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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은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있는가?”
“한국 대학은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있는가?”
  • 김종영 경희대·사회학과
  • 승인 2017.04.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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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5주년 특집시론] 한국 지식인 사회에 묻다
▲ 김종영 경희대·사회학과

“대학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은 유토피아를 창조할 수 있는 장소다.” 벨 훅스(bell hooks)의 이 말은 아이러니한 울림을 준다. 한국대학은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있는가? 아니다. 한국대학은 ‘헬’(hell)을 창조하고 있다.

한국대학은 사회적 불평등을 생산하는 주요 기제다. 교육의 양극화와 계급화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들과 수많은 통계들로 이미 증명됐다. 대학서열구조는 입시‘지옥’을 낳았고, 학력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은 대학을 취업준비‘지옥’으로 만들었고, 비싼 학비와 생활비는 대학을 삼포세대 또는 칠포세대를 양산하는 생활‘지옥’으로 만들었다. 아아아… 무엇이 잘못됐는가? 

정말 아이러니다. 지난 두 세대 동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고 소득은 수십 배가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이제는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것을 이루고도 왜 우리는 이토록 불행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한국지식인들이 북유럽, 서유럽, 캐나다, 미국 등을 방문하고 연구해 해답을 제시하려 했다. 이제 스웨덴, 핀란드, 독일, 캐나다는 우리의 눈높이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이들 국가가 우리와 너무나 큰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불행해진다. ‘유토피아’는 그 곳에 있고 이 곳은 역시나 ‘헬’이다.

한국 지식인들의 고질적인 오류

사회학자인 내가 보기에 선진국으로부터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한국지식인들은 고질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남의 것을 가져와서 적용하는 ‘벤치마킹’과 ‘모델링’은 필요하지만 이것을 한국적 현실과 맥락에 맞게 적용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 먼저 우리가 불행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듯하다. 곧 이들은 한국이 어떤 체제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87체제, IMF 체제, 신자유주의 체제 등에서 모순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물론 이들 설명이 부분적으로 한국체제의 모순을 설명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대답들은 틀렸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회는, 위대한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말을 빌리자면, ‘세트들의 세트들(sets of sets)’이다. 교육체제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세트들로 구성돼 있으며 그 하위 단위인 대학교는 일반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평생교육대학, 대학원대학 등의 세트들로 구성돼 있다. 정치의 세트들, 경제의 세트들, 인프라 세트들, 국방의 세트들 등도 이런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사회의 질은 이 세트들의 양과 질, 구성방식, 운영방식에 달려 있다. 가령 우수한 대학의 세트들이 많고 이들의 작동이 민주적, 평등적, 창조적이면 대학교육의 질이 높은 것이다.

세트들의 세트들 혹은 사회를 만들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이다. 사회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며 이들의 활동을 크게 보면 싸움, 협력, 창조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기본 방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창조적-갈등적 공생’이다. 마르크스주의, 베버주의,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등은 갈등론적 전통으로 사회의 구성방식을 주로 싸움으로 보고 있다. 세상의 반은 싸움이며 이는 계급, 젠더, 인종, 국가 등의 다중적 싸움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사회는 협력과 연대 없이 이뤄질 수 없다. 뒤르케임, 파슨스, 루만 등의 기능주의 학파는 협력 없이 사회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사회과학의 양대 산맥이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점은 바로 창조다. 사회는 끊임없이 창조되고 재창조된다. 1950년대 한국의 사진들을 보고 현재의 한국의 모습을 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창조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고속도로, 서울의 고층건물들, 대학의 연구실들과 실험실들, 탁월한 의술이 시행되는 병원들 등을 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새로운 세트들의 세트들을 창조했는지 알 수 있다. 세트들은 단지 사회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물질적으로 창조된다. 또한 세트들의 세트들을 만드는 ‘인간’을 우리는 교육을 통해 새롭게 창조한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다중적 독점체제’ 교체

그렇다면 현재 한국체제의 특징과 모순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중적 독점체제다. 정치 엘리트 중심의 정치권력의 독점, 재벌 중심의 경제권력의 독점, 서울 중심의 공간권력의 독점, 명문대 중심의 지위권력의 독점,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젠더권력의 독점, 분단체제로 인한 이념권력의 독점이 다중적 독점의 세트들을 이루고, 이는 꽉 짜인 여러 겹의 사슬처럼 국민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 독점적 권력이 왜 나쁘냐면 이를 통해 지대 추구 행위, 즉 권력을 이용한 갑질이 일어나고 이는 사회적으로 매우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중적 독점체제에 의해 정치 엘리트, 지식 엘리트, 경제 엘리트들은 ‘독점 아비투스’에 물들어 있고 법과 규칙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다중적 독점체제가 양극화, 차별, 배제를 양산하고 기회의 균등을 파괴하고 불공정과 비효율을 낳고 결국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든 구체제의 표면적 권력은 촛불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문제는 다중적 독점체제의 타파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대권주자들이 저마다 비전과 공약을 제시했지만 적어도 내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친다. 이들의 공약은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빈약하다. 따라서 내 판단이 맞다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다음 정권에서 신체제를 바라는 국민들은 대실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들은 현체제의 모순과 특징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곧 정권교체는 체제교체가 아니다. 

