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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기업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
대학의 기업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
  •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 승인 2017.04.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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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때는 2045년,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유엔이 IMF 이후 쭉 자살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정부에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합당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단군 이래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며 출세가도를 달려온 펀드매니저 출신, 당연히 자살의 사회적 책임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죽고 싶어 죽는데 그것이 왜 사회적 책임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자 결국 교육부장관을 불러 대학의 사회학과와 연결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아뿔싸, 전국의 사회학과는 2020년 서울대를 마지막으로 모두 폐지되고 없었다. 그럼 인문학이라도? 하지만 인문학 관련 학과는 그보다 먼저 구조조정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에 경제부총리가 부가설명을 한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입만 열면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떠들어대어 기업에 해만 끼치고 취업률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그런 학문들이 대학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 우화는 기업 마인드로 돌아선 한국 대학의 자화상을 추적한 『진격의 대학교』(오찬호 지음,문학동네, 2015) 첫머리에 나온다. 미래의 일처럼 우화는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은 ‘대학의 기업화’ 현상이 당장의 현실임을 보여준다. 지금 대학의 최우선 목표는 취업률이다. 다시 말해 민주시민과 비판적 지식인 양성보다는 대기업이 선호하는 최적의 인력을 키워내는 일이 대학의 목표가 됐다. 이를 위해 ‘인문계 출신의 9할이 논다’는 이른바 ‘인구론’에 속한 학과들은 전대미문의 개명도 개의치 않았다. 어문학과들은 언어에 상관없이 모두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로 통합되고, 철학과나 심리학과는 심리철학상담학과로 융합됐다. 철학은 대학에서 퇴출 1순위가 된 지 오래고, 인문학적 글쓰기는 자기소개서에서나 그 유용성을 입증할 뿐이다.

물론 대학교수들의 제일 중요한 사명도 더 이상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대학총장이 CEO로 변신하자 교수들의 지상목표도 업무평가와 성과향상이 됐다. 벤치마킹, 스와트(SWOT) 분석, 핵심역량과 같은 기업용어들이 캠퍼스에 난무하면서 학과뿐 아니라 학문의 존재이유도 돈과 시장을 추종하는 ‘기업가정신’에 맞게 재조정된다.

총장의 최우선 사명은 수백억씩의 발전기금을 모으는 데 있고, 그 발전기금은 자금운용이라는 이름하에 투기와 투자 사이에서 위험한 곡예를 탄다. ‘대학의 기업화’는 대학이 기업과 보조를 맞춘다거나 대학이 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 대학이 이제는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재고관리를 하고 인력수급을 유연화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지금 대학은 마치 기업인양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물론 ‘대학의 기업화’는 경기후퇴와 경제적 불안, 학령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률 증가 같은 전방위적 위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대학들의 자구책이다. 경제가 초미의 관심사인 한국사회에서 대학인들 경제성이 떨어진다면 어찌 외면당하지 않겠는가. 대학이 생존경쟁의 레드 오션에 빠진 이상 취업률에 따라 학과의 생존이 결정되고, 실적에 따라 교수의 입지가 결정되며, 지원율에 따라 대학의 합병(M&A)이 결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학생을 소비자라 부르니 교수도 어쩔 수 없이 판매자가 되어 원가도 계산하고, 수익률도 따져보고, 허위광고도 하게 된다. 대학과 기업, 학문과 비즈니스, 제자와 소비자를 점점 구별하기 어려워질 때, 그래서 대학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승자를 우대하고 약자를 내치는 데 있다. 어느 기업도 이윤을 내지 못하는 저성과자를 끌어안지 않는다. 연민은 기업의 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의 또 다른 핵심은 자유의 박탈이다. CEO나 오너의 명령이 아닌 자기 내면의 요구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기업에서는 불가능하다. 자유가 기업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사회 곳곳이 기업화돼 배려와 연민, 자유와 해방을 향한 발걸음을 포기하게 된다면 우리사회는 도대체 어떤 곳이 되겠는가? 새처럼 자유롭게 마음껏 자기 목소리를 낼 해방 공간을 적어도 대학에서조차 구할 수 없다면 오직 생계를 위한 공포심과 경쟁심만 남은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자유로울 때는 사람들이 나쁘지 않다. / 감옥이 인간을 나쁘게 만들고,/ 돈에 대한 강박이 인간을 나쁘게 만들 뿐. /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야 하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 세상에는 풍요가 넘치게 되고, /사람들은 매일 일하게 되리.” (D. H. Lawrence, Men are Not Bad)

 

 

박혜영 인하대 ·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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