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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재'란? … '진화된 교재'가 강의 활력 불어넣는다.
'좋은 교재'란? … '진화된 교재'가 강의 활력 불어넣는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4.10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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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_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 ② 학술서, 그 명작의 조건

빠르게 전환한 디지털환경 속에서 ‘학술출판’의 자리가 계속 위협받고 있다. 학술전문서는 시장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불법복제, 북스캔, 베끼기 출판, 출판사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 시스템의 부재, 정부의 정책적 방임 등이 손꼽히는 장애물이다. 학술 전문서와 대학교재 등 질 높은 출판 콘텐츠를 확보해야할 시기임에도 안팎의 장애와 싸우는 한국 학술출판 상황은 안타깝기만 하다. 학술출판이 살아나야 지식과 문화의 지평이 두터워질 수 있다. <교수신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학술 출판이 처한 현주소,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술출판이 미래를 만든다’(총 10회)를 격주로 싣는다. 이번호는 두 번째 차례로 ‘학술서, 그 명작의 조건’을 살폈다.

 

 

 

 

 

 

 

 

장덕순의 『국문학통론』(신구문화사, 1960)을 ‘국문학개론’ 강좌에 교재로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1960년에 초판이 나왔지만, 아마도 교재로는 1980년대 중후반까지 이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쪽마다 한자가 가득해서 한자 밑에 한글로 따로 표기를 했던 책들이 청계천 등지 헌책방에서 자주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앞 수십 쪽을 넘어가면 책이 깨끗했다는 점이다. 추정컨대, 한 학기 수업 교재로 딱 그 정도 진도를 나갔던 것과 관계있을 듯하다.

도대체 대학 학술교재란 무엇일까. 좋은 학술교재는 어떤 기준을 지녀야 할까. 최근에야 한국연구재단에서 ‘명저번역사업’을 지원하고 있어, ‘名著’라는 게 곧 중요한 근현대 古典의 등가어임을 알 수 있지만, 대학 학술교재를 따로 ‘명저’로 부를 수 있다거나, 혹은 그런 명저에 손색없는 학술교재가 강의에 자주 호명되는지는 불확실하다. ‘반값 대학교재’를 선보인 출판사가 있는가하면, 그럼에도 학생들이 학기마다 복사가게를 기웃거리는 현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근래 들어 대학교재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다.

“한 학기 공부하고 더 이상 안 보는 교재인데…”

신촌의 한 복사가게 앞에서 만난 대학교 2학년 학생의 말이다. “한 학기 공부하고 더는 안 보게 되는 책을 비싸게 구입한다는 게 솔직히 좀 아깝죠. 그렇다고 이렇게 복사하는 것도 전혀 경제적이진 않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비용을 줄여야 하니까요.”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은 이렇게 거들었다. “복사 제본하면 부피를 나눠 갖고 다니기도 좋죠. 불법복사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전공과 교양 수업이 하루 종일 있는 날이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노트북도 챙겨야하고, 거기에 어떻게 두꺼운 교재들을 넣고 다니겠어요?”
 
이들의 말을 정리하면 두 가지다. 대학교재라는 게 한 학기 공부하고 더 안 보게 된다는 것. 비싼 데다 (두께가 있다보니) 무거워서 갖고 다니기 어렵다는 것. 그렇다면, 여기에 어떤 해법이 있는 건 아닐까. 대학교재가 더 이상 일회적이지 않을 것, 그리고 들고 다니기 좋을 정도로 분책하는 방법은? 그래서 적정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다면? 그런데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대학가에 있어왔다.

한 학생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디지털 시대이고 오픈강의 소스가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대학교재라는 걸, ‘책’이라는 오래된 형식으로만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제가 수강하는 과목 가운데는 ‘교재’보다는 콘텐츠 중심으로, 앎의 획득과 축적, 그리고 지식의 분배와 소통을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에 눈 돌리는 선생님들도 많으세요. 책을 통해 뭘 주고받기보다, 아예 콘텐츠 자체를 만들어내고 이를 지식의 그물에 담아내는 그런 방향인 셈이죠. 필요한 책은 도서관에서 찾아보게 만들고요.”