현시대 한국지식인의 최대의 그리고 최고의 임무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교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일이다. 왜냐하면 현체제는 양극화, 독점, 차별, 배제로 점철된 ‘헬조선’이며 대다수의 흙수저들이 희망과 꿈을 찾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과 언론이 전하는 무수한 구체적인 에피소드들뿐만 아니라 자살률, 출산율, 청년실업률, 임금격차율 등 많은 통계들은 이를 증명한다. 한국지식인들과 시민들은 어떻게 신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다중적 독점체제가 문제의 원인이라면 신체제로의 해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것은 민주적 다원체제다. 곧 그것은 독점의 ‘세트들의 세트들’을 혁파하고 민주적이고 다원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중적 독점체제의 강력한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고 민주적 다원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민주적 다원체제는 자원, 소득, 지위, 기회, 인정의 재분배를 요구하며 이는 기존의 독점세력들의 저항을 분명히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치 엘리트, 재벌, 지식 엘리트, 서울과 수도권 시민, 명문대, 정규직, 남성들의 기득권 포기는 저절로 이뤄지기 힘들다. 따라서 민주적 다원체제를 향한 길은 필히 싸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민주적 다원체제로의 길은 무수한 이해관계가 얼키고설켜서 복잡다단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비록 통일적이지는 않지만 민주적 다원체제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책들이 이미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나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다원체제를 만들기 위해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책이나 활동들로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워낙 급작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에 한국의 지식인들은 체제교체를 위해 충분한 토론과 숙고의 정치적 공간을 대선 이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해 개헌을 통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대통령 중임제 등의 개혁방안은 고려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선거구 제도의 혁파를 통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과 정당정치의 대안들을 논의해야 한다. 

재벌의 경제적 독점과 경제 불평등 해결을 위해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기업의 초과 내부유보세, 세금인상을 통한 소득재분배와 복지의 확대, 비정규직 해소 방안 등 많은 정책들이 다음 정권에서 논의되고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명문대 지위권력 독점·서울의 공간권력 독점 극복해야

명문대의 지위권력 독점을 혁파하기 위해서는 전면전인 평준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초중고의 평준화와 공영화뿐만 아니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등의 정책들이 차기 정권에서는 실현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유력한 대선주자들의 교육공약들은 이러한 다원적 교육체제와는 훨씬 후퇴해 있다. 전면적인 평준화 정책의 도입이 실패하고 대학의 공공성 강화가 실패할 때 결과적으로 기존의 명문대들에 의한 지위권력 독점이 유지되면 문제는 보다 심각해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입시지옥, 취업지옥, 생활지옥을 제거할 수 없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희망인 동시에 허망의 기표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박근혜의 ‘창조경제’에 이미 속지 않았던가. 다원적 교육체제만이 희망이며 현실적인 대안이다. 

서울의 공간권력의 독점은 한국사회를 ‘超병목사회’를 만들었다. 서울의 공간권력의 독점을 타파하기 위해 행정수도가 기획됐지만 헌법재판소에 의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혁신도시는 지방분권에 상당한 효과를 거뒀지만 교육문제와 맞벌이 부부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행정수도 이전은 서울의 공간권력 독점을 타파하기 위해 전향적으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 덧붙여 서울의 공간권력 독점을 다원적 공간체제로 바꾸기 위해 광주와 부산을 특별시로 지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도시는 서울과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고 서울과 대등한 공간적 중심이 될 수 있다면 ‘공간권력의 삼권분립’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성 중심의 젠더권력 독점의 타파 없이 한국사회는 암울하다. 여성들은 ‘공동체의 씨를 말리는 투쟁’이라는 출산 기피로 한국사회 전체를 압박하고 있다. 당장 대학에 몰아닥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위기가 젠더권력의 독점과 연결된다는 점을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성 평등 없이 한국사회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가족, 기업, 정부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양성평등, 육아, 출산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분단체제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독점은 여전히 우리의 사고, 상상력, 기획을 가로막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은 현재 최고조로 달하고 있으며 전쟁도 예측할 수 없다. ‘외교의 시대’가 열렸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다원적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단체제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독점을 타파하고 평화의 세트들을 창조하기 위해 개성공단 재구축,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정상회담 등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한국지식인사회는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다. 지식 엘리트에 속할수록 이들은 독점세력에 속하고 ‘독점 아비투스’에 젖어 있는 경향이 있어 결과적으로 다원체제로의 전환을 거부한다. 내가 만나서 이야기해 본 많은 지식 엘리트들은 이런 독점체제에 길들어져 있고 이를 극복할 생각도 대안도 없었다. 차기 정부에서 많은 정책들을 수립하고 집행할 지식인들 역시 다중적 독점체제를 타파할 의지와 능력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회학을 오래 공부한 사람으로서 내가 이 학문으로부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다음과 같다: 사회는 反운명이다. 한국사회 자체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어떻게 그토록 가난한 나라가 이토록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는가! 인간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만큼만 바뀌고, 사회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만큼만 바뀐다. 촛불시민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교체를 원한다. 우리는 다중적 독점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는 새로운 민주적 다원체제를 창조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차별, 배제, 독점, 양극화, 분단을 넘어서 공생의 공동체를 창조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숙명주의를 넘어서 다시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가? 한국지식인사회에 묻는다.       

김종영 경희대·사회학과 
연구 분야는 지식사회학, 교육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세계화의 사회학 등이다.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과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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