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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은 것만 보는 극단의 시대
말하고 싶은 것만 보는 극단의 시대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7.04.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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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대학 시절 필자는 어쩌다 고향에 가면 대구 시내 번화가를 곧잘 찾곤 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고등학교 때의 단짝 친구를 만나고자 시내 번화가에 나가면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아 좋았다. 그 청년 시절 언제쯤 군 복무하던 때 첫 휴가를 맞아 친구와 약속시간을 기다리던 대백 앞길에는 어쩌면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눈에 들어오던지. 그 날 나에게는 머리를 말끔하게 민 군인들이 그렇게 많고 그 많은 군인들이 모두 휴가를 나온 듯이 보이던 그 시간이 무척 당혹스럽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실상으로는 수많은 민간인 사이사이에 어쩌다 한두 명 휴가 나온 병사들이 오가던 것에 불과했을 텐데 막 첫 휴가 나와 번잡한 시내가 어색했을 청년의 눈에는 길거리에 그 많은 민간 복장의 일반인보다 어쩌다 한두 명의 휴가 병사들만 유독 눈에 속속 들어와 박혔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장년으로 접어든 요즈음도 가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오늘 아침에는 비 그친 맑은 하늘에 흐드러진 벚꽃이 간밤의 세찬 바람을 맞아 눈 내리듯 멋진 모습을 보인다. 아침 내내 내 눈에는 온통 벚꽃만 가득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위를 돌아보면 며칠 전부터 만개해 있던 개나리와 진달래도 보이고 마른 풀밭에는 삐죽이 고개 내민 들풀들과 이름 없는 꽃들이 지천이다. 하지만 오직 벚꽃만 내 눈에 가득한 오늘 아침에 문득 휴가 나와 어리벙벙한 모습으로 시내 번화가에 서 있던 청년 시절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언행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온전히 바라보지 않고 때로는 보이는 것만 보고 가끔은 말하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바야흐로 제대로 된 봄이다. 지난 겨울 온통 시끄럽던 정국이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일단락되는가 하더니 연이어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이런저런 말들이 끊이지 않는다. 끝도 없는 정쟁과 복잡다단한 사회적 난제를 일거에 해결할 자천타천의 인재가 넘쳐난다.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 국가의 명운을 개척하겠다는 포부가 대단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범상치 않은 인재가 넘쳐나는데다 세상의 모든 일을 두고 백가쟁명 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누구라도 자신을 상대보다 앞줄에 위치시키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선거가 목전에 다가서니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는 마음 급한 정치인들이 연일 거친 말들을 쏟아낸다. 대체로 스스로를 높이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대중의 이목을 끌법한 일을 벌이거나 경쟁자와는 다른 두드러진 말을 해야 하는 조급함이 앞선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은데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벌이는 일이 이런 지경에 이르러 분열과 대립의 극단적 언사가 온 사회에 난무하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너나없이 상황을 과감하게 단순화시켜 말하고 대립과 분열의 언사를 거듭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극단적 사안을 의도적으로 찾아내고 자극적인 강한 표현을 즐겨하면서 타인에게 상처주고 해 끼치려는 의도가 뚜렷하고 분명하다. 때로는 검증되지 않은 허위라 할지라도 일단 내지르고 보는 일도 적지 않으니 사회 지도층의 언사치고는 심하게 무책임한 일이다. 이 지경의 상황에서는 객관적 사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하고 싶은 것만 보는 일이 자연스럽게 된다. 이를 보는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그런 일들을 치졸한 소인배들의 분란쯤으로 치부하고 차라리 고개 돌려 외면함이 속 편하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진정으로 기여할만한 자질을 갖춘 인재 중에는 이런 극단의 시대에 맞서 스스로 희생하는 일이 부질없다 생각하여 나서 말하기를 꺼려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일도 없지 않다. 선한 의지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용과 겸양의 미덕은 정치 현장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일국의 정치와 사회 발전에 헌신하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해서는 곤란하다. 일반인이 갖추지 못한 높은 덕목도 응당 갖추어야 할 것이고 필부와는 다른 넓은 시야도 마땅히 가져야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절에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열린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통합의 언어를 말하는 큰 정치 지도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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