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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을 강제하는 괴테적인 요청”
“근대성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을 강제하는 괴테적인 요청”
  • 김건우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 승인 2017.04.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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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은 지금_ 독일, 하르트무트 로자: 사회학 이론의 새로운 성좌
▲ ‘공명’을 세계관계의 사회학으로 확장하고 있는 하르트무트 로자.사진출처=http://www.werkstatt-zukunft.org

오늘날 어떤 사회학자가 ‘소외’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을 한다면, 그 작업은 고루한 사회학적인 주제를 단순히 반복하는 에피고넨의 작업이라고 외면당하기 쉽다. 소외에 대한 작업이 사회학 전체를 근거짓는 북극성, 적어도 가장 중요한 별자리들 중 하나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김현이 “몰락해가는 계층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답다”고 표현적 가치를 부여했다면, 베버는 「객관성 논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러나 언젠가 색은 변한다. 반성되지 않은 채 적용된 관점들의 의의가 불확실해지고, 황혼 속에서 길을 잃는다. 문화의 위대한 문제들의 빛이 계속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학문 역시 자신의 위치와 개념장치를 전환할 준비를 하며, 사고의 높은 자리에서 사건진행의 흐름을 주시할 준비를 한다. 학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동에 의미와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성좌를 따라 나선다”라고 웅변한 바 있다. 벤야민 역시 개념적인 수단을 통해서 이념들을 질서지우고, 이념들을 현상들로 흩뿌리는 하나의 구성으로서 ‘성좌’를 말한 바 있지만, 그에게 성좌는 거대한 전체에의 충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의 연관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지나간 것과 지금이 하나의 성좌로 모여서 번개처럼 빛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거인들의 시대가 지나간 오늘이야말로 이론적인 작업이 에피고넨의 작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대일지 모른다. 이렇게 시대의 핵심이라는 새로운 문제들, 이념들과 그 사회의 구성에 대한 사회학적인 인식을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의미와 방향을 가리키면서, 지나간 것과 지금이 번개처럼 빛나는 하나의 성좌를 찾아야 하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1965~)는 이런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연구자들 중 한 명이다. 사회학적으로 얼마나 생산적인가라는 물음이 근대성에 대한 고유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사적인 구조와 사회의 여러 차원들의 구조들을 구별하고 그 위상을 이론적으로 하나의 성좌로 묶어낼 수 있는가 여부에 있다면, 로자는 생산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르트무트 로자와 찰스 테일러

그는 1996년 찰스 테일러의 정치철학에 대한 논문 「동일성과 문화적 실천」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사회적인 가속화: 근대 시간구조의 변화」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한다. 후자의 논문은 주어캄프에서 『가속화: 근대 시간구조의 변화』(2005)로 출간되면서, 사회학자로서 견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 두 개의 학위 논문은 이후 그의 생산적인 저술활동과 연구관심의 확장을 고려하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후기 근대사회에서 인간의 사회적 경험들’의 문제에 주목한 『가속화와 소외』(이 책은 2010년 영어판 『소외와 가속화(Alienation and Acceleration: Towards a Critical Theory of Late-Modern Temporality)』란 제목으로 출간됐으며, 2013년 주어캄프에서 독역본을 내놨다)에서 그는 여전히 인간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좋은 삶(gutes Leben)’ 이라는 물음, 왜 우리는 좋은 삶을 갖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근대인이라고 하는 양가성의 문제와 그 간극의 긴장이라는 테일러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로자는 규범적인 이론의 근대성이라는 초석을 확인한다. 테일러에 대한 작업에서 로자는 주체와 주체의 행위가 ‘가치들의 체계’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를 구성할 수 있고 그런 자기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덕적 상대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추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현실화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목적들이라는 문제를 테일러가 세속화된 근대라는 조건에서 제기하는 방식, 또한 이 목적들을 현실화하는 여러 재화들을 구별하고 문제시하는 테일러의 규범적인 문제의식을 추후 자신의 사회학이론을 정립하는데 중요한 기반으로 삼게 된다. 더구나 그의 박사논문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테일러의 인류학이자 정치철학의 핵심테제가 동일성을 통한 규범성이라고 할 때, 비판의 규범성을 담지할 수 있는 이론적인 확장을 테일러의 정치철학에서 확보한다고 할 수 있다. 로자는 ‘좋은 삶’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질문과 인간이자 근대인이라는 양가성에 주목한 루소의 문제의식을 견지하면서도 근대성의 구조변동을 문제삼는 사회학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정치철학과 사회학의 비판적인 종합을 시도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그는 비판이론의 현재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2008년, ‘불확실한 시대’라는 주제로 예나에서 열린 독일사회학대회에서 그는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비판적인 사회이론의 개괄」을 발표한다. 그는 새로운 현상을 새로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식화하고 특정화할 수 있는 시대진단적인 문제설정은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춰야할 뿐 아니라, 경험적이고, 규범적인 척도와 결합된 비판이론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중요한 사회학적이고 정치철학적인 테마로 ‘정의’의 문제를 들고 있다. 그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제 ‘소외’라는 대안적인 개념은 배후로, 정의가 사회에 대한 규범적인 비판의 척도로 정면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2000년대 이후 낸시 프레이져와 악셀 호네트의 작업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경향을 규범적인 정치철학과 사회적 제도와 실천들의 고유한 논리와 그에 내재적인 합리성의 문제를 파악하는 사회학적인 사회이론의 결합이 ‘정의이론’으로 종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그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공명(Resonanz)’ 이 그의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됐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이론구성의 성좌 중 ‘공명’이 북극성이 된 것이다. 이전에 출간된 그의 가장 중요한 사회학 저서는 2005년 출간된 『가속화: 근대시간구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537쪽의 이 책의 항목색인에는 ‘공명’이 없다. 이런 점에서 2016년 ‘세계관계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붙인 814쪽의 『공명』을 출간한 것은 그가 ‘자신의 노동에 의미와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성좌’를 새롭게 따라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공명』을 ‘사회학, 근대, 좋은 삶’에 대한 사회학적인 규정에서 출발하는데, 테일러에 대한 작업에서 중요했던 ‘좋은 삶’의 문제가 근대와 사회학이라는 테마와 연관되면서 ‘지나간 것과 지금이 하나의 성좌로 모여서 번개처럼 빛나는’ 이론적 구성의 연관을 확장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공명―세계관계의 사회학

