만, 30여 년간 문명과는 동떨어진 산간오지 척박한 환경 속의 소수민족을 찾아 그들의 언어와 생활문화를 눈과 귀로 보고 들었다. 방송가에서는 한 때 나를 오지탐험가라 불렀다. 비교적 젊었던 1990년대 중국 운남성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산간의 소수민족 거주 지역은 고생과 눈물과 미소가 뒤섞인 아름다운 여행 목적지였다.

또한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이란,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문명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자주 방문해 친근한 시선으로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 바라보았다. 지중해 연안의 고대 국가들, 흔히 마그레브(the Maghreb)로 지칭되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그리고 레반트(the Levant)라 불리는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의 중동 국가들도 열정을 갖고 다녔다.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을 대표하는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그리고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의 발칸 지역, 또 벨로루스,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우즈베키스탄을 위시해 나라이름이 ?stan으로 끝나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파미르고원 이동의 신장 위구르 자치주, 몽골은 내 역사학 박사 논문의 주제와 관련해, 그리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매혹적인 음악에 끌려 부푼 마음으로 초원과 사막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이렇듯 마음에 들거나 관심 가는 지역은 가고 또 가고, 가서 놀기도 하고 답사도 하고 그렇게 30여년을 돌아다녔다. 그러므로 세상의 맛난 음식, 별난 음식 등을 보고 때로는 맛보았다. 그러므로 여행가의 입장에서 음식과 음식문화에 관한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책상에서 보는 세상과 필드에 나가 보는 세상은 다르다. 책으로 이해하는 음식과 현지에서 목격하는 음식은 차이가 있다. 세상에는 가련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이 마련돼 있었고, 여행지에서 나는 굶지 않아도 됐다. 현지인들의 음식과 그들의 음식에 대한 태도와 예절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茶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마신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만 일 년 KBS 라디오의 ‘우리 차, 우리 멋’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차의 보급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우리 차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총 12편)에서 리포터 노릇을 하기도 하고, 각종 잡지에 차 칼럼을 기고했다.   

▲ 볼로냐 아침 산책 길에. 볼로냐는 회랑의 도시다. 따가운 봄 햇살과 갑작스런 빗줄기를 피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연재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가, 즉 식재료나 음식 자체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왜 그리고 어떻게 먹는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음식의 발상지에 대한 언급을 통해 언어의 이동과 변천은 물론 음식과 관련된 인류 역사 상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한다. 자연스레 음식과 성의 관계도 다룰 것이다. 음식 언어와 성 관련 말들이 관련돼 있다는 것도 놓치지 않고 보일 것이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말을 하며, 또 성을 추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통이다. 소통으로서의 음식, 말, 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우리의 식생활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구 곳곳에서 먹을 것이 부족해 영양실조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음식은 인간의 사치 품목이 돼가고 있고, 사람들은 탐식본능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즐겨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제일 먼저 인간의 미식 나아가 탐식 욕구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특히 지배계급은 무병장수나 불로불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여자들은 미용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다. 필러주사가 없던 때, 감기약이 출현하기 전 사람들은 먹거리를 통해 질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유지하며,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희 환희에서 불사불로의 명약까지

사랑의 비약, 성의 환희를 보장할 명약으로 음식을 섭취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소식이나 단식을 통해 반대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 속에서 불화를 화친으로 바꾸려는 노력에는 음식이 주요한 수단이 됐다. 갈등 때문에 독특한 음식이 탄생하고 이색적인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만한전석, 만두, 크롸쌍, 불스 블러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인간은 종교를 떠나 살 수 없다. 어떤 종교고 숭배 대상이 있다. 숭배 대상으로서의 신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섭취한다. 종교에 따라 신에게 바쳐지는 신들의 음식이 다르다. 지금은 평등한 세상이나(최소한 법적으로),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계층에 따라 먹고 마시는 게 달랐다. 음식의 질뿐만이 아니라 종류, 양, 먹는 방법, 도구 등이 현격하게 달랐다. 그렇다고 하류층은 음식문화rk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의 경우, 동양의 기녀들은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음식을 즐겼다. 이런 일이 가능한 까닭을 살펴보는 일은 몹시 흥미롭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엿보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불한당들의 호사스런 삶도 다루려고 한다. 도둑들의 포식은 어쩐지 화가 나는 일이다. 사라센 해적이든 아랍 해적이든, 왜구든 남의 물건을 약탈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도둑이 산해진미를 즐긴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의 현실은 그렇다. 음식을 즐기는 건 강자의 특권이었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왕족과 귀족, 성직자, 기사들도 당연히 강자에 속한다. 이런 反정의의 음식사를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술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음식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다. 인간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 칼럼은 음식의 언어학, 음식의 역사학, 음식의 문화사, 음식의 인문학이 될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되 천박하지 않게, 다소 학술적이되 현학적이지 않은 글쓰기를 시도할 것이다. 나는 내 글이 음식에 대한 교양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내 글을 읽음으로서 독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즐겁고 유익한 소통을 할 수 있기길 희망한다. 진정한 소통은 공감으로 완성된다. 바야흐로 미식의 시대다. - 2017년 4월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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