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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만으로도 공부가 충분하다고?
고전만으로도 공부가 충분하다고?
  • 이강재 서울대·중문학
  • 승인 2017.04.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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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강재 서울대·중문학

교육이 지향해야할 점이 무엇일까? 과거 지식의 전수가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단순한 지식이라면 인터넷 검색으로도 다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지식 자체가 전혀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보다 중요성이 현저하게 적어졌다는 것이다. ‘思而不學則殆’라는 공자의 언급이 있다. 생각하기만 하고 이전의 학습된 내용, 지식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말이다. 공자는 이와 함께 ‘學而不思則罔’, 즉 이전 내용을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유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공자가 말하는 것은 과거의 지식도 배우고 스스로 생각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가?

미국의 특이한 대학이 있다. 우리의 대학 현실에서 볼 때 특이하다는 것이다. 뉴멕시코 주와 메릴랜드 주 두 곳에 캠퍼스가 있다는 세인트존스 칼리지 이야기이다. 나는 이 대학을 다니거나 가본 적도 없어서 그 내면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조한별 지음, 바다출판사, 2016)에서 밝힌 내용 등을 볼 때, 이 대학의 교육은 나에게 충격적이다. 4년 내내 인문학 고전 100권만 읽고 토론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최고의 학사과정이라고 뽑히기까지 했다고 하니…….  중국의 고전을 전공하는 내 입장에서 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인문학 고전이 서양고전만이라는 점이 약간은 못마땅하다. 그렇지만 질문하고 무한한 토론을 하면서 고전을 학습하고 이를 통해 깊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는 점은 감탄스러운 대목이다.

대학 교육은 궁극적으로 엘리트 교육이다. 즉 한 사회의 지도층,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엘리트나 리더란, 자신만의 출세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다. 취업도 어려운 세상에서 무슨 리더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등교육과 다른 고등교육으로서의 대학은 교육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 주어진 현상을 넘어서는 깊은 사유를 하도록 가르치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끌어가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세인트존스 칼리지는 대학 교육의 원래 목표에 충실한 대학이라고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이제 단순한 지식을 가르치고 습득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스스로의 힘으로 종합하고 이를 다른 분야에까지 적용해 새로운 창조적 사유를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에 나온 서적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변화된 환경에 따라 사유하면서 대화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기본적 속성은 2천여 년 전의 그리스로마 시대나 제자백가가 출현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그것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구체적인 삶의 방식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뿐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공부는, 과거부터 내려온 보편의 생각과 지식을 시대적 환경이 다른 현재에 맞게 변화된 사유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세상은 엄청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속에서 지금 당장에 필요한 내용만을 교육한다면 그 학생들이 졸업하는 시점에서 그 내용은 이미 옛날의 것이 되고 만다. 또 대학의 교육자, 대학 교수들은 아무리 새로운 변화를 쫒아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사유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즉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환경만 따라가면서 학습하는 것은 영원히 바로 현재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은 근본적으로 원칙, 원론에 충실한 교육이 돼야 하고 그래서 더욱 고전 교육이 필요하다.

고전교육은 중등교육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단순 암기와 선택형 문제에 길들여지게 만드는 중등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 중에 답이 없고 사유의 과정 자체가 중요한 문제를 학생들에게 던져 주었을 때, 나는 학생들의 당혹감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도 그렇고 미래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종합적 사유를 하도록 고전을 읽고 생각하고 써내는 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바로 그것을 바꾸거나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을 생각하지 못한 채 당장의 이해당사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중등교육의 교사도 그렇거니와 대학의 교수들도 아직까지 그런 훈련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상태인데, 어떻게 그런 교육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겠는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 현장에서 교육 이외의 일들로 시간에 쫒기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점에서 장기적인 전망을 전제로 한 우리 교육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강재 서울대·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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