그는 학생들의 복사제본 문제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은, 교재=책이라는 등식이 무너졌다는 것. 마치 소쉬르가 언어의 임의성을 강조했을 때처럼, 특정 낱말과 세계가 일치했던 ‘실제’의 붕괴가 다양한 사상과 사유의 틀 안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많은 교수들은 이미 PPT 방식 등으로 ‘단일 교재’의 지평을 이미 오래전부터 벗어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실험적이고 디지털적인 요소를 반영한 강의가 확산되고 있다 해도, 지의 기반은 ‘책’이라는 물질성 혹은 그것의 변주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학교재의 의미부터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강수택 경상대 교수(사회학과)는 말한다. “대학교재는 학부과복 교재로서 교육용에 걸맞게 한 학기 수업에 편리한 15장 정도 분량으로 구성돼 있으면서, 각 장은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핵심 개념 및 이론을 개괄적으로 소개한 책 형식이 좋다”고 말하는 강 교수는 좋은 교재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좋은 교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술서적뿐 아니라 교재 집필도 교수 업적으로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또한 학회가 우수교재상제도 같은 것을 도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강 교수는 ‘학문적 깊이와 창의성을 갖춘 저자와 학계 및 시대가 필요로 하는 주제와 우수한 학술도서 출판사라는 삼박자’를 갖추는 게 ‘좋은 학술 교재’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의견은 없을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이자 이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적을 두고 있는 박현모 교수는 일찍부터 ‘교재’에 일가견을 보였다. 그는 ‘좋은 학술 교재’의 조건을 여섯 가지로 꼽았다. 첫째, 사실 내지 문헌 근거가 있는 내용과, 저자의 의견 내지 해석을 구분한 책. 둘째, 단순 암기를 요하기보다 학생들이 다양한 해석과 비판을 내릴 수 있는 교재. 셋째, 풍부한 시각자료를 연계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교재. 넷째, 대학 교재라고 검수가 소홀하면 곤란하다. 다른 연구자의 검수를 필히 거친 책이어야 할 것. 다섯째, 주요개념을 저자가 정확히 정의하고, 모든 정의가 일관성 있게 책을 관통하고 있는 교재. 여섯째, 최근 이슈까지도 저자의 논리를 덧붙여 잘 정리한 교재. 그가 꼽은 조건 가운데 몇 가지 부분이 눈에 띈다.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재, 동료 교수의 검수를 거친 책, 최근 이슈까지 일관되게 정리한 책이 ‘좋은 학술 교재’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교수들이 말하는 '좋은 학술 교재'의 조건은?

번역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불문학)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아무래도 좋은 대학교재는 학생들이 강의 시간 이외에 봐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내용이 학습자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 강의 시간 이외에도 학생들이 지식의 탐구를 계속할 수 있는, 그래서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대학교재와 학술서 출판에 심혈을 쏟고 있는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의 김정규 기획팀장은 좀더 엄격히 학술서와 대학교재를 구분하는 쪽이다. “학술서란 완결성, 새로운 이론과 독자적 견해 중심, 통찰력을 중요한 조건으로 요청한다”고 말하는 그가 꼽은 ‘좋은 교재’ 조건은 강수택 교수, 박현모 교수, 박아르마 교수와 얼추 비슷하다. △검증된 이론과 보편적 주장을 담을 것 △해당 학과 1~4학년 커리큘럼 구성에 맞는 내용 △교수자 중심이 아닌 학습자 중심 설계(교육공학 이론 활용) △교수방법을 선택하고 그에 알맞게 기술할 것.
 
강수택 교수가 지적한 우수한 학술출판사, 박현모 교수가 꼽은 ‘풍부한 시각 자료’ 연계는 대학교재가 저자 홀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역설한다. 근래 들어 한국학술출판협회가 ‘판면권’을 강조하면서 이를 입법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실은 책의 내용을 시각화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듯, 책은 무형의 주제로부터 시작돼 활자의 옷을 입고 세세한 시각자료라는 이미지와 함께 만나 거듭난다. 한자가 절반 넘게 섞인 활자로만 구성된 교재의 중압감으로 무겁게 눌린 강의실이 과거의 것이라면,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가 강의 시간 외에도 지식의 탐구를 계속할 수 있는 유인을 지닌 ‘진화된 교재’의 신선함으로 활발한 강의실을 지향해야 한다.
 
대학교재란 어차피 일회성이다, 책 구입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복사 제본한 교재를 봐도 모른척한다 등등의 무기력한 언어들이 어쩌면 ‘좋은 교재’ 만들기를 가로막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 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재성찰과 함께 대학교재도 명저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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