『가속화와 소외』와 더불어, 2012년 예나에서의 한 강연 「소외 대신 공명」에서 그는 근대 사회는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도 다이나믹하게 안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구조적인 차원에서 요구된다고 본다. 좋은 삶의 부정으로서 소외경험의 방지와 축소를 ‘공명경험’과 대비하면서, 공명경험은 선택지들의 증가를 포함한 ‘지평들의 증가(Steigerungshorizonten)’ 라는 척도와 관련된 지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구조적인 강제로서 가속화는 증가강제를 수반하고, 이는 주체의 삶의 양식, 삶의 지향, 삶의 경험에 다차원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지평들의 증가는 규범적인 지향의 성격을 갖는다고 본다. ‘좋은 삶의 이념’은 삶을 질책하고 지시하는데, 이는 주체와 사회적 세계와의 관계, 주체와 사물들의 세계와의 관계, 주체와 자연 및 노동과의 관계를 산출하는 공명축들을 따라 형성된 다층적인 공명경험으로 삶을 풍부하게 하는 문제가 결정적으로 된 근대적인 문제가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규범적인 지평들의 증가를 억제하는 것, 공명경험을 빈곤하게 하는 것, 즉 그가 말하는 의미에서 소외의 문제다.
 
『가속화』에서 역사가 시간화된 근대사회의 시간구조의 변동에 주목했다면, 『공명』에서는 그와 같은 근대사회의 역동성과 그 속에서 좋은 삶을 어떻게 풍부하게 할 수 있는지, 반대로 어떻게 좋은 삶이 축소되는가의 문제를 규범적인 사회학이론, 현재에 대한 비판이론으로 종합하려는 시도를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좋은 삶, 소외, 가속화, 공명경험이 전개되는 지평으로서 ‘세계’ 개념이 중요해진다. 소외에 대한 문제 역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주체가 세계를 ‘자기 것으로 하는(anzuverwandeln)’ 능력의 문제로 이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부에서 ‘인간적인 세계관계들의 기본요소들’, 2부에서 ‘공명영역들과 공명축들’, 3부에서는 ‘세계의 침묵에 대한 불안’을 다룬 것에서 그의 공명 개념이 세계개념을 중심으로 구축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공명파국의 역사’와 ‘증가하는 공명감수성의 역사’로서 역설적인 근대의 공명경험과 구조적 강제를 다루는 3장을 지나면, 마지막 장에서 ‘세계관계의 비판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로자는 ‘세계관계의 사회학’으로서 공명을 새로운 사회학적인 성좌로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구성에서 중요한 세계 개념은 현상학적인, 즉 중립적이고 일반화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지평들의 증가 속에서 공명경험의 증가를 수반하는 규범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적어도 로자에게 세계는 공명파국이라는 근대의 역사 속에서 공명경험의 빈곤화를 억제하려는 규범적인 지향을 내포하는 개념임에 틀림없다.

2015년 1월 1일 타계한 울리히 벡과 로자는 2014년 「부차적 결과의 심화 : 세계주의화, 가속화 그리고 지구적 위험증가」라는 논문을 함께 썼다. 이 논문은 부르디외, 푸코, 베버, 루만의 이론과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및 마르크스주의 패러다임으로는 사회 및 정치질서의 구조적인 전환과 그 사회역사적인 차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쓰고 있다. 벡의 유언처럼 되어 버린 이 주장은 한편으로는 존중해야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16년 『공명』이라는 새로운 사회학적인 성좌를 제출한 로자에게는 근대 사회라는 세계 안에서 공명될 수 있어야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로자는 “모든 활동에서 높이, 깊이 그리고 복잡성을 끝까지 해보는 것이 근대인의 주요한 추구다”라고 하면서 이를 괴테의 작업과 연관짓고 있다. 이런 추구는 근대의 학문이자 근대성에 대한 학문으로서 사회학을 강제하는 괴테적인 요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건우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필자는  칼 슈미트와 니클라스 루만의 국가이론과 공법이론을 비교, 종합하는 작업을 통해 민주주의와 국가의 내적인 연관을 사회학적으로 조명하는 국가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루만의 저작 『근대의 관찰들』과 『체계에서의 권력』 등을 번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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