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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이기주의와 정부의 간섭, 대학의 고유한 교육기획 추진 가로막아”
“학과 이기주의와 정부의 간섭, 대학의 고유한 교육기획 추진 가로막아”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 승인 2017.04.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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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 석좌교수, 대학교육 혁신의 길 4. 한국 대학교육의 근본문제

대학진학률 70% 웃돈다면, 응용학문 중심 ‘재편’ 변화 불가피
기초학문 폐과 위기 몰려도 해당 교수들은 교양교육에 무관심 
“말로만 대학자율성 외쳐…지식생태계 구축은 선언으로 전락”
“시대 앞서가는 장기적 교육기획의 부재…교육국가주의 부담”

오늘날 한국 대학의 고등교육은 심각한 ‘골다공증’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대학 수나 학생 수, 그리고 교육내용의 다양성 등을 볼 때 외부로 드러나는 양적 팽창에 비해 교육 내면의 질적 밀도가 어이없이 수준 미달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표면적 현상_ 교육 수요와 공급 ‘미스매치’

한국 대학교육에서 표면적으로 여실히 드러나는 문제는 교육수요와 교육공급의 ‘미스매치’ 문제다. 대학 밖의 사회, 특히 산업계에서는 대학교육이 유능한 산업인력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학 안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직업교육에 대한 요구의 압박 때문에 학문적 성숙의 교육이 방해받고 있다고 자탄한다. 

사회 전체의 ‘인적자원 배분’을 조망해 볼 때, 교육수요와 교육공급 사이에 미스매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이 본래 직업학교가 아닌 이상, 이 미스매치는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고전적 교수’가 있기도 하지만, 고교를 졸업하는 동일 학령인구 중 대략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합당한 현실 파악이 아니다. 한편으론 직업능력 함양교육이 미흡해 산업계의 인력수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교육부 주관의 “산업계관점 대학평가”나, CK사업, LINC사업, PRIME사업 등은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문적 탐구능력 함양 교육도 미흡해 학문후속세대 양성에도 실패하고 있다. 특히 기초학문분야는 날로 위축돼가고 있다. 인문계 전공학과의 연이은 ‘폐과’ 조치가 이를 말해준다. 

▲ 자료사진= 경희대 ‘아르떼 스터디그룹’

좀 더 내면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보다 뿌리 깊은 사태가 도사리고 있다.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듯 이중적인데, 이 이중적인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종합적 교육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이중적인 요구, 즉 학술탐구에 대한 요구와 직업능력 배양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 줄 ‘종합적 교육시스템’은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현재 한국의 대학 현실에서 구현돼 있지 않을 뿐, 이런 교육 시스템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아니, 이 같은 교육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현재 한국 대학의 현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배후의 실상_ 전공학과의 배타적 독자성

그 원인으로 △경직된 학과 중심 ‘전공주의’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무지 △기초학문분야 교육의 편협성으로 인한 교양교육의 방치 등에 있다고 보고, 이들 요인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우선 다음 3가지가 오늘날 한국 대학교육의 주요 특징이라고 본다.

첫째 전공학과의 전공학업이 대학교육의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특정 전공학과에 전속(!)돼 특정분야의 전공학업을 이수해 나가는 것이 대학교육의 거의 전부를 이룬다. 물론 최근 복수전공, 부전공 등의 학사제도가 널리 도입돼 시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실상을 보면 학업의 다양화라는 본래의 취지가 실현되고 있다기보다는 입학 당시에 타의적으로 택한 ‘원치 않는 전공’을 떠나 현실적 수요에 부응하는 학업을 택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전공학과는 교수와 학생이 공동으로 ‘전속’돼 있는 교육 및 연구의 기본 단위이자, 동시에 ‘생활공동체’이기도 하다. 나아가 많은 경우 교무행정적으로도 중요한 대목에서는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기본 주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공학과는 각기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대학을 구성하는 실체로서, 타 전공학과의 활동이나 대학 전체의 관심사와는 거의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기구다. 

