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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무단복제 '법의 사각지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무단복제 '법의 사각지대'
  • 교수신문
  • 승인 2017.04.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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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_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 ③ 디지털복제(1)

빠르게 전환한 디지털환경 속에서 ‘학술출판’의 자리가 계속 위협받고 있다. 학술전문서는 시장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불법복제, 북스캔, 베끼기 출판, 출판사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 시스템의 부재, 정부의 정책적 방임 등이 손꼽히는 장애물이다. 학술 전문서와 대학교재 등 질 높은 출판 콘텐츠를 확보해야할 시기임에도 안팎의 장애와 싸우는 한국 학술출판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학술출판이 살아나야 지식과 문화의 지평이 두터워질 수 있다. <교수신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학술 출판이 처한 현주소,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총 10회)를 마련했다. 이번호에서는 2회에 걸쳐 ‘장애물 혹은 위협들-디지털복제’ 문제를 문제점과 대안을 짚는다.

 

 

 


 

 


흔한 일이 된 지 오래지만, 우리 대학가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횡행하는 무단복제가 심각한 지경이다. 지성과 교양의 상징이어야 할 대학에서 무단복제라는 전근대적인 악습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모순인 동시에 대학교재에만 나타나는 고질적 악순환이라는 점에서 변명거리를 찾기도 어렵다. 초·중·고교 교과용 도서(참고서 등을 포함해서)를 복제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급기야 학술출판계가 모두 나서 ‘위기상황’을 넘어 아예 ‘출판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선언을 한 적도 있었지만, 별 효험이 없는 걸 보면 앞으로도 대학가 무단복제 현상은 근절되지 않을 듯하다. 실제로 대학가에서는 복사업체를 통해 대량으로 무단복제가 성행함으로써 교재로 쓰이는 학술도서들이 잘 팔리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느 대학의 경우 수강생이 수백 명인 강좌에서 정작 교재는 단 한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뉴스가 등장한 게 얼마 전 일이다. 엄연히 ‘저작권’과 ‘출판권’이라는 권리가 존재하며, 이를 보호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이 불가피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마저도 학술출판계로서는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체별로 이뤄지는 복사기 수준의 대량복제가 아니라 개인별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디지털 복제로 인해 책이 아예 팔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곧 대량의 무단복제는 엄연히 저작권법 위반이지만 개인별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복제는 저작권법에서 ‘저작재산권의 제한 규정’으로 용인하는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 학술도서뿐인가. 요즈음 웬만한 서점에 가보면 버젓이 신간도서를 펼쳐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표지부터 본문까지 찍어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도 이 같은 풍경은 낯설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이렇게 찍은 것들을 모아 조금만 가공하면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그 내용을 알아보기에는 별 문제 없는 자기만의 전자책(e-Book)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출판계의 손실로 이어진다.

불법과 적법의 갈림길에 선 학술출판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은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이어야 한다. 여기서 창작물이란 저작자 자신의 작품으로서 남의 저작물을 베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며, 또한 수준이 높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을 정도로 최소한도의 창작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것은 “문학?학술 또는 예술에 관한 사상·감정을 말·문자·음·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하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이다. 따라서 그 표현돼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창작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저작권법에서 정하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 특히 “학술의 범위에 속하는 저작물의 경우 그 학술적인 내용은 만인에게 공통되는 것이고 누구에 대하여도 자유로운 이용이 허용돼야 하는 것으로서 그 저작권의 보호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있지 학술적인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시는 저작권법에 기초한 학술출판물의 저작물성을 판단함에 있어 매우 유용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곧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①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어야 하며, ② 창작성이 있어야 하며, ③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이어야 하는 등 최소한 세 가지 성립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위논문 또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 들은 이러한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 것이 대부분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학술저작물은 각종 학회가 주축이 돼 발간하는 전문 학술지에 실리는 학술논문뿐만 아니라 각종 기관 및 단체의 의뢰로 만들어지는 연구용역보고서, 대학 및 대학원 재학생들이 작성하는 과제용 논문(리포트), 학사·석사·박사 등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논문, 그리고 출판사에서 학술 관련 저작물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른바 학술도서 등의 형식으로 공표된다.
 
한편,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복제란 “인쇄·사진촬영·복사·녹음·녹화 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하며,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아날로그 복제뿐만 아니라 디지털 복제까지 포함하는 매우 큰 개념이다. 따라서 저작자에게 주어지는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러한 저작재산권자로부터 복제권 및 배포권 중 일부를 위임받아 발행의 방법으로 저작물을 출판하는 학술도서 출판권자에게는 또한 당연히 ‘출판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대학가에서 이뤄진 무단복제는 대개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한 간이제본 형식의 아날로그 복제였다. 적은 부수로 복제하는 경우 책값보다 비싼 경비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의기투합(?)한 여러 명이 모인 결과였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복제권 및 출판권을 침해한 결과이기에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엄격한 법 적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복제 기술이 발달하면서 저작권법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게 됐다. 개인별 디지털 복제는 복제권 침해가 아닌 저작재산권의 제한 규정 중 하나인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 학술출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써먹은 예시를 다시 들춰본다. 중·고교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교실 풍경 하나가 그것이다. 선생님은 짤따랗지만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사랑의 매를 휘두르며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을 혼내곤 했다. 그때마다 터져나왔던 선생님의 일갈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이 총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서 적을 공격하고 자기 목숨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서의 ‘총’과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지참해야 할 ‘교과서’를 동일시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

그렇다면 무단복제한 복사본 교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군대로 치면 아마도 총은 총이되 플라스틱으로 그럴 듯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총을 나눠주었다고나 할까. 아무리 방아쇠를 당긴들 적을 물리치기는커녕 자기 목숨도 지켜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에서 장난감 총은 실제 전쟁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장난감 총조차도 갖고 놀지 않는다. 하굣길 뒷산에 모여 벌이던 전쟁놀이는 이제 각자의 스마트폰이나 PC방에 놓인 컴퓨터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디지털 게임으로 발전한 전쟁놀이는 실제 전장에서도 응용될 정도로 정교해졌고, 이른바 VR(가상현실)이 대세를 이루는가 싶더니 이젠 AR(증강현실)이라는 기술까지 가세해서 실제 현실과 가상세계를 아예 하나로 섞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놀이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생이 된 지금, 그들은 더 이상 책의 존재를 아름다운 전통의 산물이 아닌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로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서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이메일을 받아도 종이에 출력해야 읽기 편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직접 쓰고 읽는 일보다는 입력하고 검색하는 일에 더 능숙한 디지털 유목민들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청소년들은 종이책을 복사하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디지털화하는 것이 더 편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공교롭게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품어야 할 고민은 “언제까지 법을 고쳐나가야 하는가? 법을 고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디지털 복제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출판평론가

필자는 경희대에서 「뉴미디어의 기술진전과 저작권 보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출판학회상(저술·연구부문) 등을 수상했으며, 『출판 저작권』, 『동양 저작권 사상의 문화사적 배경 비교연구』, 『서평의 이론과 실제』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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