전공학과의 이런 배타적(?) 독자성은 학문적 전문성과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자유로운 탐구활동’이라는 이념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대학교육이 엘리트 교육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던 환경에서는 타당시됐던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급격히 산업화를 추진해야 했던 한국에서는 특정분야의 전문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필요했기에 그런 상황에서 분립적 전공학업은 대학교육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급격한 산업화의 교육수요에 대학교육이 불가피하게 구속돼 부응했다는 것이다. 

둘째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동일 평면에 놓고 학사행정을 운영하는 데서 오는 현상으로서, 전공학과들 중에서도 특히 직업활동 영역과 유관한 응용학문 분야의 전공학과들이 더욱 흥성하며 대학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교육이 전반적으로 응용학문중심의 교육이 됐으며. 그에 비하면 구체적인 직업 활동과는 무관한 기초학문 분야의 전공학과들은 위축되고 소외되고 폐쇄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상승하면서 2015년을 전후로 고교졸업생의 70% 이상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대학교육은 더 이상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대중교육’이 됐다. 따라서 대학교육의 목적은 대다수 학생의 요구에 따라 학문탐구를 위한 준비에 있다기보다는 직업능력 배양에 있게 된 것이다. 대학교육이 전반적으로 학문중심이 아니라 직업중심으로 변모하게 됐다는 것이다. 

셋째 교양교육이 방치돼 있거나 본래의 이념과 달리 위상이 현격히 ‘격하’되고 왜곡·변질돼 있다는 점이다. 본래 교양교육은 기초학문교육이어야 하고 따라서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들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양교육을 담당해야 하는데, 자과 학생들의 전공교육에만 매달려 왔기 때문에 교양교육이 부실해진 것이다. 

기초학문 분야 학과들은 자과의 전공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학과 자체가 폐쇄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면서도,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교육 강화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다. 기초학문 분야 학과가 이런 쇠퇴의 길을 갈 때, 응용학문 분야의 전공교육은 더욱 세분화돼 학생들의 지적 시야는 더욱 협소화 됐으며, 이를 보완해줄 교양교육은 그 본래의 과제를 수행치 못하고 더욱 무력해져 온 것이다. 

교양교육은 전공교육의 보조 역할을 하는 예비교육으로 전락하거나, 학술적 성격을 상실한 실용교육으로 변질되거나, 심지어는 고등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취미생활이나 일상 상식의 연장으로 타락하기까지 하는 실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더 이상 ‘지성의 산실’이 아니라 특정분야의 기성 지식이나 기술을 교육할 뿐 가치 성찰의 지혜교육은 포기한 채 ‘무교양’ 기능인을 양성하는 실용직업학교가 된다. 학문탐구와 이의 전승을 통해 문화공동체의 핵심 주역이 돼야 할 대학이 그 ‘대학다움’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심층 배경_ 정부의 ‘무차별적’ 대학 관리

한국은 교육을 중시하고 숭상하는 문화적 전통이 있는 문화국이다. 그런데 이 전통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긴 하나, 암암리에 교육을 국가가 주관하고 책임져야 하는 ‘교육국가주의’와 결부돼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정부는 초중고교의 기본 국민교육뿐 아니라 대학의 고등교육도 국가 주도의 지원 및 통제 대상으로 삼아 강력하고도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 기획이 비록 방향 설정에선 적절하다고 할 수 있으나 구체적 실행안이 교육 현장에 적합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있질 않아 교육 지원의 내실을 의도한 만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200여개에 이르는 4년제 대학들을 ‘유형’이나 ‘특성’의 구분 없이 획일적으로 대함으로써 대학이 안고 있는 교육적 문제를 각 대학별로 현실 적합성을 갖고 해결해 나가도록 지원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적 여유가 없는 많은 사립대학들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데 최우선의 정책적 고려를 하기 마련인데, 그 결과 정부의 공정성을 명분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익명적 관리가 대학 나름의 고유하고 독특한 교육기획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 갔다. 대학의 자율성은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게 되고 자생적인 지식생태계 구축은 선언에 그칠 뿐, 정책적 배려를 받지 못하는 요원한 것이 된다. 

그런가 하면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교육기획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들도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아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장기적인 교육기획의 부재, 그러면서도 정부가 주도하는 재정적인 지원 및 관리의 부적절성 및 비정교성은 교육국가주의가 안겨주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한국철학회 회장, 성균관대 학부대학장,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명예교수,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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